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기초의원 당선자에서
3선 거쳐 지금은 이후 모색하는 낙선자
[당당히 앞으로 ③] 김혜련 전 경기도 고양시의원
    2018년 09월 10일 1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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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레디앙>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짐을 진 노회찬의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김혜련 전 고양시의원, 3번의 기초의원을 역임하고 이번에 경기도의원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다음의 정치행보를 고민하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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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전 고양시 의원은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연고도 없는 고양시로 집을 옮겼다. 덜컥 당선됐다. 만 25세.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 당선자였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참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만 26세 민의원에 당선됐다) 4년 임기가 끝난 후 남편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과 함께 가족이 미국에 갈 일이 생겨서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2010년, 2014년 같은 지역에서 기초의원에 출마,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올해 경기도의원 선거에 도전, 33.4%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였으나 40%를 조금 넘은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오랜만에 쉬고 있다는 김혜련 전 의원을 만났다. 첫 번째는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두 번째는 고양시 화정역 인근에 있는 심상정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사진은 정의당 서울시당 김수정 청년국장이 맡아 주었다. 

이광호 : 요즘 뭐 하고 지내나?

김혜련 : 집에 있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하.

이광 : 집에서 뭐하고 지내나?

김혜 : 집에서 할 일 엄청 많더라. 책도 읽고, 애들 먹을 것도 챙겨 주고, 남편이 몸이 좀 허한 것 같아서 건강식도 가끔 해주고,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지낸다.

이광 : 책을 쓸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책은 쓰고 있나?

김혜 : 다른 시의원은 재선만 돼도 책도 쓰고 하는데, 정치 경력이나 이런 걸로 보면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은데(웃음) 기록이 없더라. 그래서 써보려고 한다.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다. 날이 너무 더워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셨다. 맥이 많이 빠지고, 속이 허해지고. 잘 써지지 않아 지금은 진도가 안 나간다.

이광 : 에어컨 없이 올 여름 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애들이 힘들어 하지 않았나?

김혜 : 어떤 날은 애들이 너무 덥다면서 울기도 했다.

이광 : 에어컨을 이용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환경운동을 해서 그런 건가?

김혜 : 처음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것 말고 전셋집에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에어컨 가격이 좀 떨어지는 이번 겨울에 사려고 한다.

이광 : 대학 전공이 정외과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 선택한 것인가, 점수가 맞아서 간 것인가?

김혜 : 정치를 해야지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외과를 선택했다.

이광 : 고등학교 때 본 세상이 어땠기에 바꿔야 된다고 생각했나?

김혜 : 1989년에 내가 중1이었다. 내가 다니던 사립 중학교에 전교조 해직 교사가 1명이 있었다. 그 선생님과 전교조 활동을 함께 하던 국어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90년에 국어 선생이 됐다. 그때 교과서에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실렸다. 국어 선생님은 이 시를 읽어 주면서 동시에 박노해 시인의 시를 엄청 많이 읽어 줬다. 이듬해 그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 됐다. 91년은 난리도 아니었다.(이 해 4월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생이 시위 중 경찰 백골단의 쇠파이프와 진압봉에 맞아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성난 민심은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후 수많은 젊은이들이 분신했다. 두 달 동안 13명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 와중에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파장을 일으켰다)

담임 선생은 수업 시간에 시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다. 중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선생의 영향으로 박노해 시는 물론 <태백산맥>을 비롯해 온갖 책을 읽었다. 이런 와중에 고등학교 운동하는 아이들을 만나서 같이 여기저기 쫓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 정치를 해야겠다. 정치를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정외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광 : 바꾸려고 했던 세상에 대해 조금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김혜 : 당시 특히 박노해 시편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었다. (시에서 묘사된 노동자의 실상을 간접 경험하면서) 정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당시 우리 집은 좀 잘 살았다. 내 아버님은 외항선 선장이었다. 이 직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 부산에는 이런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 많다. 외항선 선장이면 월급도 많이 받는다. 83년부터 좋은 아파트에 살았다. 연탄은 때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부산 미 문화원 뒤에서 웨딩샵을 운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좀 잘 사는 편이었다.

그런 나에게 박노해 시를 비롯해 책에서 나온 현실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이게 실화인가? 그렇다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광 : 데모 같은 건 안 한 편인가?

김혜 : 당시 학교 운동권은 나와 생각이 다른 노선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아주 부지런하다. 난 게으른 편이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선배들이 ‘쟤는 키우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팽 당해서 학내 주류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광 : 다행이다.(웃음)

김혜 : 그들과 같이 했어도 오래는 못 버텼을 것 같다.

이광 : 졸업 후 환경운동연합 간사로 갔다. 왜 거기로 갔나?

김혜 : 내가 2000년 2월 졸업했는데, 그때는 시민단체가 거의 정당 역할을 했다. 낙천. 낙선 운동도 열심히 했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돈 버는 것보다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99년 11월 참여연대 공채 1기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일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해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기획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환경운동연합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와서 냉큼 응모를 해서 들어가게 됐다. 2000년 7월이다.

이광 : 환경운동연합에 들어간 지도 얼마 되지 않고, 나이도 어린 김혜련이 왜 후보로 찍힌 것 같나?

김혜 : 활동가들 정치 참여 워크숍을 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시민단체는 반대나 하고 사후약방문이나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나,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시민운동 하다가 정치에 참여하는 선배들 욕먹는 것 이해 못하겠다, 필요하면 해야지 왜 욕을 하나,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 선배들이 내 얘기를 기억한 것 같다. 당시 박진섭 선배가 나가 보라고 제안했다.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는?

이광 : 어느 인터뷰에서 ‘잘 훈련된 정치인’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치인으로서 현재 목표는 무엇인가?

김혜 : 나는 지역 기반 없는 사람이 아니다. 주민들은 내가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내가 정치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의 의례적인 행보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내가 정치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해 봤다. 당직 선거에 나가야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 낙선된 직후 주민들을 만나서 “정의당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당을 통해서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당을 통해 정치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잘 못했다. 그래서 좀 구체적으로 내년 7월에 당직 선거에 뭐로든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 내가 당직 선거에 나가면서 주민들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주민들이 김혜련이라는 정치인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광 : 어떤 당직인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있나?

김혜 :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경기도당 위원장이든, 중앙당 부대표든 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광 : 지역구 주민보다는 당원들이 관심을 가질 사안 같다.

김혜 : 나는 그 동안 기초의원 활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당에 밀도 있게 결합하지 못했다. 국회의원 경우 의원직과 당직을 함께 맡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 고양시당에서는 시의원 하면서 다음에 기초의원에 나올 분들에게 지역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지역위원장은 현수막에 이름을 걸 수가 있다. 현수막에는 국회의원 심상정, 시의원 김혜련, 지역위원장 누구누구 이렇게 쓸 수 있다.

그 동안 나는 당연직 대의원 말고는 당직을 맡은 적이 없어서 당원과 접촉할 기회가 적었다. 이번에 당직을 맡아서 그 부분을 보완하려고 한다.

이광 : 2002년 첫 출마에서 연고도 전혀 없는 곳에서 전국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다. 뭘 보고 뽑아 준 것 같나.

김혜 : 나도 궁금하다. 물어 보고 싶었다. 그때는 동별로 1명만 뽑았다. 기초의원은 정당 공천이 없었다. 기호도 가, 나, 다, 순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정당 기호 1번은 한나라당이었고, 기초의원은 기호 가가 70% 정도 당선되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호 ‘다’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기호 다를 찍었다.

왜 그랬을까? 젊어서 그랬을까? 2002년에는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좀 있을 때다. 그리고 내가 나온 지역에 야당의 세가 강했고 30~40대가 밀집해서 살던 지역이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를 발굴해서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주택공사가 화정 지구에서 택지개발을 했는데 비어 있는 땅 5,000평이 있었다. 고양시 문화시설 용지로 돼 있었지만 시에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내가 여기에 문화시설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것이 주민들에게 먹힌 것 같다.

이광 : 당선 이후 문화시설 추진했나?

김혜 : 당연히 추진했다. 젊은 부모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 당시 어린이 박물관은 전국적으로 삼성 어린이 박물관 한 개였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박물관이 있던 잠실까지 가야 했다.(삼성 어린이 박물관은 2013년 폐관했다) 내가 고양시에 제안해서 어린이 박물관을 짓기로 확정했다. 이건 나의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담당 공무원들과 관련 시설을 벤치마킹하는 등 준비를 했다. 고양시에서는 120억 원 예산을 들여 땅을 샀다. 이 계획을 확정시킨 후 나는 임기를 마쳤다. 실제 시설이 완공된 것은 2014년, 오래 걸렸다. 김문수 경기도 도지사 시절 도에서도 어린이 박물관 설립을 중점 사업으로 정해서 예산 지원을 했다. 지금은 명소가 됐다.

이광 : 주민들이 어린이 박물관은 김혜련 시의원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나?

김혜 : 이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나 공무원들 정도는 알고 있다.

기초의원 3선, 당선의 이유는 

이광 : 한 차례 건너뛰긴 했지만 세 번 출마해서 모두 당선됐다. 3선의 힘, 어디서 나온 것이라고 보나?

김혜 : 좋은 인상? 하하. 2002년엔 1개 동이 선거구였는데 두 번째 선거 때인 2010년에는 5개 동이었다. 추가된 4개 동은 완전 생소한 동네고, 고양시에서 제일 보수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구도는 괜찮았다. 출마자가 5명이었는데 현직 의원 3명, 전직 의원 2명이었다. 모두 전현직 의원 5명이었다. 나름 구도에 맞는 전략도 잘 짰다.

이광 : 어떤 전략이었나?

이혜 : 내가 시의원 했던 동네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당시 김상곤 교육감이 되면서 2010년에 혁신학교 설립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교육에 관한 소문은 빨리 퍼진다. 내 지역구 인근에 혁신학교가 있었다. 서정초등학교였다. 독특한 학교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 학교를 밀도 있게 탐구했다.

전교조 출신 교장 선생님이 학교 접수해서 학교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김상곤 교육감발 교육 이슈가 끓어오를 때였다. 기초의원 선거지만 교육 이슈로 끌고 나갔다. 내가 과거 시의원을 했던 지역에서는 거의 1등을 기록했다. 나머지 지역은 표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후보들이 서로 갈라져서 구도로 볼 때 내가 불리하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심상정 의원이 경기도지사 사퇴 후 많이 도와줬다.

이광 : 미세먼지 대책 특위 위원장을 했다. 주요 성과로 꼽는 것 같다. 사실 미세먼지는 의제 자체가 큰 것처럼 느껴진다. 나라가 나서도 해결될 없는 국제적 이슈라는 생각이 드는데, 기초단체 차원에서 이 이슈가 실제로 잘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특위를 만든 배경과 성과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김혜 :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은 심상정 의원실에서 지역 민원 상담을 하는데 엄마들이 애기 데려와서 이종훈 보좌관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미세먼지가 심각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렇게 넘어갔다. 대선 기간 때 미세먼지가 심한 어느 날, 거리에서 마이크 잡고 떠들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방한 마스크 쓰고 다니는걸 보고 아차 싶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르신들에겐 미세먼지용, 방한용 마스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마스크 2장에 삼천 원 이상씩 한다. 더 비싼 것도 있고, 4인 가족이면 마스크 값이 1만원 가까이 되는 비용이다. 어르신들은 마스크를 잘 사지 않는다. 특히 저소득층의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마스크는 그림의 떡이다. 최소한 시의회가 나서서 마스크라도 꼭 쓸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중, 특별위원회가 생각났다. 시의원들도 정치인이라 촉이 빠르다. 의원들에게 “내년 선거 때는 미세먼지 정책이 공약 1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고, 특위 활동 경력 걸어두면 선거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의원들이 서로 들어가려 했고, 만장일치로 특위가 설치됐다. 특위활동을 한 의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특위 경력을 다 썼다.

하늘에서 만들어지는 미세먼지는 못 잡지만 땅에서 만들어지는 건 잡자, 이게 우리의 기본 생각이었다. 또 바깥 공기는 어떻게 못해도 아이들이 활동하는 실내 공기의 질은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방침이었다. 처음에는 지역기자들도 생색만 나고 끝낼 거라고 했지만 특위 활동 끝날 때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서울의 경우 미세먼지 발생 원인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경유차다. 서울은 승용차만 억제하면 굉장히 줄어든다. 경기도는 안 그렇다. 원인이 매우 많다. 시골에서 쓰레기 태울 때, 고춧대, 깨, 콩대를 태워도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배출 규제 규모 미만의 소규모 공장에서 내는 유해 가스도 마찬가지다. 버스도 대부분 경유다. 서울처럼 CNG(천연가스) 버스가 보급되지 않았다. 경기도는 관리가 어렵다. 미세먼지 수치도 경기도보다 서울이 낮다. 최소한 불법 소각을 단속하고, 소규모 공장에 배출물질 저감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지방정부 수준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미세먼지 대책 카페 회원들이 요구하는 대책도 우선 그런 것들이다.

고약 지역 발전소, 소각 시설, 화력 발전이 있는데 배출량이 기준치 미만이긴 하지만 미세먼지가 배출되는 건 사실이다. 아파트 공사 현장도 미세먼지 발생 요인이다. 공무원에게 경각심을 심어줬고, 함께 발전소, 아파트 공사 현장을 다 다녔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 가서 책임자한테 이 부근에 사는 엄마 중에 공업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가지고 실태를 실시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대로 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위는 회의가 속기되는 공개회의를 잘 안하는데,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모든 회의는 공개해서 진행해서 속기록을 남겼다. 시에 대기대응팀을 만들었고 고양시 미세먼지 원인 분석 용역비도 3억 정도 책정했다. 미세먼지 발생의 다양한 원인을 주민과 공무원들이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본다.

이광 : 3선(2002년, 2010년, 2014년) 의원하는 동안 그 지역을 얼마나 좋게 만들었나요?

김혜 : (웃으며) 좀 좋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우리 동네에서 서울까지 가는 버스도 개통시켰다. 경기도는 서울에 비하면 교통 사정이 열악하다. 출퇴근 시간이 길고, 자기 차가 없으면 다니기 불편하다. 기반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경기도민과 서울시민의 삶은 많이 다르다. 이 지역은 교통문제가 항상 1번 의제다. 서울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개통했다는 건 큰 의미다. 또 주민을 위한 도서관도 만든 것도 성과로 본다. 한 10% 정도 좋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광 : 이번 선거에서는 3선을 성공하게 만든 힘이 작용하지 않았다. 높은 득표율(33.4%)을 얻고도 낙선했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기초의원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일단 유권자 수, 지역구 넓이 등 양적인 차이가 많이 난다. 이런 차이는 선거운동의 질적인 차이를 가져 오나?

김혜 : 그런 것 같다. 심상정 의원은 “1등 선거, 3등 선거는 차이가 크다.”고 여러 차례 나에게 강조했는데, 이번 선거를 끝내고 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3등 당선은 3인 선거구에서 18% 받으면 당선권이라는 말이다. 난 이번 선거에서 38% 받으면 당선될 것으로 봤다. 자유한국당 후보가 현역 도의원이었고, 민주당은 초선, 나는 시의원 3선이었다. 자유한국당이 15~16% 득표할 것으로 보고 나머지 표를 나눌 경우 38% 득표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번에 5% 포인트 정도 부족했다.

1등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어느 아파트단지에 가든지 함께 앉아서 커피 마실 곳이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이든 미장원이든 구멍가게든 슈퍼든 세탁소든,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면서 30분을 떠들 수 있어야 한다. 3등은 안 그래도 된다. 3등은 2010년 사례에서 말한 것처럼 한 군데에서 선전하면 엎을 수도 있다. 마을이 10개가 있다고 치면 그 중에 1/3만 잡으면 되는 게 3등 선거다.

1등 선거는 10개 마을 전체에 아까 말한 30분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운동 해보니까 내가 그러지 못한 곳이 훨씬 많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1등 했다. 한 군데다. 내가 공력 많이 쏟은 곳은 1등 준하게 표가 나왔다. 나머지 표가 별로 안 나온 곳은 내가 안 다닌 곳이다. 다닌 만큼 나왔다. 지난 4년 의정 활동 과정에서 좀 더 깊숙한 곳까지 다니고, 이번 선거운동도 더 열심히 전략을 짜서 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혜련 전 의원은 선거가 끝난 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당에서 1등으로 당선되려면 다른 당보다 10배, 20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정당 변수, “여기는 정의당이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광 : 기초의원, 광역의원, 국회의원을 뽑을 때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이 달라진다고 보나?

김혜 : 2002년 기초의원 선거는 정당 추천제가 없었다. 유권자들은 당은 보지 않고 맘에 드는 인물을 뽑았다. 나와 장태수, 홍준호 같은 사람들이 이때 당선됐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정당 변수가 커지는 것 같다.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 요인은 물론 정권 심판 의미 등 복잡한 변수들이 투표에 내재돼 있다. 후보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후보에 대한 판단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역선거에 정당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내가 많이 들었던 얘기 중에 하나가 “덕양구는 정의당이지.” 하는 말이었다. 이 말이 여러 사람에게 널리 퍼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심상정 효과도 당연히 있었다. 사실 결과도 그렇게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 그 동안 당 지지율과 후보 지지율이 내 경우 1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5%포인트 수준이었다. 덕양 지역 정의당의 정당 득표율은 28% 가까이 나왔다. 내가 34% 얻었으니 차이 엄청 줄어든 것이다. 이 지역 기초의원 후보들은 정당 득표율만큼 받았다. 후보와 정당이 이번에는 매칭이 된 것이다. 심상정 의원과 내가 공을 많이 들인 곳이 있는데, 입주한 지 5년된 아파트 단지다. 거기서는 우리가 정당 투표에서 1등을 했다. 2등과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대단한 결과다.

이광 : 다른 지역에서도 “여기는 정의당이지.”라는 말이 나와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정의당 지역 조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김혜 : 꾸준함이다. 심 의원이 2008년에 처음 출마했다. 10년 동안 뛰었다. 10년의 힘이다. 꾸준한 실천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30~40대 주민들이 진입된 것도 물론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보수적 투표 행태를 보여 온 동네에서도 지지율이 계속 올라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심상정 같은 인물이 있는데도 10년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더 오래 걸린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당 지지율 2~3%에서부터 올라온 것이지만, 지금은 10% 넘은 수준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나는 수도권의 경우 당 지지율을 20%까지 올리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시간을 좀 당길 수 있다.

우리는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 광역 비례의원들 경우 기초의원이 있는 곳에서 주요하게 지역 활동을 해야 된다고 본다. 예컨대, 서울의 광역비례 권수정 의원의 경우 정의당 기초의원이 있는 곳에서 세트로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지역구로 반드시 선택할 필요는 없다. 경기도 비례대표 이혜원 의원도 주로 부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혜선 의원 지역구인 안양에서 함께 붙어서 활동해야 한다고 본다. 광역의원은 기초의원과 달라서, 더군다나 비례대표는 지역주민과 밀착 결합이 쉽지 않다. 이미 민주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로 움직여 시너지 효과를 노리면서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또 개인적으로 당직자들에게 선출직 출마 계획이 있으면 당 지지율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온 고양에 와서 승부를 보는 게 낫다, 20% 가까운 지지율이라는 자산이 있다, 고양시로 이사 와라, 이런 얘기도 했다.

이광 : 후보, 정책과 함께 일상 활동을 오랜 기간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설명은 사실 아주 새로운 시각은 아니지만 실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김혜 : 내가 이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너무 ‘진보정당다운 활동’이라는 당위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수권 정당을 지향하는 정당의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이광 : 그런 생각에 갇혀서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던 구체적 사례가 있으면 하나 소개해 달라.

김혜 :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긴 하다. 우리가 선거할 때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경쟁자보다 낫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아껴야 하니까, 당원 중 누가 노력 봉사로 사진 찍어 주고, 이런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2010년에는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공보물을 만들 때 돈을 꽤 많이 주고 전문 기획사에 맡겼다.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다. 나의 이런 행동이 진보신당 당원들에게는 낯설게 보였던 것 같다. 진보정당은 당원들이 자원봉사로 사진도 찍어주고 디자인도 해줬는데, 꼭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나를 보며 했던 것 같다. 실제 그런 얘기를 한 당원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선거 못 이긴다고 말했다. 다른 당도 마찬가지다. 당원 중심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의 당면 목표와 딱 들어맞지 않은 수가 있다. 선거는 당선을 위한 것이다. 당원을 중심으로 한 당 조직 강화가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여야 한다.

노회찬 심상정도 떨어져 본 사람들이다

이광 : 이번 낙선이 개인 정치 역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김혜 :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많이 생겨서 좋고, 당 활동에 매진할 기회가 생겨서 좋다. 길게 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심상정과 노회찬도 떨어져 본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나올 때마다 당선되겠나. 4번 나와서 3번 당선됐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광 :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풀뿌리 정치, 지역 정치 차원에서 의미 있는 차별성을 가지고 유권자에게 영향을 주나? 정당, 이념, 정책보다는 스킨십, 민원 해결 같은 일상이 더 많이 강조되는 것 같은데.

김혜 : 나는 그 동안 “당이 맘에 안 든다, 빨갱이 정당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활동해 왔다. 그리고 당은 마음에 안 들지만 후보, 사람은 좋다는 얘기였다. 이제는 그런 얘기 거의 안 듣는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이 가진 핸디캡을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당과 후보를 갈라서 생각하지 않으시니까 말이다.

“저 사람은 원래 한나라당이야. 얘기해도 소용없어” 나에게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원래 한나라당이어도 김혜련에게 표 줄수 있다고 생각하고 만나고. 얘기하고, 민원을 해결해 줬다.

동네 어른신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표 안된다고 오지도 않나 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르신들 표는 두 표인데, 왜 안와요. 다른 당은 한 표 빠지고, 우리가 한 표 늘면 합이 두 표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엄청 좋아하신다.

김혜련은 2007년 9월 미국에서 돌아왔다. 귀국 후 앞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던 때 심상정 의원이 고양에 지역구 후보로 나선다는 이야기를 지역 신문 편집장으로부터 들었다. 그후 심 의원 쪽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심 의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애만 보고 있으면 되나’며 자신도 돕고, 본인도 정치를 재개할 것을 요청했다. 주변과 상의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심상정이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심상정을 만나 지금까지 정치적 동지로 활동하고 있다.

이광 : 심상정 낙선(2008년), 전국 최소 표차 당선(2012년), 수도권 최다 득표 당선(2016년)이라는 역사가 씌어졌다. 도대체 이 동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건가? 후보 요인이 큰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요인들도 있을 텐데.

김혜 : 2012년 개표장에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쓰러질 뻔했다. 그땐 단일화 여론조사 과정부터 정말 다들 죽기 살기로 뛰었다. 심상정 의원 기본적으로 정치적 촉이 좋다. 2012년에는 현역과 붙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현역과 경쟁은 쉽지 않다. 하지만 결과는 최소 표차 당선이었다. 신승을 거둔 심 의원은 앞으로 후보 단일화 없는 3자 구도에서 이겨야 한다는 현실을 염두에 두고 4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선거에서도 단일화해서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난 당시 말이 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택지 개발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 30~40대 젊은 사람들이 대거 입주했다. 거기에 집중을 많이 했다. 이와 함께 제일 보수적인 동네도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 심 의원이 동원할 수 있는, 예산 확보를 비롯한 모든 방안을 찾아내서 집중 지원하는 등 의정 활동을 폈다. 신도시 같은 경우는 마을 연합회에 밀도 있게 결합했다. 나도 모든 의정활동은 표를 조직하는 것을 중심으로 했다.

진보정당 정치인이나 보수정당 정치인이나 표를 먹고 산다. 표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터부시 하면 안 된다. 표 없이 무슨 수로 당선이 되나? 표를 얻기 위한 모든 행동은 정치적으로 ‘숭고’하다고까지 생각한다. 돈을 뿌려서 매표를 하는 것 아닌 이상 모든 활동이 인정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재량 사업 논란은 이해가 안 된다. 발품 팔아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재량사업비 안 쓰면 다른 놈이 쓰는데 왜 딴 놈 표 만들어 주는 일을 하나.

표를 얻는다는 것, 마음을 얻는다는 것

이광 : 표를 가져온다는 건 사실상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계기는 물론 다양할 수가 있겠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마음 가는 데 돈이 가고, 선거할 때는 마음 가는 데 표가 가는 것이다. 마음을 가져온다는 게 가족이 아닌 이상 이해타산과 계산이 매개될 수밖에 없다. 지금 말씀하신 대목은 현실 정치인들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진보정당에는 어떤 종류의 문화라고 할까, 그런 것이 이런 얘기를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막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정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런 것 같다.

김혜 : 내가 엊그제 초선 의원들 교육을 하면서 한 말이 있다. 우리 지역은 오래된 곳이라 마을회관이 곳곳에 다 있다. 과거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이곳이 마을 공동재산으로 등기가 됐고, 70년대부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지역 공동체의 거점이 됐다.

그런데 고양시에서는 이것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수리비 등을 지원하지 않았다. 어느 마을회관을 방문했는데, 농업인 건강 증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찜질방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방치됐고, 시에 수리 요청을 해도 안 됐다. 공무원들은 지원근거가 없어서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되게 만들어야지. 나는 곧 마을회관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힘들게 예산도 2~3억 원 책정됐다. 내가 예산을 세우면서 공무원 팀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건 내가 제안하고 내가 시작한 조례를 통해 예산이 책정된 거다. 내 지역구부터 이 예산을 사용하겠다. 반대하지 말라.” 그는 잘 알겠다고 답했다. 최초로 내게 문제제기를 했던 마을회관에 2,000만 원을 지원해서 찜질방을 수리했고, 우리 지역구에 있는 마을회관 5~6군데에 1,500만 원씩 지원해서 마을회관을 수리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겨울에는 종일 찜질방을 이용한다.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서 전기요금도 얼마 안 나온다. 반응이 너무너무 좋았다. 김혜련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얘기를 해주면서 초선 의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게 재량 사업입니까? 선심성 예산이에요?” 나는 이에 대한 논란은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본다. 선심성 예산이 아닌 예산은 세상에 없다.

시골에서 사는 노인들은 다른 말(또는 운동권 사투리?)로 표현하면 ‘민중’이다. 그들의 일상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진보정당 정치인의 당연한 의무다. 선출된 권력의 합법적 힘을 통해 이를 관철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존재 의의 가운데 중요한 하나다. 이런 당위가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지속적인 실현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진보정당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생생’ 체험기로 들으면 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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