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편들기 요즘처럼 힘든 적 없었다
        2006년 05월 09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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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또는 술자리의 대화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두려움 없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은 이 땅의 노동운동에 있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담아 책 한권을 펴냈다. 그의 항변은 그대로 책 제목이 됐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가 틈틈이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 써온 것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에 단편적으로 실렸던 글들을 덧붙인 것이다. 그래서 글 하나의 분량은 보통 서너쪽 정도다. 긴 글 이래봐야 6쪽을 넘지 않는다. 그런 작은 글들이 7개 모자라는 100편이 실려 있다.

    하종강이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지난 1994년 그의 글이 6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작을 모은 작품집에 실리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이듬해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의 후속편쯤에 해당하는 글들을 모아 <노동자는 못말려>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새 책이 나온 것이다. 또 앞의 두 권은 다른 사람들과 저자의 자리를 공유한 책인데 반해 <그래도…>는 자기 이름만으로 저자의 자리를 메웠다.

    오래 만에 나온 새 책

    10년 동안 그가 희망을 부여잡고 놓지 않은 노동운동은 많이 변했다. 민주노총이 탄생하고, 총파업이 있었고, 노동자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고, 공무원노조가 결성됐고, 현대중공업노조가 제명되고,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비리로 구속됐다.

    이 와중에 그는 매년 300회 가까운 노동조합 교육을 다녔다. 어지간한 노조는 최소한 한번쯤은 방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종강만큼 한국 노동운동의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펴낸 책의 제목은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다. 이는 돌려 이야기하면 우리 주변에 노동운동은 이제 희망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노무현으로) 대통령이 바뀐 뒤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요즘처럼 힘든 시대가 없었습니다. (…)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는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196쪽)

    시대가 그러한데 하종강은 왜 여전히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고, 나아가 더 많은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1년에 300회 가까운 강연과 교육

    지난 4일 오후 7시 그의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조촐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책의 출간을 자축하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저자는 책을 내준 출판사에, 출판사는 이런 원고를 쓰신 저자에게 서로 감사하는 그런 자리였다. 자리가 끝날 무렵 책에 대한 이야기와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이해가 가능합니까? (…) 우리 사회는 수십 년 세월동안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 온 사회입니다. 자신의 의식을 그렇게 조율당해 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동조합에 대해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99쪽)

       
    ▲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열린 출판기념모임은 하종강 소장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하종강은 소박한 마음에서 단순히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노동운동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사회의 움직임이 결국 경제를 비롯해 정치와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힘과 동일하다고 본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이런 장벽을 뚫고 더 확장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신념체계는 그의 책 전반에 걸쳐, 문장 하나하나마다 드러난다.

    이미 책을 읽고 그의 ‘믿음’을 눈으로 확인한 마당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저보고 2% 부족하다고들 해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종강은 너무 노동자 편만 드는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 현재의 노동운동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닌지?

    “후배들이 저를 보고 2% 부족하다고 합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너무 순순히 인정해버린다. “저도 강연에서 활동가들에게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벌떼같이 나서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마당에 저까지 거기에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겠지요.”

    심지어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정규직 노동운동은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하종강 소장은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 포기할 이유는 못됩니다. 정규직 노동운동이 비정규직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하더라도 시작되고 있는 것들을 의미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서 활동가들의 의식이 중요한 겁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투표가 한번 부결됐습니다. 그러나 부결이라는 결과만 보지 말고 그 거대한 사업장의 속된 말로 대우 좋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산별전환에 찬성했다는 것을 의미 있게 봐야지요.” 거기서 조금 만 더 나아가도록 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그것이 노동운동의 큰 성과로 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공장의 임금은 더 올라가야 합니다”

    하종강 소장은 정규직 노동운동에 쏟아지는 비난의 실체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이 고약합니다. 언론은 비정규직에 온정적인 척하면서 노동운동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에 대해 어떻게 하는지는 보도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그는 그래서 대공장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세간의 시선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대공장의 임금을 줄인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겠습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돼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경제에 더욱 해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78쪽)

    그런 그도 우리 노동운동이 침체기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요즘 말로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더 하락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의 비판보다, 노동운동의 사회적 확대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모의 단체교섭을 시킵니다. 그리고 교섭을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가르칩니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이 아이들의 생각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는 노동운동에 대해 적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교육에 가서 ‘여러분도 이제 조합원이 됐다’고 하면 신입사원들 대다수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립니다. ‘내가 왜 노조에 가입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사회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몇 센티미터라도 진보’하게 만든다고 하종강은 확신했다.

    “우리 교육에서 ‘노동’을 가르친 적이 있나요”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거의 매일 들으면서도 내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 환호작약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월드컵 축구에 열광할 수가 없다.” (234쪽)

    또 다시 월드컵의 계절이 다가온다. 4년 전에 쓴 글에서 하종강 소장은 월드컵의 열광 뒤에 가려진 소박하지만 절박한 요구들에 가슴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절대로 월드컵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조합 간부니까 월드컵을 즐기면 안된다라는 이야기는 성립이 안되지요. 그러나 월드컵을 즐겨야 할 권리에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언론과 사회가 눈길한번 주지 않는 것, 또 즐길 권리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가 제약받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식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월드컵이 즐겁기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날 출판사 식구들과의 자리에서 하종강 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느 분이 올린 글 하나를 소개했다.

    “여기 오기 전에 급하게 제 홈페이지를 봤는데 어느 분이 ‘5월 그날이 다시 왔습니다’라는 짤막한 글을 올리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꼭 있을 것 같아 몇 번을 봤는데 없더군요. 이곳으로 오면서 내내 그 뒤에 혹시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종강의 부채의식과 기억

    26년 전 이야기다. 80년 5월 광주 그 자리에 자신은 있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을 이야기한다. 그는 책에서도 자신이 역사와 사람들에게 가진 부책의식을 이야기했다. (362쪽)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요즘 강연을 다니는 노동조합의 간부들과 조합원들 중에는 이제 그런 역사적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 세대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위노조일수록 그런 젊은 세대의 간부들이 많을 것이다. 전태일과 광주뿐만 아니라 박종철도 박창수도 잘 모르는 세대는, 부채의식이 없는 세대는 어떻게 노동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몸담은 노동운동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억지로 부채감을 떠넘길 수도 없지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다만 노동운동이 사회의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경험들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사회적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경험을 달리하는 세대간에도 노동운동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그가 강조하는 노동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가 꿈꾸는 노동운동의 모습, 단상들, 노동자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은 책을 통해서, 그리고 앞의 이야기들에서도 이미 반복됐다. 그런 것들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도 공유되는 노동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있지요. 활동가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의 이념과 목표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넓은 의미로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가 반드시 옳다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노동운동의 목표이고 그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해 고민해야겠지요.”

    한가지 의문이 풀렸다. 책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었던 하종강의 버팀목들,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에는 다른 하나의 신념이 있었다.

    “이념과 목표가 없는 노동운동은 없다”

       
    ▲ 하종강 소장은 출판사 직원들이 사인을 부탁하자 ‘처음이라 어색하다’며 쑥쓰러워했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지만 이 땅의 자본가들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받을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한번에 써버리는 이상한 회사들이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운동은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더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하종강은 믿는다. 그런 믿음을 1년에 300여 곳에 가까운 노동조합과 단체를 돌며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노동운동을 통해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한 대안적인 사회와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의 삶이 그를 흔들리지 않게 만든 힘이었다면 그의 사상적 기반은 그가 긴 시간동안 곁눈질 한번 하지 않게 만든 또 다른 힘이었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은 참 많다"고 했다. 그러나 강연에서 자신은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명하게 구분한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노동조합 판을 훤히 알고 있는 그가, 조합원들 눈빛만 봐도 그 노동조합의 성향이 파악될 그가 특히 요즘 들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제 역할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가들 스스로가 노동운동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해야 할 말들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생각과 말들이 모여 책 한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 제목은 그의 마음을 그대로 옮겼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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