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대모 베티 프리단
그 생애, 문제의식, 파장을 한눈에 보다
[책]『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김진희/푸른역사)
    2018년 08월 25일 05:06 오후

Print Friendly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페미니즘의 불을 지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석학 앨빈 토플러가 책의 영향력을 두고 “역사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을 정도다. 출간 3년 만에 300만 부가 팔렸으며 13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오늘날까지 각 대학과 매체가 선정하는 ‘논픽션 필독서 100선’에 거의 예외 없이 포함된다. 반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책 10선’ 등의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는 ‘문제적’ 저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오늘날 그 이름값만큼 널리 읽히지는 않는다. 한국에선 특히 그렇다. 여성운동 또는 여성운동사를 이야기할 때 비판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번역서 등의 문제가 겹친 탓도 있지만 50여 년 전 미국 중산층 여성들의 상황이 쉬 와 닿지 않는 이유가 컸다. 때문에 저자와 책명은 익숙하지만 ‘여성의 신비’를 여성 신체 구조와 연결해 오해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미국사 연구자가 쓴 이 책은 베티 프리단의 성장 배경과 지적 계보를 정리하고, 책의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 의의와 한계, 그리고 파장을 친절하게 정리했다. 이름만 친숙한 고전을, 감히 말하자면 “읽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에 고전 해설서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 하나에서 열까지

첫째, 이 책은 베티 프리단과 그의 책을 20세기 미국의 변화 속에서 읽어 나가고 있다. 베티 프리단이 태어난 1920년대, 그가 성장한 30년대 대공황, 대학생활을 했던 인민전선과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가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했던 냉전 시대가 어떻게 베티 프리단과 동시대인들의 사고와 가치, 삶과 문화를 규정지었는가를 드러낸다. 또한 베티 프리단과 그의 활동, 그리고 저서를 통하여 여성 개인(들)이 여성에 대한 사회와 문화의 규정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해 반응/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의 신비》에 대한 독해일 뿐 아니라 20세기 중반 미국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성사/사회사이다.

둘째, 베티 프리단과 그의 책을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라고 하는 고정된 시각에 가두는 기존 해석을 넘어서고자 했다. 이제까지 베티 프리단의 책과 그가 이끌었던 여성운동은 중산층 백인 중심으로 규정되는 기득권 여성들의 그들만을 위한 운동으로 비판되었다. 그 근거로 베티 프리단은 철저하게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교외 거주 백인 중산층 전업주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베티 프리단의 성장배경과 성인이 된 이후의 활동들을 추적하면서 베티 프리단의 시각을 중산층 백인 기득권 중산층의 틀에 가둘 수 없음을 밝혔다. 저자는 《여성의 신비》가 지닌 제반 한계들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의 신비》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거부하고 책이 지난 한계와 공헌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셋째, 책에서 꼽는 《여성의 신비》의 저자 베티 프리단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동시대 여성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여성문제를 정확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동시대 여성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고 그들로 하여금 사회에 참여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여성의 신비》가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이후의 변화를 오히려 막고 있다는 페미니즘 일각의 비판과 달리 저자는 베티 프리단의 선택이 20세기 중반이라고 하는 특정 시대 미국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결코 폄하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여성의 신비》가 20세기 중반 미국여성운동을 촉발시킨 역할을 했다고 해도 그의 해법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베티 프리단이 책을 쓰던 당시 그가 지닌 성/젠더에 대한 시각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성/젠더 의식의 한계와 특징을 일정한 정도 반영하고 있다. 《여성의 신비》가 시대를 초월한 남녀차별과 평등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베티 프리단이 분석했던 《여성의 신비》는 냉전기 미국사회 여성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곧 《여성의 신비》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에 대한 해법 역시 구조와 역사, 사회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정치한 관찰과 분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름 없는 문제’에 눈 뜨기까지-베티 프리단의 흥미로운 삶

1부는 베티 프리단의 생애를 정리했다. 책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지은이를 파악하는 것이란 점에서 프리단의 삶을 짚어보는 것은 페미니즘의 배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유대계 2세로 태어나 인종차별을 피부로 겪은 학창시절, 도로시 더글러스 교수 등에게서 지적 세례를 흠뻑 받은 스미스대학교 시절, 《유이뉴스》 등 진보계 노동신문의 기자로 활약하다 둘째의 출산을 계기로 타의로 떠나야 했던 쓰라린 경험 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면서도 《여성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여성의 신비》를 쓰게 된 계기가 1957년 스미스대학교 졸업 15주년 동창회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시작된 설문조사였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최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젊은 시절의 베티와 노동신문 기자와 진보적 활동가로서의 베티, 그리고 결혼한 뒤 아이를 키우면서 대중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작가 베티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무엇보다 베티 프리단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동창들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102쪽)

거대한 사회적 담합구조 ‘여성의 신비’에 대한 비판

2부에서는 《여성의 신비》의 내용 자체를 꼼꼼히 분석한다. 집필 계기와 과정은 물론 매카시즘에 따른 냉전시대 합의 문화 등 사회적 배경을 역사적 맥락에서 정리하는 한편 에릭 에릭슨의 ‘인간발달 단계론’,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 등 이론적 토대를 소개한다.

베티 프리단은 스미스대학교 동창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발견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가 남편이나 아이들, 혹은 가정불화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나는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옷을 입혀주고 침대를 정리해줍니다. 언제든 가족이 원할 때 요청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나는 누구죠?”(110쪽)

이렇게 묻는 여성들에게 베티 프리단은 “여성지, 광고, 텔레비전, 영화, 소설, 결혼과 가족 전문가, 아동심리학과 성 상담과 사회학과 심리분석 전문가들의 칼럼과 저서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신비’ 이미지가 오늘날 여성들의 생활을 틀 짓고 그들의 꿈을 반영한다”(118쪽)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여성운동의 물꼬를 튼 베티, ‘전선’에 나서다

3부에서는 《여성의 신비》 관련 논쟁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의미와 한계를 짚고 시민활동가로 나선 베티 프리단의 역할을 다뤘다.

미국 중산층 백인 여성들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각성,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일을 통한 성취, 교육과 재교육, 그리고 제대군인 원호법에 필적하는 교육 지원의 필요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해 마치 ‘자기계발서’와 유사하다는 비판이 있다(187쪽)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적극 옹호에 나선다.

《여성의 신비》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 이론서가 아니라 대중서라는 사실을 들고 무엇보다 책이 세상에 나왔던 1960년대 초반 페미니즘은 이론적 정교함은 차치하고 학문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비》가 주목받으며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생성되었고 이 관심이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젠더를 중심 개념으로 삼는 학문적 패러다임이 변하는 등 《여성의 신비》가 거대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베티 프리단이 전국여성연합NOW의 창설에 참여하는 과정이라든가 이후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불화하는 사연 역시 오늘의 페미니즘 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결론에 따른 여성학/페미니즘 계보’라는 제목의 보론은 비록 미국에 한정했지만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과 저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기에 알찬 덤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왜 읽어야 하나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수만 명의 여성이 참여한 ‘몰카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페미니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풍경이었다.

종종 “21세기 최후의 식민지가 여성”이라고들 한다. 그 타당성을 논하기 전에 한국 여성이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2017년 현재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는 가장 크고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참여도는 평균보다 낮으며 민간 영역의 여성관리자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에 과도하게 몰려 있으며 유리천장 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260쪽)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딸, 연인, 아내이기에 한번쯤 페미니즘의 뿌리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새삼 《여성의 신비》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사학자인 지은이가 텍스트 하버드대학교 슐레징거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프리단 페이퍼’를 검토하는 등 단순하게 읽기를 뛰어넘어 역사적 맥락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배경을 짚고, 내용을 뜯어보고, 파장을 살핀 이 책은 보기 드문 안내서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