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판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책] 『담대한 여정』(정세현, 황방열/ 메디치미디어)
    2018년 09월 01일 10:43 오전

Print Friendly

70여 년을 옥죄어온 한반도 냉전구조는 해체될 것인가. 한반도의 판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평화와 통일을 준비해야 할까. 40년 동안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필생의 화두로 삼아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듣는 가장 쉽고, 가장 정확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저자 정세현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서, 풍부한 현장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한반도 정세 변화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특히 북한과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문재인 정부가 자국 중심성을 잃지 않고 한반도 문제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운전자론’을 이끌어 가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차가 극명하게 엇갈려 왔던 것은 물론이고, 고립과 폐쇄정책으로 일관해온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편견에 갇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선대와 달리 파격적 행보를 펼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낼 수 있는 탁월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정세현 장관은 남북회담이 가장 빈번하던 시절에 대북 접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총 170여 개의 남북합의서가 작성된 가운데 73개를 통일부 장관 재임 중에 작성했다는 점에서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손꼽힌다. 아울러 지금의 변화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알려준다.

급변하는 한반도 문제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이야기하기는 쉽다. 하지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풀어내는 일은, 고백하건대 북한 사람들과 협상하기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러다가 올해 아홉 살 된 손자와 외손녀가 떠올랐다.

‘그래,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될 때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고, 그 세상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할아버지 마음으로 풀어내보자.’

그런 마음으로 쓴 이 책이 지금의 3040 세대와 그다음 세대에 약간이나마 힌트가 된다면 커다란 보람이 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번영을 바라는, 내 자식과 내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좋아지길 바라는 시민들은 이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새 세상이 오는 걸 준비해야 한다. 평화와 번영은 대통령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만드는 것이다. _머리말 중에서

문재인-김정은이 열어갈 2020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이 한 차례씩 열린 데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에만 유례없이 두 차례가 열렸고, 연내 평양에서 한 차례가 더 열릴 예정이다. 한편 북한과 미국은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이후 70년간 정상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열린 적이 없었으나, 6·12 북미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열리면서 드디어 한반도에도 평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이 의미가 큰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 미사일이 자국 영토까지 넘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 됐다는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폐쇄 경제를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에서 열렸다는 사실이다. 자그마치 70년간 최강 적대관계에 있던 두 정상은 2020년까지 각자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의 판을 뒤엎을 수도, 유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저자는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맞바꾸는 과정에서 온갖 잡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한편 주변국들도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챙기기 위해 한반도라는 투전판으로 몰려들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반도 국제질서가 재편됨에 따라 주변국들과의 ‘관계의 판’은 어떻게 재정비해야 하는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전후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핵 문제가 해결 프로세스를 밟기 시작하면 유엔 대북제재는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과도하게 해석해서 그렇지, 유엔 대북제재 아래서도 인도적 지원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핵이 완전히 폐기가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가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은 복원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얼마나 큰 마찰음이 생기겠습니까. 분단체제가 깨지는 과정인데. 사사건건 잡음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이념 논란, 남남 갈등을 키울 정도로 과속하면 역효과가 생깁니다. 경제협력 문제도 비핵화 속도에 맞춰 나아가야 합니다. 비핵화 → 남북 관계 → 북미 수교 및 평화협정, 이런 순서로 가는 게 좋습니다. 남북 관계가 중간에 가야 ‘운전자론’과도 맞고요. 우리로서는 비핵화 속도에 맞춰 양쪽을 연결하면서 가는 게 좋습니다. _46~47쪽

한반도 판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한때 ‘핵전쟁’ 설전까지 벌였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70년 적대관계를 끝내기 위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했다. 2017년 말까지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모든 대화를 거부했던 북한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고위급 특사단을 주고받은 뒤 상반기에 두 차례, 하반기에 한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한마디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판이 바뀐 것이다. 그 계기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미국과 빅딜을 할 수 있는 카드를 갖게 되면서다.

정세현 장관에 따르면, 미국은 그동안 동아시아 대외정책에서 상대 국가의 의중을 읽어내는 데 착오가 많았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그동안 압박과 제재로만 핵을 포기하게 만들었기에 오늘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더 고도화시킨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핵이 미국과의 협상 수단이 되면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가져왔고, 우리 역시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70년 분단체제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깨닫고,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어떤 실천 행동들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꽤 오랫동안 평화협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북한의 간교한 술책이고 평화 공세의 일환이기 때문에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적어도 남쪽에서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무지개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보이긴 보이는데 잡히진 않고, 해가 뜨면 사라 져버리는….

나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평화협정 얘기가 나오면 ‘글쎄, 과연 이게 이뤄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평화협정을 북한이 자꾸 제기하니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분명히 북에서 밀고 내려온다는 공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평화협정이 진실로 가능하게 됐어요. 우리에게는 평화, 북에게는 북미 수교로 연결되도록 꼭 만들어야 합니다. _112쪽

많은 사람이 ‘저 두 사람이 손잡고 높이 5cm, 폭 50cm의 저 작은 군사분계선을 치우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눈물이 났을 겁니다. 분단시대, 분단체제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내 생전에는 계속 전쟁 공포를 느끼면서 서로 미워하며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그게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런데 앞으로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잘 오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문 대통령이 잘했든 트럼프가 잘했든 누가 잘했든 간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이런 세상이 오는구나”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_138쪽

북한은 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최근 북한이 주요 문서 등에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명시해놓은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2017년 11월 말까지도 핵과 미사일 실험에 집중한 북한이 이처럼 개혁개방과 제도 개혁을 통해 경제에 주력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뭘까.

1978년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선포한 이래 미중 관계가 꾸준히 개선된바, 김정은 역시 개방을 해서 미국의 힘을 빌려 외자를 유치해 인민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키려는 중대한 정책 전환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러자면 새로운 관계 개선(북미 수교, 체제보장)과 한반도 평화 구축, 비핵화 조치들이 각각 어느 단계에서 무엇과 짝을 맞춰 행동으로 나아갈 것인지 타임 테이블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에 와서 모든 대외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요. 김정은도 거기에 맞춰서 자기 당대에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겁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 못 이룬 경제발전을 이루고 싶지 않겠어요? 이를 위해 기존 정책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보고, 그래서 트럼프와 문재인을 잘 활용해서 환골탈태할 결심을 한 겁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해놓고 핵은 그대로 끌고 가겠다? 그렇게 되면 유엔 대북제재는 그대로 계속되는데, 이게 앞뒤가 맞습니까?

지금 김정은의 화두는 경제건설이고, 그러면 그전 정책은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6개월 만에 다시 열었는데, 과거를 답습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했겠어요? 정책 전환 의지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경제에 힘쓰겠다! 핵에는 더 이상 돈 안 쓰겠다! 핵은 협상카드로만 쓰겠다!” 다만 그동안 압박과 제재 속에서 힘들게 핵을 만들었기 때문에 싸게는 안 팔겠다는 이야기인 겁니다. _65~66쪽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한쪽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지만, 저자는 김일성 시대의 고난의 행군부터 주체사상의 태동 배경, 김정일의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와 2009년 화폐개혁, 김정은의 경제개혁 조치(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까지 톺아보면서 북한 사회의 변화(개혁개방)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 밖에 북한 사회가 더 이상 백두혈통으로의 세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라든가, 북한의 주체사상이 반미가 아닌 중국과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태동됐다는 점, 1983년부터 중국이 북한에 중국식 개방개혁을 권유했으나 김정일이 거절한 사연, 보수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촉발된 중국 천안문 사태가 개혁개방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반북 이데올로기는 해체될 것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45년 8월, 한반도에 도둑처럼 찾아든 냉전과 분단이라는 고질병이 봄기운에 밀려나는 겨울처럼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통일’ 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머리에 박혀 있는 탓에 ‘통일=재앙’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통일비용은 일본 신용은행들이 ‘독일식’을 그대로 적용한 계산법으로, 이 계산법에 따르면 실업자가 된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하기에 그 비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247쪽).

통일비용과 함께 선동성이 강한 용어인 ‘퍼주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상 지금 한국 사람들이 성조기 들고 데모하게 된 배경도 6·25전쟁이 끝나고 배고팠던 시절에 미국이 우리한테 밀가루, 쌀 등 온갖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이 미국 대륙으로 건너간 것이다(263쪽).

우리가 북과 사이좋게 지내고 그들과 통일을 이루려면 마음을 연결해야 합니다. 마음을 연결하는 방법은 오직 퍼주기예요. 미국이 퍼주는 건 괜찮고, 우리가 퍼주는 것은 안 된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야 하는 것처럼, 미국이 퍼줘서 우리가 오늘날 잘살게 됐다면 우리도 북의 경제가 어려울 때 똑같이 도와줘야 할 게 아니겠어요? 미국은 우리가 불쌍해서,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도와준 건데, 북은 우리와 같은 핏줄입니다.

탈북자들이 대개 먹고살기 힘들어서 온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 사회에 탈북자가 3만이나 있다는 것은 북이 대단히 못산다는 걸 입증해주는 거고, 그럼 줘야죠. 미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줄 때 동포라서 줬나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준 겁니다. _265쪽

대북지원과 관련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북을 돕는 까닭에 대해 정세현 장관에게 한 말은 특히 큰 울림을 준다. “우리가 북을 돕는 건 인도주의도 아니고 동포애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을 돕는 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266쪽)

도리 밑에 동포애, 동포애 밑에 인도주의가 있는데, 대북 협력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동포애까지는 가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보다 높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서 도리로 북한을 대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분단의 세월이 긴 만큼 이제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정서만 가지고는 통일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 간 화해협력이 심화되면 통일의 구심력이 커지면서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고, 결과적으로 국방비(전체 국가 예산의 10%에 해당)에 쓸 돈을 복지와 교육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272~273쪽). 게다가 북한이 우리 경제의 블루오션이 될 거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에 찾아온 이 기회가 지나가는 일장춘몽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현재 한반도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고, 이 새로운 흐름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건 단순하게 돈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 민심이 녹아내리고 남북 간 화해협력이 심화되면서 통일의 구심력이 커지는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방비를 대폭 줄일 수 있지 않겠어요? 대북지원을 통해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면 국방비를 아낄 수 있고, 그 줄어든 국방비를 복지나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데, 어떤 걸 선택하는 게 낫겠습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퍼주기’라는 논리가 분단 고착 이데올로기이고, 긴장 지속 이데올로기이고, 평화 반대 이데올로기이고, 그리고 복지 반대 이데올로기였던 겁니다. 결국 남과 북이 함께 잘사는 길로 나아가는 건데, 굳이 이 쉬운 방법을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요? _273~274쪽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