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는 왜 병원 떠나나?
    [청년기자들] 간호 일터를 바꿔야
        2018년 08월 30일 09:4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간호사, 침묵을 깨다’

    지난 5월 12일, 쏟아지는 빗속에서 집회가 열렸다.

    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故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움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산병원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나 사과, 재발방지 등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4월 18일, 17개의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발족했다. 그리고 같은 달 23일에 국회에서 토론회를 갖고, 국제 간호사의 날인 5월 12일에 ‘간호사, 침묵을 깨다’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수십 명의 간호사들은 ‘나도 너였다’는 공감의 구호로, 선배 간호사와 교수들은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집회에 모였다.

    5월 12일,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간호사, 침묵을 깨다’; 집회가 열렸다.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집회다. 비가 많이 왔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사진=필자)

    태움은 왜 생겼는가? – 간호인력 부족

    이후 언론들은 태움에 대해 주목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로, 신규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목적 하에 이뤄지는 조직 내 위계적인 학대 행위다. 그러나 23일 <한국 사회 간호 노동의 현실과 개선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의료연대본부는 태움과 같은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태움을 양산한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 중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병원 현장에 만연한 간호 인력 부족이다.

    나라별로 같은 연도를 비교한 수치는 없지만,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수는 한국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서울대 조성현 교수의 <간호인력과 간호서비스의 변화> 중 주요 국가의 간호사 1인당 간호 환자 수 그래프를 보면, 대부분의 나라들이 10명 안팎인 반면, 한국은 상고병원이나 종합병원은 16.3명, 일반병원은 43.6명 수준이다.

    정부는 이러한 간호 인력 부족에 대해서 예전부터 대책을 내놓았다. 2008년부터 간호학과 신설 및 입학정원을 증가시켜 작년에는 10년 전보다 약 8,000명 넘는 인원이 증원됐다. 빠른 속도로 신규 간호 인력이 증원됐다. OECD 평균과 비교해 봐도 눈에 띄게 많다. 2015년 자료에 의하면, 인구 10만명 당 배출 간호인력 수가 한국이 109.6명, OECD 평균이 46.0명으로 한국이 OECD 평균에 비해 2배보다 많은 간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 간호인력은 인구 천명 당 한국이 5.9명, OECD 평균이 9.0명으로 한국의 간호인력은 OECD 평균에 절반 수준이다. 정부의 방향은 간호인력 배출이 증가하면, 활동 간호인력이 증가할 거란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유휴간호사 재취업 활성화, 야간전담 간호사 제도 등의 정책을 폈지만 모두 활동 간호인력을 높이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호인력 공급이 확대되었음에도 공급된 간호인력이 실제 활동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직률이다. 병원간호사회에서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이 12.4%인데 비해 1년 미만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은 33.9%다. 2011년 일본의 간호사 이직률 10.9%, 신규간호사 이직률 7.5%임을 비교해볼 때, 한국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간호인력 공급을 늘려도 모두 간호 현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주요 이직사유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노동 강도다. 따라서 근무환경의 개선 없이 간호현장을 떠난 유휴간호사들이 재취업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간호사의 야간 근무에 대한 부담으로 야간전담 간호사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제적으로 인력 확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군다나, 야간에만 종사하는 근무형태는 종사자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점과 인수인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폐지돼야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러한 인력부족 원인이 태움이라는 폐습을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동료 간호사가 이직한 자리는 신규 간호사로 채워지고, 신규 간호사는 한 가지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가중되는 업무와 근무형태에 따른 부담감이 주어진다. 그렇게 근무환경이 열악해지면, 또 다른 이직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게 간호 현장에 남은 간호사들은 남은 몫을 모두 해내야 하기에 선임이 후임 그리고 신규 간호사에게 하는 위계적 학대행위가 행해지기 쉬웠을 것이다.

    간호 일터를 바꿔야 한다

    국회 토론회에서 한림대 간호학부 강경화 교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인력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된 인원의 이직 방지와 정착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높은 신규 간호사 이직을 방지한다면, 경력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어 업무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강 교수는 신규 간호사의 이직 방지를 위해 현장 교육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외국(미국, 호주, 일본 등)의 경우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미국도 이전엔 한국과 같이 간호 인력 공급을 늘리고 유휴간호사 재취업 활성화로 간호인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 접근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미국은 신규 간호사의 병원 적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법제화하고 정부의 재원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직률을 낮추는 등의 성과를 경험했다. 강 교수는 한국도 신규 간호사의 적응을 위한 현장 프로그램을 법제화하고, 교육 프로그램에 필요한 인력과 재정을 국가가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실제화 하기 위해 외국의 신규 간호사 교육프로그램을 아주대 연구팀에서 연구 중이다.

    의료연대본부 김동근 정책위원은 가장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해결 방안은 간호인력 배치기준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료기관에 직접적인 방식으로 인력확충 의무를 부과하여 적극적으로 관리, 감독하여 간호인력의 노동강도, 노동시간 자체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해소가 되어야 신규 간호사 교육프로그램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침묵을 깨고 그 후

    공대위는 국제 간호사의 날 5월 12일에 집회를 가진 후, 뉴스레터 발행과 1인 시위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앞서 국회토론회에서 제시한 개선방향인 신규간호사 교육 프로그램과 1인당 담당 환자수를 적정하게 줄이는 방안인 ‘박선욱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소개
    정의로운 청년기자단 5기. 동국대 4학년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