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농사지으면 '반자본주의자'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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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2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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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색깔이 이상한 옥수수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봉지가 3개 있었습니다. 팝콘 봉지처럼 생겼기에 ‘먹자’는 생각에 뜯어보니 ‘진홍색’의 옥수수 알이었습니다. 진홍색이라는 것이 이상했지만 쪄서 말린 옥수수 과자처럼 보였기에 무심결에 한 웅큼 입에 넣었습니다.

    “그거 먹으면 안 돼. 농약 덩어리야.”
    옥수수 씨앗을 산 사람은 내가 들고 있던 봉지를 뺏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거 얼마나 비싼 데… 우리 파종할 거야”
    세 가지 사실이 확인된 셈이죠. 볶은 옥수수인 줄 알았던 것은 파종할 씨라는 것이고, 진홍색은 농약으로 범벅을 해놓은 색이라는 것 그리고 그 씨앗의 가격은 비싸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제 입에 들어간 옥수수 알은 씨앗 주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내 입 안에 화공약품 냄새를 먼저 퍼뜨렸습니다. 저는 벌써 그것들을 ‘퉤퉤’ 뱉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우리 농장에서도 옥수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농장에 들어서니 생활동(棟) 식탁에 진홍색의 옥수수 씨가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하면서 만진 것은 옥수수 씨알이었습니다. 손바닥에는 진홍색이 묻어났습니다. 냄새를 맡아보니 무취였습니다.

    이 씨알은 지난 번 농업기술센터에서 신품종이라고 배급해준 옥수수 씨알이었습니다. 팀원들에게 배급해주었다는 사실만 알았지 제가 직접 옥수수 씨알을 보진 못했습니다.
    “이거 심었어?”
    “아직”

    진홍색의 옥수수 종자는 분명히 ‘흑막’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살충균제가 뿌려진 ‘소독종자’의 특징은 일회성이라는 것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압니다. 이 옥수수 또한 1회성의 종자임이 분명할 거라는 제 예상은 농업기술센터에 전화 통화를 해서 바로 입증되었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 대한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제 입 밖으로는 분노의 욕설이 마구 튀어 나옵니다.

       
     
      ▲고추 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정식) 날, 이런 날의 팀워크는 환상적이다.
     

    “옥수수 나방 등의 해충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살균 및 살충제 처리를 한 것입니다.”
    “그럼 농약 처리된 종자라는 것이군요.”
    “하지만 인체에는 무해합니다. 단지 이걸 수확할 때 한 그루당 한 자루 이상을 키우지 마세요. 재래종은 두 세 자루 수확하는데, 한 자루를 실하게 키우면 됩니다.”
    “그럼, 이 종자는 다음 해에 종자로 사용할 수 있어요?”
    “이것은 잡종 강세이기 때문에 50% 이하의 수확률이므로 1년만 사용하는 겁니다.”오호, 통제라…….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종자 보급하는 것이 재래종이 아닌 일회성 종자를 보급하는 것이고 다음 해에는 종자를 사게 하는 ‘종자’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잡종 종자들은 해충에 취약해서 더 많은 살충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 옥수수 심지 않을 거면 농업기술센터로 가져오세요. 농가에 없어서 못 주고 있습니다.”

    ‘내가 미쳤나? 그것을 가져다주게’ 나는 그 옥수수 종자를 쓰레기통에 버릴지언정 다른 농가에 그 옥수수를 보급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종자의 근원을 아는 한, 그 옥수수를 무료로 공급받은 농가가 멋모르고 심었다가 당해 년도에 수확은 하지만 농가들의 종자 보관 습관처럼 옥수수 씨알을 보관했다가 다음 해에 그 옥수수로부터 수확률이 50%이하로 떨어짐으로서 결국 옥수수 1년 농사는 망하게 되고 그 다음해에 종자를 구입하는 이중고에 있게 될 것이 뻔합니다.

    종자회사를 다국적 기업에 맡겼다는 것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흑막’에 우리는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흑막은 종족보존을 파괴하고, 생식이 불능한 일회성 종자를 만듦으로서 농가에서는 계속 종자를 사서 써야 하는 것이며, 만약 다국적 기업이 종자를 풀지 않는다면 식량의 생산은 중단되고 마는 기막힌 현실이 닥칩니다.

    옥수수는 수확 이후 말려 놓으면 다음 해에 옥수수 알을 그대로 심어도 또 많은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옥수수나 감자가 주식량이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옥수수 씨알 하나로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강점이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 배고플 때, 우리의 식량이었고 한편으로는 간식이었습니다.

    옥수수나 감자류는 그나마 우리 재래종이 살아서 농민들의 손으로 전달되어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 해부터 개량종, 즉 유전자 조작 슈퍼 옥수수일 가능성이 농후한 옥수수 종자를 무료로 농가들에게 나누어 주고 내년도에는 종자를 구입해서 쓰도록 하는 종자 회사의 전략에 일조를 하는 농업기술센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년의 농사를 한 뒤, 우리가 씨앗을 내어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계화’ 속에서 이루어진 식량 개방만이 아니라 종자 전쟁에서 이미 그 목숨을 좌우지하는 권력을 획득한 자본주의 기업.

    우리 팀원들은 이 농사를 통하여 ‘왜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가?’를 하나하나 절감해갑니다. 빈곤의 생산이 경제 성장으로 위장한 것처럼, 농업 분야의 성장에 대한 환상은 자연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의 연결 고리마저 끊어버리는 것 또한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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