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한테 그래요? 떨어지길 바래요?"
By tathata
    2006년 05월 09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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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파업 70여일째를 맞고 있는 KTX 승무원을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일 해외순방 길에 나서면서 “선거기간을 이용해 집단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벌이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여야와 선거 유불리를 떠나 법질서 유지 차원에서 엄격히 대처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무실을 지난 6일부터 점거한 KTX 여승무원들은 이 말을 듣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직접고용을 외치며 격렬하게 싸워왔지만, 그들을 향해 대통령이 내던진 첫 마디가 ‘엄정대처’라는 말에 허탈감이 들었다.

   
▲KTX승무원지부 조합원 42명은 지난 6일부터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예비후보 선본 사무실에서 농성하고 있다.

민세원 철도노조 KTX승무원지부장은 “한명숙 국무총리도, 열린우리당도 찾아갔고, 이철 사장과의 면담도 요청했지만 모두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15일로 예정된 해고날짜는 다가오고 있다”며 “대통령마저도 우리를 불법행위나 하는 귀찮은 존재로 밖에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감과 분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엄정대처’를 지시한 날, 강금실 선본 사무실을 찾았다. 선본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자 경찰들이 기자를 가로막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취재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 “KTX 승무원과 관련된 분들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선대본 관계자와 연락을 취하자, 그제야 경찰은 길을 열어주었다. 서울시민을 위해 일하기로 나선 강금실 후보는 시민을 향해 열어야 할 문을 경찰들의 출입통제로 제한하고 있었다.

KTX승무원이 점거하고 있는 곳은 10평 남짓의 회의실. 좁은 공간에 42명의 승무원들이 빼곡하게 모여있어 열기가 후끈했다.

손지혜 KTX지부 상황실장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며 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얘기하고, 정동영 의장과 한명숙 총리와의 면담을 요청하면 번번이 거절하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서 누구와 얘기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손 실장은 “이제 남은 곳은 강금실 후보 사무실뿐이었다”며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농성을 시작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24시간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출입은 자제돼 밖으로 나갈 경우, 경찰의 통제를 받는다. 식사는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잠은 책상을 물린 후 침낭을 깔고 잔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높아지거나 외부 출입이 잦으면, 선대본의 항의가 오기 일쑤다.

한 조합원은 “어느 날 선대본 관계자가 와서 ‘자꾸 왔다갔다하면 시민들이 당원으로 여길 수 있으니 농성장에서 나오지 마라’고 했다”며 “왜 우리가 꽁꽁 숨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승무원조합원들은 십자수를 놓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농성현장에서 십자수를 놓는 일은 KTX승무원 조합원이 ‘최초’가 아닐까?
 

선거준비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이들은 외치던 노래도, 구호도 자제하고 있다. 투쟁하는 사람에게 구호는 힘이자 무기이지만, 박여진 씨는 “구호마저 외치지 못해 답답한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대부분 십자수를 놓거나, 책과 잡지를 읽고 있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오로지 “권영길을 찍으면 이회창이 된다”는 ‘유언비어’에 속아 노 후보를 찍었다는 한 조합원은 이날 노 대통령이 ‘엄정대처’를 발언한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을 찍은 손가락이라도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며 “다시는 열린우리당을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강금실 후보도 이들에 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선대본 발대식이 있은 지난 7일 여승무원들이 강금실 후보에게 “여기에 여성비정규직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십시오”라고 외치자, 강 후보는 “나한테 왜 그러느냐, 내가 떨어지길 바라느냐?”고 단 두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강 후보는 싸늘한 시선으로 농성장을 한번 바라볼 뿐 그저 지나쳐 갔다.

   
▲’강북도심개발’로 서민정책을 강조하는 강금실 후보에게 여성노동정책은 없었다.

강 후보의 선대본 관계자들은 KTX 승무원들의 점거농성을 두고 “번지수를 잘못 찾아 한식집에서 자장면을 시키는 격”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황신용 선대본부장은 “농성 때문에 시끄러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시험이 코앞에 다가와 피 마르게 준비하는 학생에게 엉뚱한 문제를 내고 막무가내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본부장은 “KTX 승무원들의 문제는 서울시장의 권한과 책임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라며 “서울시 산하기관도 아닌 문제를 서울시장 후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서울시장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에 문제해결을 촉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농성을 푼다면 이철 사장과의 면담을 주선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승무원들이 거절했다”고 전했다. KTX 승무원지부는 “면담의 성사도 확약 받지 못했는데 농성을 푼다는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민이 행복한 서울을 디자인하겠다’는 강 후보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선대본 정책팀의 김성환 씨는 “먼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법안이 통과돼야 하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최소화하고,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질문을 거듭 하자, 그는 “아직 그 분야에 대한 자료는 신문 스크랩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해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고백했다.

여성노동자의 70%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에 대한 정책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한 강 후보에게 KTX승무원지부의 문제는 황 본부장의 말대로 “번지수가 다른 문제”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침낭을 깔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승무원들.

철도공사와 KTX승무원지부의 인권위원회의 조정도 최근 3차 조정을 끝으로 결렬됐다. 인권위는 “노사쟁의 사항은 인권위의 조정 밖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철도공사와 정부, 열린우리당이 모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이 (주)철도유통이 통보한 해고시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승무원들의 불안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갈 곳 잃은 KTX 승무원들이 이제는 어디를 찾아야 할지 탄식이 깊어지는 사이, 승무원들은 침낭을 깔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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