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들고 친정 찾은 민주노총 전 위원장
    By tathata
        2006년 05월 08일 05: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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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시집을 들고 민주노총을 찾았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단결투쟁’을 강하게 외치는 모습으로 각인돼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이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시의 언어를 풀어내는 시인의 모습으로 민주노총을 찾은 것이다. 시인으로서는 첫 시집이며, 등단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지도부 총사퇴 이후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해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 전 위원장은 최근에도 틈틈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혹은 집회를 통해 ‘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배후는 노동자?  애인?  정파?  정치권?" 전혀 시적이지 못한 추측들 난무

       
     

    8일 오후 이 전 위원장과의 만남은 영등포의 한 식당에서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과 사무총국 상근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그간 ‘나의 배후는 너다’(모멘토)라는 시집제목을 두고,  많은 ‘추측’과 ‘의혹’이 오간 터였다. “배후세력이 누구지?”라는 단순한 의문부터 시작해, ‘배후’가 노동자나 애인 혹은 민주노총의 정파, 나아가 정치권이라는 ‘농담’까지 상근자들 사이에서 오갔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시집에서 이같은 의문은 자취를 감추고, 노동운동가로서 투쟁의 구호만으로는 풀어내지 못한 연민과 회한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이 시의 언어를 빌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전위원장은 “감옥에 있을 때나, 투쟁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지도부 사퇴 후 자신을 성찰할 때에도, 저를 지키는 한 방편으로 틈틈이 글을 읽고 써왔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도 전교조 결성으로 인해 1991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때부터 최근까지 15년간 그가 써온 시 1백여편을 모아 발간한 것이다.

    전교조 결성 후 구치소 수감 때부터 15년 써내려온 1백여편

    그는 “본의 아니게 운동과 떨어지게 되면서 나를 돌아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 곳곳에는 ‘운동’의 이야기가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누가/ 몰래 갖다 놓았을까/ 농성장 구석/ 새 양말 몇 켤레/ 비닐 천막 안/ 그윽히/ 난향 넘친다”(「누가 몰래 갖다 놓았을까」전문)

    “한 편의 시를 읽기가 얼마나 힘들고/ 한 사람을 만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오염된 관념의 수렁에 빠진/ 한때의 동지..”(「어느 날 어둠은 내리고」 중에서)

    “나는 네 놈 속마음까지 다 알고 있어 꼼짝 마/하면서 내 마음대로 상대를 규정해버리고/ 마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것처럼/ 저 놈은 좋은 놈 저 새끼는 죽일 놈/ 하면서 살아가니/ 결국는 내가 얼마나 외롭고 불행한 놈이냐/,,,/ 동지라는 참으로 귀한 말을/ 시궁창에 처박고 짓밟으면서/ 무슨 운동 합네 하고 살고 있으니/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충주호에서」 중에서)

       
     
    ▲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나의 배후는 너다’라는 시를 낭독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시집의 후기에서 좀 더 솔직하게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을 회고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하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조직 내의 과도한 정파주의를 극복하고 단결하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었고, 둘째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해서 투쟁과 교섭을 원활히 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사회 개혁투쟁에 나서는 일이었다 …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지도부를 구성하고 집행부를 꾸려 야심 찬 출발을 하였으나, 극심한 정파적 이해관계의 덫에 걸려 1년 이상을 역풍에 시달려야 했다.”

    떠나봤자 노동운동판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잇따른 대의원대회의 무산과 폭력사태, 그리고 간부비리 사태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자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으니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는가”라고 회상했다.

    이날 이 전 위원장은 “지도부 사퇴 당시에 (기자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며 “시집 발간을 즈음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계 복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8일 보도된 것과 관련, “사실과 다르다”며 “제가 떠나봤자 노동운동 판에 있지 어디로 가겠냐”고 노동운동과의 ‘연’과 같이 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나의 배후는 너다’라는 한 편의 시를 낭독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준호 위원장도 “학창시절 시를 쓰고 발표한 경험이 있어, 시를 쓰고 싶은 시심(詩心)은 늘 마음에 있다”고 말했고, 이수봉 대변인도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운동하다보면 시를 읽을 틈도 내기 어렵다”며 부러워하기도.

    시집을 들고온 시인 이수호 전 위원장 덕분에 민주노총은 고단한 일정 속에서 오랜만에 ‘쉼표’ 같은 여유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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