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와 서구인들의 일본 판타지
        2006년 05월 10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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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면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130년 전 이야기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마치 <반지의 제왕>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역사물이라기보다는 판타지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 미국인 장교가 메이지 초기의 일본에 건너와 총을 버리고 칼을 든 사무라이로 완벽하게 변신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현실감 있는 역사극이라기보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아시아를 다룬 할리우드의 영화치고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운 영화는 거의 없는 만큼 이런 식의 비판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오히려 일본, 특히 일본의 무사도에 대해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묘한 경외감이 이 영화의 배경에 깔려있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지폐에 얼굴이 그려져 있는 니토베 이나조가 1899년 영어로 <무사도>라는 책을 써 서구에 소개한 이후 서구인들은 사무라이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됐다. 또 일본인은 모두 사무라이라는 식의 인식을 갖게 됐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정신문명이 붕괴한 서구에서 명예와 충성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문화인 무사도가 큰 감명을 주었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해석이고, 이미 근대성과 총으로 무장한 서구인들에게 칼 한자루로 전쟁을 한다는 사무라이들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세계의 무엇, 다시 말해 판타지 문학으로 읽혔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반지의 제왕>처럼 말이다.

    서구인들이 사무라이를 이해한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영화 <스타워즈>시리즈다. 제다이를 보라. 신비주의와 귀신같은 칼 솜씨, 이게 바로 파란 눈에 비친 사무라이다.

    이런 식의 이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가미카제식의 자살 특공대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그 자살특공의 희생양이었던 미국인들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미카제가 현대의 사무라이들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일본인들과 미국인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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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사무라이>가 공개됐을 때 이 영화를 ‘사무라이와 함께 춤을’이라고 부른 평론가들이 많았다. 영화 <늑대와 춤을>과 너무나도 흡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미군의 전쟁 영웅이 한쪽은 인디언에, 다른 한쪽은 일본인에 동화되면서 그들을 위해 싸운다.

    <늑대와 춤을>은 미국이 서쪽으로 확대되면서 국가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디언이라는 이질적 요소 만나는 것을 배경으로 한 동화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서구의 근대성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동양이라고 하는 이질적 문화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동화다. 두 영화가 닮은 것은 사실 이야기 구조가 흡사해서가 아니라 근대성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낯선 것을 만나게 됐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매혹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늑대와 춤을>의 주인공은 인디언이 아니었고,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도 일본인들이 아니다.

    물론 인디언들을 무슨 두더지 잡듯이 죽이는 전통 ‘서부영화’들에 비하면 <늑대와 춤을>은 장족의 발전을 한 영화고, 중국인들을 마치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처럼 그린 <북경의 55일>에 비하면 <라스트 사무라이>도 장족의 발전을 한 영화다.

    그래도 40~5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할리우드의 시각도 뭔가 깨달은 바가 없다면 섭섭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북경의 55일>은 서구의 관객만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고, <라스트 사무라이>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동서양 모든 관객의 기호에 맞춰 기획된 영화다. 때로는 깨달음을 통한 반성보다 상업적 이윤이 더 강한 동기가 되는 법이다.

       
    ▲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할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복원한 메이지 초기 일본의 풍경은 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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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사무라이>는 픽션이다. 영화를 홍보할 때도 실제의 인물이나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 영화의 모델이 된 인물과 사건들을 지적했다.

    그전에 영화의 주연이자 제작자인 톰 크루즈는 이미 90년대 초반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던 미국인 용병 프레드릭 워드(Frederick Townsend Ward)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오우삼(!) 감독과 함께 진행했던 이 프로젝트는 93년 무산됐다.

    그로부터 10년 뒤 톰 크루즈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프로젝트를 실현시킨 셈이다. 물론 영화의 방향은 180도 다르다. 워드의 삶은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로 중국인을 학살한 용병에 불과하고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 네이든 알그렌 대위는 일본에서도 사라져가는 사무라이의 혼을 잇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마 10년 전의 중국 프로젝트가 성사됐더라면 톰 크루즈의 영화 경력에 오점으로 남았을 것이다.

    비록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워드의 이미지는 영화 속 네이든 대위의 모습에 많이 투영됐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지목하는 주인공의 모델은 프랑스 군인 쥴 브뤼네(Jules Brunet)이다.

    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군대를 현대화할 군사고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온 그는 1년만인 1868년 도쿄의 막부군과 교토의 천황군이 맞붙은 보신전쟁의 결과 막부가 패배하면서, 집권한 천황 측으로부터 일본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쥴 브뤼네는 이 명령을 거부하고 프랑스 육군에서 사임한 후 북부에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막부군에 합류한다. 그러나 패전을 거듭한 막부군은 에조치(지금의 홋카이도)에 상륙해 그곳에서 에조 공화국을 설립하고 마지막 저항을 펼쳤다. 쥴 브뤼네는 이 에조 공화국의 지휘관으로서 전투에 참가했다. 하지만 1869년 5월 하코다테성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 에조 공화국의 장성들과 프랑스 고문단의 사진. 앞줄 왼쪽 두번째가 쥴 브뤼네다.

    프랑스로 탈출한 쥴 브뤼네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어서 터진 보불전쟁으로 현역에 복귀했고 훗날 프랑스 육군참모총장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무엇이 그를 스러져 가는 도쿠가와 막부의 편에 서게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일본의 역사에서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친 서양인의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특별하게 눈에 띠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육군의 출세자리도 마다하고 일본인 병사들과 함께 정부군(천황군)에 맞서 싸운 그의 선택은 영화속 주인공과 많이 닮아 있다.

    영화 속 네이든 대위가 사실상의 ‘주군’으로 모시는 카츠모토는 그 유명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한 것이다. 사이고 다카모리하면 우리에게는 ‘정한론’이 떠오른다.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그에 대한 존경은 남다르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주역 중의 하나인 그는 그러나 그 후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유신 이후 천황 중심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구 세력들간의 긴장은 종종 반란으로 표출됐다. 몇차례의 반란이 일어나고 진압되기를 거듭하다가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자신의 고향 가고시마에서 천황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른반 세이난 전쟁의 시작이다.

    전쟁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더 이상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때 자기가 옹립한 천황에 거역하고 칼을 빼들은 사이고 다카모리는 역적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웬걸, 지금도 도쿄 우에노 공원에 가면 그의 동상이 버젓이 서있다.

    영화 속 카츠모토도 메이지 천황을 위한 유신에 함께 했지만 사무라이의 전통을 버리고 근대화하라는 천황의 영에 거역하고 결국 칼을 빼들지만 정부군에 진압 당한다. 그러나 천황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정부군도 모두 그를 ‘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위대한 ‘무사’, 사무라이로 추앙한다.

    실제 역사에서 쥴 브뤼네가 싸운 하코다테 전쟁과 사이고 다카모리의 세이난전쟁은 10년의 시간차가 있다. 그리고 둘이 일본에 함께 있는 기간에서는 서로 반대 진영에 서있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실존했던 두 인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피비린내’ 나는 환상극이다.

    그러고 보면 메이지 천황은 지금도 근대 일본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반역자 사이고 다카모리도 도심 한복판에 동상이 서있지만, 정작 천황과 사무라이들을 위해 죽어간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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