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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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1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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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로마제국은 전 세계 수백 나라에 군대를 보내 놓았고
    필요한 만큼 그 나라 땅을 자기네 군사기지로 사용한다
    농사짓는 땅이든 고기잡이 하는 섬이든 관계치 않는다
    전 세계 나라 열에 여섯 정도는 그렇게 가 있다
    그들이 세운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가 벌어지면
    신로마제국은 스물 네 시간 생중계를 하여
    두려움을 전파하고 군소 부족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들은 창과 칼로만 세계를 정복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에서 신로마제국의 말을 사용하게 하고
    신로마제국의 영화와 음료수를 좋아하며
    로마식 겉옷과 그들의 미소를 선망하게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로마의 후원을 받던 세력이
    로마반군으로 성장하여 원수가 되거나
    원한을 품은 폴리스들이 늘어났듯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닦아 놓았는데
    그 길을 따라 순식간에 반로마 시위가 퍼져 나가고
    급기야 어느 날은 순교를 각오한 이들이
    신로마 한복판을 향해 거대한 포탄이 되어 터지곤 하였다
    죽고 다친 수많은 신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이 왜 처절한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물었고 진짜로 그 이유를 모르는 이가 많았다
    그리하여 끝까지 무력에 의한 지배를
    선택하였고 선제폭력을 일삼았다
    명분도 도덕도 잃은 전쟁을 선택하는
    신로마제국 황제와 귀족들은
    그때 그것이 멸망으로 향하는 전쟁임을 믿지 않았다
    피와 칼로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도종환_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제1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여받았으며 제7회 민족예술상, 제2회 KBS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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