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나리를 통해 본 진화와 진보 
[푸른솔의 식물생태] 환경에 적응하는 어떤 진화
    2018년 09월 05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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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나리는?

​뻐꾹나리<Tricyrtis macropoda Miq.(1867)>는 백합과 뻐꾹나리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의 산지 숲속에서 주로 자란다. 봄에 새싹이 나서 7~8월에 꽃을 피우며 간혹 더 늦은 시기에 개화하기도 한다.

백합과에 속하고 씨방이 꽃 속에 숨어 있으므로 속씨식물이며 어린 싹이 발아할 때 떡잎이 하나로 나오기 때문에 외떡잎식물이다. 꽃 하나의 내부에 암술과 수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양성화(bisexual flower, 암수한꽃)이고, 꽃받침과 꽃잎이 서로 분화되지 않고 꽃덮이(화피)로 합쳐져 있으므로 불완전화(不完全花)이다.

<사진1> 뻐꾹나리의 모습

<사진2> 뻐꾹나리의 봄의 어린 새싹

<사진3> 뻐꾹나리의 꽃구조

​​뻐꾹나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뻑국나리’로 기록되었고 그것이 이후 표기법의 변화에 따라 조선식물명집(1949)에서 현재의 ‘뻐꾹나리’로 변화하여 정착되었다. 꽃덮이(화피)에 있는 분홍색의 얼룩 문양이 뻐꾹새의 목 부위에 있는 무늬 모양과 닮았고 나리(백합) 종류와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이 식물을 일본명으로 데후센오토토기스(テフサンホトトギス, 朝鮮杜鵑草)라 했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자라고(한반도 특산종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중국 및 일본 분포가 확인되었다), 꽃에 있는 반점이 두견새 목에 있는 얼룩덜룩한 무늬와 닮은 식물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두견새는 뻐꾹새와 그 형태가 비슷하므로 뻐꾹나리의 이름에서 ‘뻐꾹’은 일본명 ホトトギ(杜鵑, 두견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명 중​ 속명 Tricyrtis는 그리스어 treis(3)과 cyrtos(굽다)의 합성어로 세장의 화피 기부가 주머니모양으로 굽어 있는 것에서 유래하며, 종소명 macropoda는 ‘긴 자루의, 큰 대의’라는 뜻으로 꽃자루가 길게 올라오는 것을 지칭한다.

양성화(암수한꽃)의 오래된 고민

화석의 기록에 의하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진 속씨를 가진 꽃식물인 Amborella속 식물과 일부 수련속 식물(Nymphaea)은 양성화(암수한꽃)를 가졌다. 이는 최초 속씨식물들이 양성화(암수한꽃)이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이에 대하여는 Linda E. Graham외 2인 공저/강원회 외 11인 역, “Plant Biology’, 월드사이언스 2nd Edition(2008) p443 참조].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같은 개체가 만들어 낸 암수생식세포과 수정하여 결합하는 자가수정(autogamy)를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다. 열성인자의 유전도 문제이거나 같은 개체가 만들어낸 암수생식세포는 결국 같은 개체의 유전자를 가진 것이어서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속씨식물은 암수를 분리하여 별도의 꽃을 만드는 단성화(unisexual flower,, 암수딴꽃/암수딴그루)로 진화하기도 하였다.

단성화(암수딴꽃/암수딴그루)로 진화를 하지 않고 암수를 한 꽃 내부에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자가수정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이것이 양성화(암수한꽃)의 꽃을 가진 식물의 오랜 고민거리이다.

​​매개곤충과의 공진화

<사진4> 뻐꾹나리의 꽃에 앉아 흡밀하는 뒤영벌 종류의 모습

​식물은 이동성이 없으므로 수꽃(또는 수술)의 꽃가루를 암꽃(또는 암술)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바람을 통해 이동하면 풍매화, 물을 통해 이동하면 수매화, 새를 통해 이동하면 조매화 그리고 곤충을 통하여 이동하면 충매화가 된다. 뻐꾹나리는 충매화이고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뒤영벌 종류에 적합한 꽃구조를 가지고 있다.

​충매화가 특정한 종류의 매개곤충에 적합하게 꽂구조를 만들고 그 특정한 매개곤충이 꽃을 찾아오는 과정은 서로에게 맞추어 진화를 해 오고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의 진화과정인 공진화(coevolution)로 설명된다. 뻐꾹나리는 꿀샘(nectar)을 꽃의 아랫쪽에 만들고 꽃술(암술과 수술)은 위로 올림으로써 매개곤충으로 뒤영벌(또는 그 종류)에 적합하도록 공진화하여 왔다는 것이다.

​뻐꾹나리가 자가수정을 피하는 방법​

<사진5> 뻐꾹나리 꽃의 개화초기의 모습(1)

<사진6> 뻐꾹나리 꽃의 개화초기의 모습(2)

<사진7> 뻐꾹나리 꽃의 수술기  모습(1)

<사진8> 뻐꾹나리 꽃의 수술기  모습(2)

<사진9> 뻐꾹나리 꽃의 암술기  모습(1)

<사진10> 뻐꾹나리 꽃의 암술기  모습(2)

<사진11> 뻐꾹나리 꽃이 수정을 한 후의 모습(1)

<사진12> 뻐꾹나리 꽃이 수정을 한 후의 모습(2)

<사진13> 뻐꾹나리 결실기의 모습(1)

​<사진14> 뻐꾹나리 결실기의 모습(2)

<사진5>에서부터 <사진14>까지는 꽃봉오리에서 수정을 완료하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담아 시간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크게 분류를 해보면 개화초기==>수술기(웅성기)==>암술기(자성기)==>수정기==>결실기의 순서이다.

– 개화초기(직전기) :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초록색에서 점차 자색이 돌아 꽃의 개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 수술기(웅성기) : 암술과 수술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수술이 먼저 자라고 가운데로 굽어 뒤영벌 종류의 등에 수술의 꽃밥이 닿아 꽃가루에 묻을 수 있도록 자란다.

– 암술기(자성기) : 수술의 꽃밥이 꽃가루를 뒤영벌 종류의 등에 묻히는 작업을 완료하고 나면 수술은 위로 올라가고, 암술이 굽어져 아래로 향한다.

– 수정기 : 다른 꽃의 꽃가루를 등에 묻히고 온 뒤영벌 종류가 암술의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히면 수정이 되고, 수정이 끝나면 암술도 위를 향한다. 쓸모가 없게 된 꽃덮이(화피)와 수술은 먼저 떨어져 나간다.

– 결실기 : 씨방이 자라기 시작하고 암술은 그 끝에서 흔적만 남는다. 남은 암술마저 떨어져 나가면 씨방은 열매(fruit)로서 제 모양을 갖추고 성숙을 시작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뻐꾹나리는 한 꽃에서 암술과 수술이 만나지 않도록 성숙하는 시기를 달리하여 자가수정을 회피한다는 것. 흡밀을 하는 과정에서 수술의 꽃가루를 등에 묻힌 뒤영벌은 식사를 마친 후 다른 꽃을 향해 날아가고 그곳의 꽃이 암술기라면 흡밀하는 과정에서 다 자란 암술의 암수머리(주두)에 꽃가루를 묻힘으로써 타가수정(allogamy)을 완성한다는 것. 뻐꾹나리의 성숙한 수술의 꽃밥과 암술의 암술머리가 향하는 곳은 뒤영벌 종류가 흡밀할 때 등에 닿을 수 있는 그 자리이기에 뻐꾹나리는 매개곤충인 뒤영벌 종류에 맞추어 공진화하였다는 것.

​진화는 곧 진보인가?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1859)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모든 생물이 그 등급에 있어서 상위로만 발전하려는 경향을 가졌다면 아직도 전 세계에 수많은 최하등 형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중략)…미래의 일은 알 수 없지만, 과학은 아직까지 이러한 신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등생물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도태 또는 적자생존은 진보적 발달이 더불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복잡한 생활 관계 속에서 모든 생물에게 일어난 유리한 변이를 이용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윈의 위 언급에 따르면, 진화(進化)는 진보(進步)가 내포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개념을 내재하지 않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자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유리한 변이를 이용하며 그것에 의하여 자연선택된 과정이 곧 진화라는 것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속씨식물의 유전자가 반드시 단성화(암수딴꽃/암수딴그루)로 가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단지 자신의 형태에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도의 모습을 갖추면 된다. 주위에 존재하는 뒤영벌을 활용하여 그 크기에 맞게 꽃을 만들고 수술과 암술의 순서를 정하여 뒤영벌의 등에 닿도록 유전자에 각인시킨다면 양성화(암수한꽃)만으로도 자가수정을 충분히 회피할 수 있음을 뻐꾹나리는 보여준다. 진화란 곧 모든 생물이 환경과 접하며 살아가는 생활에서 행하는 ‘적응’을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이고, 굳이 가야할 방향과 그에 대한 가치를 내포 또는 내재하지는 않다는 것을 뻐꾹나리의 꽃구조는 온전히 보여준다.

나아가 아래의 사진은  뻐꾹나리가 단지 단성화(암수딴꽃/암수딴그루)의 방향성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양성화(암수한꽃)의  자신의 환경에 맞추어 필요한 적응을 해 왔다는 것을 넘어 서로 성을 나누어 유성생식을 시작하기 이전에 원시생물이 갖추고 있었던 성이 없는 번식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도 환경 적응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가르쳐 준다.

​뻐꾹나리의 또 다른진화

<사진15> 뻐꾹나리의 뿌리에서 자라는 땅속줄기(지하경)의 모습

​뻐꾹나리의 꽃에는 간혹 덩치가 보다 작은 꿀벌 종류나 덩치가 더 큰 나비류가 오기도 하지만 이들 곤충은 뻐꾹나리의 꽃이 수정하는 것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수술의 꽃가루가 담겨 있는 꽃밥과 암술의 암술머리가 뒤영벌이 흡밀하기 위하여 꽃 안쪽의 밀샘(nectar)을 향해 있는 동안 등에 닿을 수 있도록 그 종류에 맞추어 공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해에 뒤영벌 종류가 번식에 실패해서 꽃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뒤영벌 종류가 많아 졌다고 해도 개화기에 비가 계속 내려 곤충이 꽃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어떻께 할 것인가?

​뻐꾹나리는 그것에 대히바여 땅속에 뿌리 외에 줄기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 그 줄기는 땅속에서 옆으로 뻗어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낸다. 즉, 꽃의 수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도 개체의 번식이 가능하도록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의 방법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진화하였다.

​맺으며

​​진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며 그 자체로 방향성이나 가치관을 내포하지 않는다. 뻐꾹나리의 삶을 통해 되뇌어 묻노니 변화하는 현실에 충분히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는가?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은 가지고 있는가? 그 가치와 방향성 그리고 적응의 노력을 서로 조율하고 조화시키고 있는가?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여갈 즈음에 뻐꾹나리는 예쁘게 피어 그 삶의 치열한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인류보다 더 오래 전에 등장하였을지도 모르는 저 황홀한 생명이 스스로 겪고 형성하여 만들어낸 아름다움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매해 그로부터 배우고 익힐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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