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反난민, 스웨덴 강타
    극우 민주당 약진의 배경
    [분석] 좌우 정치블럭의 교착상태···이미지 바꾸고 진화하는 극우파
        2018년 09월 11일 01:0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2018 스웨덴 총선, 극우정당 비약적 성장”

    유럽을 덮치고 있는 反난민 정치가 스웨덴마저 뒤흔들었다. 9월 9일 실시된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민주당(SD)이 17.6%(62석)을 득표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약진했다. 선거 이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급부상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고 20%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며 보수당(M)을 제치고 2당을 차지할지가 관심사였다. 反난민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당의 돌풍으로 사민당은 창당 이후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은 30%의 지지율마저 무너졌다. 사민당과 정권을 주고받던 양대 정당인 보수당(M)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20%의 지지율이 무너졌다.

    2018 스웨덴 총선 결과

    대규모 교착상태에 빠진 스웨덴

    개표 결과 사민당은 28.4%(101석)을 차지하며 1당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25% 미만을 득표할 것이라는 최악의 여론조사에 비하면 비교적 선전한 결과다. 사민당이 이끄는 좌파연합에 참여하는 좌파당(V)은 7.9%(28석), 녹색당(MP)은 4.3%(15석)을 획득했다. 좌파당은 한때 두 자리 수 득표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유권자들이 막판에 조직력의 한계를 보이며 역대 최다득표에는 실패했다. 반난민 등 혼란한 정세에서 녹색 의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녹색당은 의회 진출을 위한 봉쇄조항(4%)을 간신히 넘기는데 그치는 예상 외의 성적표를 받아 당은 충격에 빠졌다.

    우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보수당은 19.8%(70석)을 득표해 가까스로 2당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보수당 역시 선거 직전까지 극우정당인 민주당(SD)에 이어 3당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조사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악의 결과는 피하는데 성공했다. 우파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중앙당(C)은 8.6%(31석)을 올리며 약진했고, 기민당(KD)은 6.4%(23석), 자유당(FD)은 5.5%(19석)을 획득했다. 거의 모든 정당이 고전과 하락을 면치 못한데 비해 기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늘어난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사민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좌파당은 각외 지지)이 최종 획득한 의석수는 144석으로 우파연합을 불과 1석 차이로 승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체 349석의 과반인 175석에 무려 30석이나 모자라 연정 구성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4년 전, 뢰벤 총리는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후 유럽 전역에 대규모 난민문제가 발생하자 가능한 최대의 인원을 수용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스웨덴이 그동안 수용한 난민은 16만 명으로 인구비율로 보면 유럽 최대비율이기 때문에 체감하는 피부수치가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높다는 것이 약한 고리였다.

    극우정당인 민주당이 反난민 공약을 앞세워 20%까지 지지율이 폭등하자 뢰벤 총리는 서류미비 난민에게 복지(금전) 지원 중단과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본국으로 즉각 송환한다며 난민정책을 대폭 수정했다. 사민당의 스테판 뢰벤 총리가 본선에서 난민문제에 대해 우경화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탓에 최악의 상황을 피하며 기사회생했다.

    선거 직후 뢰벤 총리는 사민당이 1당을 차지했다는 것과 좌파연합이 우파연합에 1석 차이에 불과하지만 승리한 것은 분명하다며 사민당 주도의 내각 구성을 선언했다. 다만 의석수가 과반에 30석 가까이 모자라는 소수 정부를 감안하여 보수당의 협조에 의한 내각 구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보수당의 울프 크리스테손 당수는 뢰벤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전화를 걸어 1당을 축하하는 대신에 즉각 총리직에서 사임할 것을 요구하며 협조할 의사가 없다는 배수진을 들고 나왔다.

    우파연합 역시 민주당과의 연정은 불가하다고 수차례 공언한 탓에 보수당이 배수진을 고집한다면 스웨덴은 당분간 대규모 교착상태에 빠질 전망이다. 크리스테손 당수가 배수진을 친 이유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8년간 우파연합을 이끌던 보수당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가 2014년 선거에서 패배한 후 물러나면서 당수에 오른 인물은 안나 신베르그 바트라였다. 8년 동안의 집권 기간 동안에 신베르그는 내각과 주요 당직을 오가며 당의 차세대 인물로 부상했다. 라인펠트 총리의 엄호가 있기는 했지만 신베르그의 당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촉망받던 40대 초반의 신베르그가 당수에 오른 이후 불행하게도 난민 문제가 기승을 부리며 보수당의 지지기반을 뒤흔들었다. 2016년 소수 정부를 압박해 난민정책을 강화하는 법안을 도입하면서 한숨을 돌리는 듯 했지만 민주당의 공세에 밀려 지지율은 하락하며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그때부터 신베르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지구당의 연판장이 돌면서 당내 기반은 순식간에 약화됐다.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먹인 것은 자신의 친정인 당 산하 청년조직(Moderate Youth League)이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면서였다. 선거를 1년 남기고 당내 쿠데타로 당수에 오른 크리스테손이 소수 정부에 협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정과 관련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최대 난제다. 그 틈을 타고 민주당의 임미 오케손 당수는 “다시 4년간 국민들이 좌파의 세상에서 살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라며 보수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 유권자가 꼽은 우선 공약 세 가지는 난민, 기후변화, 그리고 의료였다. 대규모 난민으로 그나마 빈약한 의료체계가 악화된 것을 감안하면 유권자의 관심사는 난민과 기후변화였다. 유럽의 모든 선거에서 등장하는 경제문제가 스웨덴에서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부국인데다 좌파 연정이 4년 동안 착실히 경제성장을 올리면서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타격을 입지 않은 탓이 크게 작용했다.

    기후변화가 쟁점인 것이 다소 의외일 수는 있지만 스웨덴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스웨덴은 넓은 땅덩어리와 우거진 삼림으로 산불이 발생할 경우 헬기로만 진화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올해 초 최악의 산불이 일어나자 스웨덴의 헬기로만 부족해 이웃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사태까지 초래하면서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여름에는 대규모 가뭄이 발생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녹색당의 주장에 유권자들이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녹색당의 공동대표이자 연정의 부총리를 맡고 있는 이자벨라 로빈은 더 늦게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면 가뭄과 태풍이 빈번해지고 이 때문에 대규모 난민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며 난민과 기후변화를 해법으로 묶는 방안을 제시하며 기세를 올렸다.

    녹색당은 역대 최대 득표율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결과는 최악의 성적표였다. 기후와 안전은 벌어질 당시에만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투표장에 들어가면 모두 잊는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 확인된 선거였다. 50대 후반의 노련한 녹색주의자인 이자벨라 로빈은 정치생명까지 위기를 맞게 됐다.

    진화하는 민주당과 임미 오케손

    2010년 5.8%(20석)라는 성적표를 거두며 스웨덴을 경악시키기 전까지 민주당은 어설픈 거리의 네오나치였다. 스웨덴에서 극우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는 철벽인데다 지지기반 없이 거리에서 난투극만 일삼는 민주당에게 표를 줄 리 만무했다. 초창기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고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 미만의 지지율이 계속되자 민주당은 농촌을 공략한 후 도시를 포위하자는 거창한 계획을 수립했다. 좌우 연합이 정권을 주고받아도 농촌경제는 변하지 않자 민주당은 농촌에서부터 지방의회에 진출해 기반을 마련한 후 중앙선거에서 봉쇄조항을 돌파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의 전략은 냉정하게 올바른 정세인식이었으며 농촌지역에서 지방의회에 진출하면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중앙선거에서는 1%가 마의 벽처럼 넘지 못하고 참패를 거듭했다.

    유럽 극우정당들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민주당의 케비어(?) 극우주의자들은 거리의 싸움꾼을 진압할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앤더스 클라스트롬 당수의 정계은퇴를 의미했고 명분이 없는 그는 당을 떠나면서 새로운 카드를 제안했다. 새롭게 당수에 오른 미카엘 얀손은 놀랍게도 민주당 출신이 아니었다. 얀손은 농어민정당이자 중도우파인 중앙당 소속으로 스톡홀름 외곽의 도시에서 지방의원을 맡고 있으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국회의원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청년그룹의 일원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의 의회 진출에 대한 갈증은 절박했다.

    얀손이 이끄는 200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받은 1.4%의 성적표가 당내 논쟁을 촉발했다. 이전 선거보다 약진한 결과였지만 선거 평가를 놓고 당은 절반으로 갈라졌다. 거리의 싸움꾼을 중심으로 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당의 극우 색깔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세련된 극우주의를 갈망하던 세력들은 당이 유권자의 눈에 맞는 극우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대립했다. 후자의 세력을 배경으로 얀손이 반대파를 진압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민주당 출신도 아닌데다 극우주의 정당의 지도자라면 가져야할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얀손은 당을 떠나면서 새로운 인물을 파격적으로 발탁하면서 반대파를 정치적으로 진압했다.

    임미 오케손 민주당 대표

    20대 중반에 당수에 오른 임미 오케손은 얀손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성골 출신은 아니었다. 정당 가입률이 50%에 육박하는 스웨덴에서 오케손의 부모는 보수당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그도 자연스럽게 10대에 보수당 청년조직에 가담했다. 오케손의 눈에 비친 보수당의 청년조직 민주청년동맹(MYL)은 그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낡고 관료적인데다 청년조직 특유의 역동성은 사라져 있었다. 위계적인 체계마저 작동하는 것을 경험한 오케손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때 그에 눈에 들어 온 것은 민주당이었다. 아직은 투박한 거리의 싸움꾼이지만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극우정당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케손이 민주당에 들어왔을 때는 당의 청년조직들이 하나로 묶여 있지 않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케손은 당의 청년조직을 하나로 묶는 일에 뛰어들었고 짧은 시간에 전국청년조직(SDU)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당내 근본주의자들과 선을 긋고 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케손의 수완은 얀손의 영입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당내 분란으로 얀손이 물러나자 그 빈 공간을 대신할 적임자가 부재했고 파격적으로 오케손이 발탁됐다.

    오케손이 먼저 주력한 것은 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반 난민과 반 이슬람은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지만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극우주의가 아니라고 명쾌하게 당의 노선을 정립했다.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은 거셌지만 오케손은 직위 해임이나 심지어 출당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했다. 당수에 오른 1년 동안 오케손은 당내 근본주의자들을 고립시키고 당의 이미지를 탈각시키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듬해인 200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2.9%라는 지지율을 획득하면서 의회진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케손이 내세우는 전략은 간명했다. 낡고 부패한 보수당을 대신할 새로운 우파정당이 그가 내세우는 단골 메뉴였다. 반 난민과 더불어 유로존 탈퇴도 독특한 발상이었다. 스웨덴은 EU가입국이지만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코르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럽연합 탈퇴라는 구호를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에 착상한 것이었다. 게다가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손을 대는 연금문제에 대해서도 오케손은 연금 강화라는 왼손 카드를 내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

    수당의 크리스테손 당수가 사민당의 소수정부를 반대한다면 지루한 교착상태가 계속될 것이고 재선거가 필연이지만 재선거를 하더라도 현재의 지지율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딜레마다. 게다가 재선거에서 보수당이 민주당에게 2당 자리를 내줄 위험마저 존재한다는 것이 난제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