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디앙은 친노 매체다?
        2006년 05월 10일 07: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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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의 뿌리는 <서프라이즈>?

    이 해괴한 주장의 근원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에 걸쳐 “인터넷 ‘보수의 대반격’”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 인터넷 지형이 크게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획을 연재했다.

    이 기획은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인터넷정치연구회’(회장 유석진 서강대 교수)가 지난 4월 한달간 인터넷 공간의 이용자와 이용 행태에 대해 분석한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온라인 전문 조사기관인 ‘폴에버’에 의뢰해 지난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네티즌 1,500명을 상대로 설문을 실시하고 인터넷 사이트·카페·토론방 등을 4월 한 달간 관찰한 결과다.

    분석 결과의 주된 내용은 인터넷 공간이 진보성향의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통념’과 달리 단순한 이용빈도가 아니라 댓글을 쓰거나 글을 퍼오는 등의 적극적 행위는 오히려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며, 보수적 성향의 사이트가 급성장하면서 사이버 공간 상에서 일종의 좌-우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인터넷 공간 보수 우위의 역전 현상 발생’

    그동안 사이버 공간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와 연구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조사 자체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여론 공간인 인터넷의 실태에 대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가지고 만든 ‘분석’에서 의문이 드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노무현 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인터넷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믿는 조선일보가 ‘보수 우위’라는 조사 결과를 보고 과도하게 흥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 조선일보 10일자 기사 중 정치인 홈페이지 방문 순위, 이는 지지도라기 보다 호기심의 반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사실을 왜곡해서 보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10일자 신문에서는 정치인 홈페이지 방문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를 보여주며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 1위부터 3위까지를 그리고 모두 6명이 10위권 안에 들어간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를 한나라당이 넷심을 장악하고 있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단순한 홈페이지 방문횟수가 해당 정치인의 인기와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해당 정치인의 이념지향에 대한 동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수위표를 보면 3위에 박계동 의원이 들어가 있다.

    누가 봐도 이는 박 의원의 ‘동영상 유포 사건’의 결과다. 즉 홈페이지 방문 회수란 인기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치인이 더 많이 사고쳤나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이 사고를 칠수록 상위 순위에 더 많이 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순위는 주요 포탈 사이트의 정치인 검색순위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을 놓고 단지 10명의 방문자 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령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혹은 민주노동당 소속의원 전체의 홈페이지 활용도와 방문자수 균형도를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조선일보가 흥분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과도한 흥분이 빚은 조선일보의 착시현상

    또 다른 의문은 조선일보가 말하는 ‘보수 역전’의 판단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이전에 인터넷 공간이 진보 우위였다는 조사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조사 결과는 없다. 조선일보 기사에도 나왔듯이 인터넷 공간이 그동안 진보적 성향을 보였다는 ‘통념’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동안 인터넷의 주된 이용자는 개혁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여겨져 왔다. 이는 주요 방문사이트의 성향, 미군장갑차 살해사건, 대선과 탄핵 등에서 보여진 여론의 동향 등을 통해 검증되는 것으로 생각됐다. 또한 20~30대 학생과 사무직 노동자가 인터넷의 주된 사용계층으로 조사되는 결과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애초에 인터넷이 진보적 공간이라는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된 이용자의 성향과 몇몇 인터넷 매체만을 가지고 “사이버 공간=진보적 공간”이라고 가정한 것은 잘못된 추론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의제보다 사건 자체에 매몰되고 여론이 쉽게 조작되는 등 인터넷의 매체 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핵’의 경우 비상적인 정치행태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노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지 인터넷 공간이 애초에 진보적인 곳이기 때문에 그곳만 유난히 시끄러웠다는 식의 분석은 오류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의 인식을 가장 널리 확산 시킨 곳은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2002년 대선 이후 방송과 사이버 공간을 진보가 장악한 ‘진지’로 규정하고 이의 탈환을 위해 신문의 많은 면을 할애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 황우석 파동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한 네티즌이 만든 그림
     

    사이버 공간이 진보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환상

    하지만 같은 지면 안에서도 다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 10일자 같은 기획면에는 이번 조사를 담당한 인터넷정치연구회 소속 교수들의 소감을 보면 “보수의 온라인 결집은 대안적 정치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의 제시라기보다는 반 노무현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쏠린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진보의 극성’으로 매도한 것도 조선일보고 노무현 정권의 인기하락을 ‘보수의 반격’으로 오독하고 있는 것도 조선일보라는 이야기다. 조선일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격이다.

    또한 조선일보 9일자는 보수 성향 사이트의 중흥과 진보 성향 사이트의 분열을 대비하면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공안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임의로 ‘조직도’를 그렸던 것처럼 실재하는 매체 현실을 왜곡하는 그림과 설명을 게재했다. 우선 진보사이트가 아닌 곳들을 진보로 구분하고 매체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레디앙>을 억지춘향식으로 끼워 맞춘 것이다.

    장우영 서강대 교수(정치학)가 집필한 것으로 되어있는 이 기사에서 <레디앙>은 “친노 언론인 ‘오마이뉴스’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매체”로 설명되고 있다. 반면 해당 기사에 겯들여진 도표에서는 “친노 허브인 ‘서프라이즈’에서 분리된 매체”로 묘사되고 있다.

    “레디앙은 서프라이즈에서 분리된 사이트”

       
    ▲ 조선일보 9일자 기사에 사용된 그림의 일부. 하단에 레디앙이 포함돼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언론학)는 지난 해 출간한 저서 <시민미디어론>에서 이미 인터넷 매체를 ▲조선닷컴, 동아닷컴 등 오프라인종속형 매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보도 위주의 독립형 매체 ▲서프라이즈, 진보누리와 같은 칼럼 위주의 정치웹진 형 매체로 구분하고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이러한 분화가 완료돼 각 분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 됐다. 하다못해 서프라이즈 만해도 본 사이트와 보도 기능 중심의 데일리서프라이즈로 분화된 상태다.

    레디앙 또한 보도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신문으로 서프라이즈와는 그 형태부터가 다르다. 또한 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서프라이즈와 공유하는 부분이 없다. 왜 조선일보가 웹진 형 사이트들 속에 성격이 전혀 다른 레디앙 하나 만을 덩그러니 집어넣어 그림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왜 유독 레디앙만을 ‘친노사이트’의 일종으로 둔갑시켜 그림 속에 집어넣는 과도한 관심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로, 레디앙은 오마이뉴스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신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레디앙의 창간사에서도 분명히 밝힌 부분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일단 1차적인 사실관계에서도 부합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다 심각한 조선일보의 착시현상은 진보가 아닌 사이트를 진보라고 우기는 것이다.

    진보가 아닌 것을 진보라고 주장하는 신문

    조선일보는 서프라이즈를 필두로 여기에서 분화한 남프라이즈, 이너모스트 등 민주당 지지성향의 사이트를 묶어서 ‘진보’로 포장했다. 반면, 프레시안, 참세상, 프로메테우스, 민중의 소리, 레이버투데이와 같은 진짜 진보 성향의 매체들은 언급을 안했다. 진보를 이야기하면서 알맹이만 쏙 뺀 셈이다.

    조선일보가 진보라고 분류한 민주당 지지 성향의 사이트에 방문해 보면 현 정권을 진보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현실인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서프라이즈의 경우 굳이 지난 황우석 박사 사건 때 서프라이즈에 게시된 글들의 입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서프라이즈를 과연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지난 2월 서프라이즈에 대해 “황우석 지지자들이 모여 ‘사실’에 애써 눈을 감은 채 서로 간에 ‘믿음’을 강화해주는 해괴한 신앙의 공동체로 변모해 버렸다”고 했다.

    오히려 황우석 박사 사건 기간 동안 조선일보가 이번 기획에서 보수로 분류한 사이트들 중 일부가 서프라이즈보다 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만약 서프라이즈가 진보라면 이들 사이트는 ‘급진적 진보’로 분류돼 마땅하다.

    조선일보의 이런 사상적 혼란은 ‘진보’에 대한 그들이 유일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오직 노무현 대통령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노무현은 진보, 노무현은 나쁜 정치인, 따라서 진보는 나쁜 것”이라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인식 속에 세상을 꿰어 맞추려 하기 때문에 이런 무리수를 두고 있다.

    어디를 봐서 노무현 정권이 진보적인가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대통령, 비정규직 양산이 고용문제의 해결이라고 인식하는 신자유주의 대통령, 미군기지를 위해 국민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대통령, 미국의 통상이익을 위해 자기 나라의 농업과 문화주권을 포기하는 대통령, 노동운동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국민의 통합을 주장하는 대통령, 참여정부라는 구호아래 서민의 삶을 더욱 왜곡시키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자주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정작 대미종속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대통령.

    상식을 가지고서는 이런 대통령과 정권을 ‘진보’로 규정할 수 없다. 대통령 스스로도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진보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해도 대통령과 정권 스스로를 ‘중도보수’, ‘개혁적 보수’, ‘실용주의자’로 규정하는 마당에 ‘당신들은 진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애초에 대통령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를 놓고 진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도 잘못이다. 진보냐 아니냐는 개인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 정책에 대한 입장과 태도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말한 친노사이트들은 정책에 대한 의존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에 주력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탄생부터 ‘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레디앙은 현 정권이 ‘타락한 진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충실한 보수 정권으로 파악한다. 아울러 한국사회에서 잘못 사용되는 ‘진보’와 ‘좌파’라는 단어에 대한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보가 아닌 것을 자꾸만 진보라고 고집하는’ 조선일보의 비언론적 행태부터 고쳐져야 한다.

       
    ▲ 대표적인 친노사이트 서프라이즈의 메인화면 일부
     

    인터넷 공간의 건강한 발전이 우선되어야

    이번 조선일보의 조사는 소위 ‘넷 우익’의 확산이라는 세계적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넷 우익’이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인터넷상에 장시간 머물면서 댓글이나 게시물을 통해 인종주의적, 성차별적, 국수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집단을 지칭한다.

    사회학자들은 미국과 일본처럼 양극화와 심화되고 실업의 급증으로 개인의 불안이 높아진 사회에서 초고속 인터넷 사용인구가 늘어나면 개인들이 이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양극화의 심화나, 인터넷의 사용인구를 놓고 보면 한국이야말로 우익적이고 공격적인 인터넷 사용자가 형성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지난 황우석 사건 당시 여론의 동향이나 최근 문제가 된 댓글폭력사건, 그리고 민감한 민족주의 이슈에 대해 대중이 보이는 격렬한 반응을 보면 인터넷 공간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기획에서도 눈에 띠지는 않지만 언급되어 있다. 인용하면 “같은 이념과 코드를 지닌 네티즌끼리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한다면 인터넷 공간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더욱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인터넷이 건전한 의사소통 공간으로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보수가 우위냐 진보가 우위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사회의 건전한 소통의 공간이 되고, 매체로서의 올바른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실명제’ 도입 같은 통제 위주의 접근이 아니라 자율적인 발전을 지원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기존의 매체들도 대중들에게 편가르기를 강요할 게 아니라 의제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실조차 왜곡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위해 의도적인 편집을 일삼는 조선일보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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