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개혁위 권고
    노동부, 무시·침묵 일관
    금속노조 "‘기업에 고용된 노동부’라는 조롱 스스로 극복해야"
        2018년 09월 04일 06: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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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노동조합 무력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업장에 시정명령을 하라는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에도 1달째 어떠한 후속조치도 하지 않아 비판이 일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개혁을 통해 ‘기업에 고용된 노동부’라는 세간의 조롱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며 개혁위의 권고사항 이행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사항 이행촉구 및 전체 자료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는 개혁위가 제시한 낮은 수준의 권고조차 이행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엔 개혁위 보고서에 나온 노조파괴·불법파견 피해사업장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금속노조 기자회견(사진=유하라)

    노동부, 개혁위원회의 권고에 침묵으로 일관
    정보공개, 사과, 진상조사, 관련자 징계 등의 어떤 조치도 없어

    노동부는 제도개선을 위해 설치하도록 한 TF팀, 진실규명을 위한 추가 진상조사 등 권고 내용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개혁위가 지적한 노동부의 과거 잘못과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정보공개는 모든 것의 기본”이라며 “(개혁위 자료) 정보공개 청구를 오늘 공식적으로 접수할 것이며, 노동부가 이것에 대해 불응할 경우 소송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정보공개를 비롯해 징계 등 관련자 처벌,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민사, 손배, 형사 책임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은 인적 청산”이라며 “부당노동행위에 직접 관여한 이들은 징계, 기타 인사조치 등으로 배제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똑같은 일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파괴로 악명이 높은 유성기업 노조 문제도 행정개혁위에서 다뤄졌다.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회사의 노조 탄압에 8년째 맞서 싸우고 있다. 특히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는 부당노동행위로 최초로 구속된 사업주로, 현재는 임금체불 문제로 재판 중이다.

    실제로 노조 파괴에 동조한 노동부 관계자들 대부분은 어떤 처분도 받지 않은 상황이다.

    엄기한 유성아산지회 부지회장은 “개혁위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 특히 노동부까지 모두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진행했다. 노동부조차 노조 파괴의 한통속이 돼서 노동자들을 괴롭힌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011년 단 두시간 파업에 회사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회사의 직장폐쇄가 불법이라고 확정 판결을 했다”며 “그러나 당시 천안고용노동지청장은 ‘1분만 파업해도 회사가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판단했던 지청장과 노조 파괴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또 다른 노동부 관계자 모두 징계는커녕 승진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 “여러 법률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긴 하지만 노동부가 현행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 많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다른 수사에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강제조사 원칙이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대해서 이뤄진 적이 없다”면서 “노무사 등의 부당노동행위 개입 문제나 불법파견 문제 해결도 현행 제도 하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노동분야 적폐청산을 담당하는 장관 직속 자문기구인 개혁위원회는 9개월의 활동을 마치고 지난달 1일 ‘불법파견, 노조 무력화 등의 과제에 대한 조사결과 및 권고안을 의결’하고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개혁위에서 권고한 노조파괴·불법파견 금속노조 사업장 무려 9곳

    권고안에 따르면, 금속노조에 속한 노조파괴·불법파견 사업장은 무려 9곳이다. 유성지회, 갑을지회, 삼성지회, 보쉬지회, KEC지회, 발레오만도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기아차비정규지회 등이다. 이들 사업장 중엔 회사의 노조파괴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만 4명에 달한다.

    그러나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피해 사업장과 관련한 유감 표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 후속조치는 물론 권고사항 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개혁위가 권고안에서 제기한 사안 중 내놓은 유일한 공식적인 입장은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취소 거부가 전부다.

    이날 회견에선 피해 사업장 노조 조합원들도 참석해 노동부의 개혁위 권고안 이행을 촉구했다.

    이미옥 구미지부 KEC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개혁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정권 하의 노조 파괴 행위는 조직적인 국가폭력”이라며 “회사는 파업 전부터 검경 관계기관과 공조 체계 구축했고, 국정원은 조합원의 동태까지 파악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편에 섰던 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회사인 KEC는 2011년 복수노조 허용 후 기존에 있는 민주노조 외에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이후 2차례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 수석부지회장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노조 파괴 실상은 밝혀져야 한다”면서 “노동부는 개혁위의 권고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계획을 밝히고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위는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노동탄압 문제 해결도 노동부에 권고했다. 2013년 당시 노동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불법파견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불법파견은 아니다’라는 결과를 내놨다. 당시 근로감독관은 불법파견이라고 결론냈지만 노동부 고위공무원들이 이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확인됐다.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노동부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후 열사가 생기고 지옥 같던 노동탄압을 5년간 겪어야 했다”며 “노동부가 애초에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개혁위 권고안에 묵묵부답으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행정개혁위가 권고한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묵인하고 덮으려고 하는 모습”이라며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불법파견과 관련한 시정명령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삼성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겠다고 언론에 밝혔지만 아직까지 직고용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 측은 교섭에서 불법파견이 의심되는 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직고용을 거부하거나 자회사 설립 방침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곽 부지회장은 “검찰과 노동부는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범죄 수사에 밍기적거리고 있고, 불법파견 판정을 뒤집었던 관계자는 승진까지 했다”며 “노동부의 이런 태도 때문에 삼성이 자회사를 논하고 콜센터 직원을 직고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제기된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14년간 법원은 현기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수차례 냈지만 노동부는 제대로 된 시정명령조차 내린 적이 없었다.

    정민기 울산지부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벌써 14년 전 일이다. 그런데 기아차는 여전히 불법파견으로 투쟁 중”이라며 “이제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을 해결하고 대한민국사회에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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