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식집에서 '자장면' 시킨 KTX 여승무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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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1일 0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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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왜 이 특별한 기차에는 여승무원이 필요한 것인지 근원부터 따져보면 사회적 모순들이 전부 뒤엉켜있어 잘못 알고 얘기하면 함부로 예단하는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KTX의 원 모델인 TGV에는 여승무원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KTX에는 여승무원이라는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유야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사업추진 과정에서 수익률이 위험할 정도로 다른 돈이 많이 들어갔고, 그래서 장시간 달리는 열차에 보통은 설치되는 식당 칸을 없애고 전부 승객용으로 돌려서 소위 운행편당 승객 분담률을 높여서 더 높은 수익률을 높이자고 하는 제안이 나왔고, 그래서 식당 칸을 없애는 대신에 여승무원을 고용하게 되는 결정이 나온 셈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여승무원의 총인건비가 식당 칸 운영 대신에 늘린 승객운임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발상을 하게 된 거고, 마침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비정규직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채택하면서 여승무원 제도라는 매우 특별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종로구 경운동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KTX 승무원들과 이철 철도공사 사장과의 면담.  2006.5.9 (서울=연합뉴스)
     

    해법은 무엇인가? 전부 해고하고 다시 식당 칸을 신설하자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기왕에 고용한 사람이니까 고용안정성을 높이자고 해야 할 것인가? 근원부터의 답을 찾자면 단 번에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들이 더 어려운 질문이 되었다.

    왜 ‘여승무원’이어야 해? 왜 이게 파견직 근로자여야 해? 어차피 KTX가 운행되는 한에는 꼭 필요한 구성요소라면 당연히 정규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민주주의의 투사라는 이유로 철도공사 사장이 된 이철은 왜 이런 식으로 경영을 해?

    여기에 무슨무슨 ‘꽃’이니 하는 별로 이해되지 않는 편견가득한 말들까지 등장을 하더니, 급기야 한정식과 자장면까지 등장하였다. 본질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자장면’에 비유된 농성 중인 KTX 여승무원들이 사연이 너무 마음에 아프다.

    한정식집에서 자장면을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여승무원들이 농성 중인 강금실 선거운동본부 관계자의 표현-편집자)이 은연중에 상황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일까?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을 대변할 수 있는 뭔가가 우리나라에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용하게나마” 농성장을 빌려준 데에 대해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장면’ 취급한 데에 대해서 섭섭해 해야 하는 것인지 한 마디로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

    애달픈 비정규직의 사연이 어디 KTX 여승무원들에게만 있을까? 결국은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캠프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연도 딱하지만 면담을 위해서 약간의 주선을 해달라는 이들을 한정식집의 자장면 취급한 사연도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은 참여정부가 내세운 ‘개혁’의 아름다운 가면 뒤의 본질적 속성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 아닌가한다. 우리나라도 추세상 서비스업의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과거의 임금 삭감이 비정규직 형태로 바뀌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힘의 관계일 뿐이다. 절차 민주주의상의 개혁이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관계에서는 전혀 개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결국 이 ‘한정식집‘에 찾아갈 수밖에 없던 자장면들의 슬픔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일랜드 모델을 외치던 개혁파들에게 자장면이라는 비유를 받은 이 여승무원들의 미래는 지금과 같은 개혁모델 속에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고급 서비스 업종에 속하는 변호사들이나 의사들 그리고 역시 한 사회의 최고급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전문 정치업종에 종사하는 거대 정당의 정당인들에게 그렇게 멋진 업종에서 ‘단단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아이들은 역시 자장면일 뿐이다.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우리들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노동기본권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알려주고 황당하게 돈 떼어먹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전혀 개혁이나 변화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화려한 이미지와 만개한 형상 속에 감추어진 자장면 같은 현실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못내 마음이 아프다.

    자장면을 시킨 사람인지 아니면 자장면 그 자체인지가 주요하지는 않지만 ‘개혁’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본질의 한 숨은 모습을 KTX 여승무원들의 아픈 사연 속에서 보는 것 같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극우파 신문들은 매일 같이 나라 망한다고 큰 소리를 내지만, 자장면 취급받을 것이 뻔한 아이를 당신 같으면 낳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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