• 필수유지업무제도,
    합법적 파업권도 무력화
    아시아나항공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 '악법' 철폐 입법 촉구
        2018년 09월 17일 06: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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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나항공 지상여객서비스 업무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이 장시간·중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파업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사용자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악용되어온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규정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란 파업을 할 때에 최소한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필수유지업무제도를 적용받는 필수공익사업장의 기준은 해당 업무가 정지되면 ‘공중의 생명 보건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경우’로 규정, 파업을 할 때에도 최소한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직권중재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직권중재제도가 쟁의행위를 불가능하게 하고 파업의 불법화를 초래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의 비판을 수용해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고 만든 법안이 필수유지업무제도다. ‘공익’과 ‘쟁의권’의 조화를 이루자는 것이 취지다.

    문제는 필수유지업무제도 역시 ‘공중의 생명 또는 안전’과는 무관한 업무까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탓에 사용자가 노조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LO도 관제 업무를 제외하곤 항공사 업무에 대해 파업권을 제한하는 필수서비스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공운송사업 전체가 노조법상 필수업무로 지정하고 있다.

    필수유지업무제도 폐지 촉구 기자회견(사진=곽노충)

    기내식 대란으로 비행기 결항,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아
    파업으로 비행기 결항 지연되면 3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형   

    이 제도 자체의 모순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이번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으로 인한 비행기 결항, 지연이 이어졌지만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한 회사 측 관계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되거나 지연될 때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비행기 결항, 지연의 원인을 제공한 측이 누구냐에 따라 처벌 유무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 제도가 노조의 파업권 무력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형규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항공사도 다양하고 대체할 다른 교통수단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 업무 중단돼도 국민 생명 안전 위태롭게 할 가능성 낮다”면서 “사실상 재벌 항공사의 이익을 방어할 목적으로 이 제도가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도의 폐해로 지난 5월 노조를 설립한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는 회사와 교섭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안 그래도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인 동시에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노사 간 완전히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진 탓이다.

    문혜진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 지부장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주최로 17일 오후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공사에서 노사관계는 불공평하고 불균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며 “필수유지업무제도라는 악법은 우리의 불합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조차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문 지부장은 “단체교섭까지 2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우리 조합원들은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사태로 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연장근무와 승객들의 욕설을 견뎌냈다”며 “그러나 회사는 단체교섭을 근무지인 인천공항에서 진행할 수 없다며 교섭시간도 ‘알아서 맞추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교섭위원들은 근무 스케줄로 인해 교섭조차 나갈 수 없거나, 교섭에 가더라도 밤샘 새벽근무 후나 개인 연차까지 써야만 참석할 수 있었다. 사실상 교섭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문 지부장은 “교섭위원의 교섭할 권리 보장하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요구가 되어버렸다”면서 “하지만 회사는 이조차도 보장해주지 않았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교섭 최종중지 결정이 떨어져 합법적 쟁의권까지 얻었지만 파업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외주·하청 허용할 때는 “비핵심 업무”,
    파업 하려고 하면 “핵심 업무”라고 규정해 파업권 봉쇄

    노동계는 물론 법조계도 현행 필수유지업무제도 역시 쟁의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변호사는 “국제노동기구는 공공부문 쟁의권을 제한하는 필수서비스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으나, 현행 노조법(에서 규정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은 이러한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을 변칙적으로 허용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문제가 있다”며 “(필수유지업무를 규정하는) 노조법 시행령이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의 파업을 사실상 금지해 노사간 대등한 교섭력 확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수유지 업무는 노조법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법 개정 없이도 적용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의지만 있다면 항공사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파업권 확보가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공중의 생명 또는 안전’을 책임지는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노조의 파업권 자체를 박탈하면서도, 해당 업무를 원청이 직접고용하지 않고 외주·하청을 허용한 것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우리 법원과 노동부는 외주화할 땐 비핵심 업무라더니 막상 파업을 하려고 하면 핵심 업무라고 규정한다”며 “원청사업주 역시 노무를 공급받는 자로서의 책임은 회피하면서 파업권 제한의 이익은 모두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지부장도 “공중의 안전·생명과 직결돼 파업을 제한하면서 민간 재벌에 사업권을 주고 외주하청까지 무분별하게 허용하고 있다”며 “그리고 (비행기 결항이나 지연에)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현 구조는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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