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중심 현장실습’,
    청소년 저임금 노동착취?
    교육부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직업교육 대안 마련 촉구
        2018년 09월 07일 06: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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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LG유플러스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재학생인 홍수연 양은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콜센터 내에서도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높다고 알려진 계약해지를 막는 부서에서 일했다. 홍 양은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과를 전공했다.

    같은 해 11월엔 특성화고 재학생인 이민호 군이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압착기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 군은 학교에서 원예를 전공했지만 현장실습에선 생수를 압착기로 포장하는 일을 했다. 그가 이 업무에 투입되기까지 단 5일간의 교육이 진행됐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현장실습대응회의가 주최하고 금속노조가 주관해 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무늬만 학습중심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직업교육 대안 마련 촉구’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은 특성화고 재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와 기업, 학교의 의도는 현장실습생들을 “연장근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고 “군말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김 위원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체에 파견된 학생 수 27,152명 중 일을 그만둔 학생 수는 7,575명으로 거의 30%에 달하지만 현장 실사 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어서 파견됐던 학생들이 왜 일을 그만둬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고졸 학력으로도 안정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실습이 실제 취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검증된 연구자료조차 없다. 김 위원장은 “졸업생에 대한 장기간의 추적 연구를 통해 주장의 정당성 여부가 확인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통계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장실습이 특성화고 재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연달아 벌어진 지난해,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교육부는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선안이라고 내놓은 이 방안엔 여전히 현장실습을 ‘교육’이 아닌 ‘값싼 노동력 제공’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교육부 발표안은 현장실습을 노동력 제공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특성화고 재학생들의 현장실습과 관련해, 2012년부터 수차례 ‘학습중심’을 강조한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도 현장실습에 나간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교육부의 대책이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과거의 정책적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도 서면으로 대신한 모두발언에서 2018년 교육부의 방안에 대해 “현장에선 조기 취업을 허용하고 있는 학습중심 현장실습 방안이 말로만 ‘학습’, ‘안전’이지 저임금 노동착취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 위원장은 “교육부를 비롯한 교육당국은 학교와 기업 모두 학습중심 현장실습에 대한 이해와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한다면 그간 현장실습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산업체 파견형 형장실습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을재 전교조 부위원장은 “제주도에서 죽음을 당한 학생은 원예과인데 생수회사에서 일하다가 사망했고, 엘지유플러스에서 일하다가 죽은 학생 역시 애완동물과인데 텔레마케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며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의 저임금 노동을 부려 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 노동탄압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노동문제라고 치고 다 접어두더라도 이건 현장실습이 아니라 사기”라며 “노동부와 교육부, 중소기업청이 합작한 교육농단”이라고 일갈했다.

    이 부위원장은 “학생들은 3년 동안 온전하게,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노동부, 교육부와 중소기업청도 학생들의 취업의 문제를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졸업 전에 학생들을 전공과 무관한 현장으로 보내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 째 학생들이 현장실습에 나가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기만”이라는 “특성화고에서 더 이상 현장실습이 지속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제대로된 방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청소년 전담 근로감독관 배치 등 사전적, 사후적 조치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민호 군이 산업체에서 협약서의 내용과 다른 현장실습을 했지만 담당교사는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방문지도의 의무가 있는 담당교사가 산업체에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허위로 방문지도 결과보고서와 학생평가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과 학교는 해당 교사에게 ‘주의’ 처분만 내렸다.

    이정미 대표는 “현장실습을 명분으로 학교가 ‘인력파견업체’로 전락해선 안 된다”며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 보호를 위해 보다 강력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청소년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하고, 산업안전과 근로기준 등 노동법을 교과수업으로 편성해 학생들의 권리구제를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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