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영역에서는
‘미투운동’ 작동하지 않나?
"미투운동의 가장 좋은 응답은 남성 중심, 가부장적인 정치권력의 변화"
    2018년 08월 24일 07: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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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을 ‘여성 정치세력화’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정치포럼(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진선미 의원,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주최해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라는 주제의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 모습(사진=유하라)

이 간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신기영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는 “한국의 미투운동은 폭로로 끝날 것인가, 남성중심의 권력구조를 타파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다”며 “미투운동에 대한 가장 좋은 응답은 남성 중심의 정치권력의 변화”라고 강조해 말했다.

이정미 의원은 “미투운동으로 차별과 억압받는 여성들이 이 세상의 절반으로, 국민으로,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며 “하지만 최근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 결과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너 왜 그랬냐’는 질문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묻는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 아닌가 우려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 세상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정치가 포기해선 안 된다”며 “무엇보다 여성들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서 여성의 목소리 키울 수 있을 때 (미투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격으로부터 여성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에선 미투가 작동하지 않는다

6.13 지방선거에서 미투운동은 어떤 흥행 요소로도 작동하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나 정봉주 전 의원 등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고 민주당 의원들이 미투의 가해자로 다수 지목됐지만,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표심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와 보수정당에 대한 심판으로만 향한 것이다.

국회에서도 미투운동으로 인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개헌 국면에서 여성정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개헌은 무산됐고, 발의만 된 ‘미투 법안’들은 국회에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이정미 의원은 “미투운동 이후에 여성들을 대변하기 위한 법안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그 법안들이 제대로 다뤄진 적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미투운동을 통해 한국사회 여성들의 인식이 달라진 점 매우 중요하다. 보는 눈과 말하는 입이 달라졌다”면서도 “그 목소리를 듣고 이행해야 하는 정치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회가 ‘미투의 사각지대’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미투운동의 흐름을 수용하지 않는 국회의 모습은 법안 처리 외에도 다양한 형태도 드러난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4급 이상의 국회 보좌진 587명 중 여성은 단 7%, 42명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9급 297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89명, 무려 64%에 달한다”고 전했다.

여성 정치인의 수적 열세 뿐 아니라, 국회의원을 보좌해 근무하는 고위직 공무원에도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국회 뿐 아니라 지자체나 일반 민간기업 등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회가 미투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에만 이토록 요지부동인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정치권력의 성범죄에 침묵하는 정치권의 태도는 여론에 부정적 신호를 준다. 법조계나 문화예술계에서 나온 폭로와 정치권력에 대한 폭로에 대해 여론이 대하는 자세는 상이하다.

서지현 검사의 증언은 한국 사회에서의 미투운동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고, 이윤택·고은 등 문화예술계 거장으로 불렸던 이들에 대한 폭로로 이어지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유독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은 냉담했다. 피해자인 김지은 씨를 ‘꽃뱀’으로 몰아세우고, ‘배후설’을 제기하며 차기 대권주자를 겨냥한 ‘정치공작’, ‘정치권력의 대립’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의 무죄 선고와 별개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온라인상 여론은 영역의 구분 없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난 ‘미투운동’의 흐름과는 다른 결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은희 정책위원은 “김지은 씨가 처한 여러 가지에 대해 개별 사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만 묘사하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공방만 일삼을 뿐, 김지은 씨가 성폭력을 당한 그 공간이 김지은 씨의 생계가 달린 일터라는 사실, 김지은 씨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유일한 한 명의 상사가 안희정 전 지사라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과 삶이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권력의 성범죄에 대해 이처럼 기이하고 왜곡된 여론은 정치권의 태도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 안 전 지사의 1심 무죄 선고가 나온 후 모든 정당들은 ‘미투운동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성토했지만 정작 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론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SNS나 상임위원회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당은 끝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정치권력의 성범죄 사건에 관대한 정치권의 태도는 한국에서만 국한하진 않는다. 1991년 미국에서 여성 변호사인 아니타 힐이 미국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당시 대법관 후보이자 자신의 상사인 클라렌스 토마스의 성희롱을 증언해 전 미국 사회가 주목했었다. 그러나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청문회 위원들은 남성 입장을 대변한 질문을 쏟아냈고 결국 젊은 흑인 여성의 성희롱 증언은 ‘신뢰성 부족’이라는 결론으로 묵살됐다. 클라렌스 토마스는 대법관으로 지명되어 현재도 대법관 권좌에 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유독 정치권에서 미투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여성이 ‘정치적 주체’가 아닌 ‘사회적 주변자’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확정적 판단을 하기엔 이르지만 현재로서 미투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성범죄 의혹에 휘말렸지만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신기영 교수는 “미투운동이 한참일 때 실시된 한국의 6월 지방선거는 미투 관련 문제가 쟁점이 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고, 김은희 정책위원도 “이번 지방선거는 문 정부를 지지하냐, 마냐로 가려졌을 뿐 젠더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제대로 다뤄지지도 못했다”고 평가했다.

윤지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도 “미국에서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후보 선출 경선과정) 역대 최대 여성 후보자를 탄생시키는 등 미투운동이 정치적으로 큰 성과를 이뤘지만 국내에선 그 정치적 영향이 미비했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얻어낸 성과가 작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 영역에서만은 여성이 사회적 주변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며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미투운동은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독 정치의 영역에서만 성범죄 사건의 본질보다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 폭로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등 ‘정치공작’의 프레임을 통해서만 이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인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만이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예방하고 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기영 교수는 “권력관계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 강화를 가장 많이 꼽는다. 이를 위해선 법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며 “그러나 그러한 법제도 개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당과 의회가 얼마나 성인지적인지,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부장적 권력구조를 개선하는 역할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안희정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고용관계가 의원과의 개인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폐쇄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80% 이상인 국회가 미투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를 우선순위에 둘지는 매우 의문”이라며 “남성권력의 정점인 정치가 여성을 배제하는 지금의 구조를 유지한다면 민주주의는 크게 손상되고 편중된 정치는 정당성을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미투운동이 젠더 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려면 가부장적인 정치권력의 변화로 이어지는 동력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로 이어져야 할 당위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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