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담임처럼 만만치도 않고, 때려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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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7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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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중 탁구부>는 후루야 미노루라는 일본 작가의 만화이다. 이나중이라는 한 중학교의 탁구부를 배경으로 마에노와 이자와 등의 악동들이 벌이는 엽기적이고 재기발랄한 행위들이 주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으며, 국내에는 1996년 번역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중반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을 구가할 때 한 몫을 했었다. – 편집자주 

    1.

    <이나중 탁구부>라는 만화가 있다.
    어느 중학교 탁구부 애들의 일상을 하이퍼 리얼하게 그리는 만화다.

    처음엔, 그 저질스러움에 경악하고 그 다음엔, 그걸 읽고 읽고 또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종국엔 아메바 혹은, 금방 나온 뜨끈뜨끈한 덩과 같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서
    왠지 모를 찐한 애정과 슬픔을 느끼고야 마는 -_-;;
    그런 만화다.

    이나중 탁구부의 작가가 그린 만화들을 읽다보면 문득 하나의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띨띨한 부적응아들.
    루저(패배자=편집자)들.
    혹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마다 문턱에 걸려 넘어질게 뻔한 장애 아동들.

    작가는 이 세계가 엄청난 파워로 밀어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애정을 가득 담아.

    2.

       
     

    개그만화-_-로 분류되는 <이나중 탁구부>의 전면에 그 세계의 흉폭함이 드러나지 않는 건 어쩌면 배경이 중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울 학교 아이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건데 어쩌면 중학 시절이란 분명 현실에 존재해 있는데도 불구하도 리얼한 현실과는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이자 장소인 듯 하다.

    열 여섯이나 먹은 주제에 국어 책조차 제대로 못 읽고 더듬거려도 오토바이에 여자애들을 태우고 다니며 열라 ‘후까시’를 잡을 수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인 행복한 시절. -0-

    거북이 같이 답답하고 늙어 터진 담임에게 개기며 학교 때려 치면 될 거 아니냐고 호기롭게 말하는 것 정도로 정우성이 나오는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뿌듯이 여겨지는 속 편하고 단순한 시절. -_-;;

    그러나 아이들이 좀 더 오래 살아가야 할 곳은, 거북이 담임처럼 만만하지도 않으며 때려 칠 수도 없다.

    낮게 깔린 하늘을 배경으로 하이웨이를 질주하다가 장렬히 죽어 가는 비장한 결말조차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

    현실이 작동하는 모양새를 일찌감치 눈치 채는 영리한 아이들은, 좀 더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며 경쟁력을 갖출 것이고 잘 사는 동네의 아이들이야 건들거리며 살아도 상관은 없겠다.

    근데, 부모님은 노점이나 일용직 노무자, 미싱, 시다, 기타 등등의 그런저런 고단한 비정규직.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 보장으로만 연명하기 일쑤인 마당에 정우성이거나 마에노이길 고집하는 울 학교 아메바들은 어쩌지? -_-;;

    교직 초짜시절 -_-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하였던 나는 애들을 열나 남겨서 나머지 공부를 시켰었다.
    얘들아! 우리도 ‘경쟁력’ 좀 갖춰보자! 는 생각이었겠다. -_-
    사는 거, 열나 빡쎄거덩?

    그리하여,

    짧은 영어 문장 딱 다섯 개를 못 외워서 집에 못가는 아이들이 남아서 열나 열심히 공부를 한 건 아니고-_-

    알파펫도 그.리.다.가. 내친김에 로보트도 그리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었다. -_-
    몰카를 찍다 쿄코에게 들킨 마에노처럼. -ㅅ-);

    좌절이었다. ㅠㅠ

    3.

    물론 상황은 점점 나빠져서 올해 울학교 애들은 국영수로 평가하는 -_- 서울시내 학력 검사에서 서울 시내 평균보다 무려 10점이나 낮은 점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물론 다 좌절했다. (물론 이미 다 알고 있어도 점수로 확인하는 기분은 또 다르단 말이다.)

    영어샘: 알파벳을 그리는 애들을 데리고 뭘 하란 말야!
    수학샘: 수업 시간마다 정말 완벽한 고독을 느낀다니까요. ㅠㅠ

    그리고, 심란한 말투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 동네도 이제 뉴타운 지정 되었으니까 한 10년 있으면 아파트 들어서고 좀 나아질텐데.
    그 때까진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할테니 큰일이야.

    정말 큰일이다.

    철거가 끝나고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이곳엔 어딘가에서 밀려온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아이들이 살 것이다.

    그리고 뉴타운이 다 건설된 후에 그들은 다시 삶의 더더더 가장자리로 밀려나겠지.

    경쟁에서 나가떨어진 찌질한 것들을 삶의 외곽으로 밀어내면서 매끄럽게 정돈된 중심에 찬란한 낙원이 세워진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에도 외국 유수의 전통 있고, 명망 있는 사립학교들이 들어설거랜다.
    멋지다.

    그 옛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봤던 그 풍경!
    말 타고 폴로 경기를 하는 늘따아아란 잔디밭, 조정경기를 하는 호수, 아아- 럭셜 -0-;

    그 곳의 아이들은 똑똑하고, 착하고, 잘 생기고, 심지어 반항조차 멋지구리하게 한다.

    물론, 아무나 다닐 수는 없다.
    어마무지하게 비싸기도 하려니와, 수준 되는 집안의 귀한 자제분들을 위한 거다.
    그럼 우리들은 어디로 가지?
    그것도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다 보여줬다.

    가난한 동네의 찌질한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간다.
    학교 안에서 마약을 거래하고, 총질을 해대고, 졸업하는 애들은 극히 드물고, 대체로 군대로 팔려간다.
    (그렇게 먼 나라에 가서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댄다.)

    아, 물론 한국형으로 조절 되겠지.
    (우리 국민 정서와 풍토상 학교 안 조정 경기장이라든지 총질은 무릴테니. -ㅅ-);
    하지만 별로 다를 건 없다. 삶은 이미 그런 식으로 구획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늬들의 실패는 늬들이 머리도 나쁘고, 의지도 박약하고, 재능도 없고, 못 생기고, 비리비리한 인간 쓰레기들이기 때문이잖아!

    그런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는 쓸만한 애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 몰라? 앙?
    천한 것들!

    네에. 천해서 죄송합니다만.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우리는 돈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영어도 못하고 못 생겼기 때문에 당연히 삶의 외각으로 쫓겨나야 하는 건가?

    평택의 농민들은 아직도 농사나 짓고 있기 때문에 평생을 살아온 땅을 군대에게 내주어야 하는 건가?

    장애인들은 혼자서 계단을 오를 능력이 안 되니까, 시설에나 일평생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건가?

    이주 노동자들은 허락받지 않고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에 온갖 학대를 감내하며 쫓겨 다녀야만 하는가?

    그들은 우리를 자꾸만 외곽으로 밀어낸다.
    살 곳을 옮기라고, 지정해 준 곳에서만 살라고 말한다.
    이동은 허락 받고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우리의 장소를,
    우리의 이동을 결정할 권리를 대체 누가 그들에게 준걸까?

    양극화가 해소되건 안 되건간에 FTA를 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그러니까 떡이 되도록 얻어맞아도 한 대 치기 위해 링에 올라야 한다고?
    저기요.
    그 ‘우리의 길’은 대체 누가 결정한 거니?

    그들이 만든 척도에 나를 끼워맞추기 위해서 피떡이 되더라도 링에 오르라고,
    올라서 영광스럽게 싸우라고 말하는 그들.

    됐거등-_-

    4.

    올해부터 학교에서 공부방을 운영한다.

    학교가 끝나도, 집에 기다리는 아무도 없는 아이들, 딱히 학원을 가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할 일도 없어서
    빈들거리다보면 어느새 사고를 치고 있는-_- 아이들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에서 몇몇 선생님들이 자진해서 시작한 거다.

    훌륭하시다. -_ㅜ

    우리 반 애들에게 얘기해 주었더니, 두어 명이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기뻤다.

    그리고
    나의 수줍은 -_- 결심.

    더 이상은, 아이들에게 이것도 못 외우고서, 어디 취직하겠냐고 그렇게 암 것도 안하고 있다가는 찌질이 루저가 된다고 협박하지 않겠다. -ㅅ-);;

    대신,
    우리의 일상이 무력함에 잡아먹히도록 더 이상 내버려두지 말자고

    나와 온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누군가 위에 서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더더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 공부하자고 권할테다.

    우리가 찌질이 루저가 되는 건 단지 그들이 만든 척도 안에서라는 것,

    우리를 넘어뜨리고 밀어내는 이 모든 장애들을 만든 건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들이라는 것,

    모든 것을 위계화하고,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모든 곳을 폐허로 만드는 그들의 놀라운 무능력임을 말해주겠다.

    그들이 도발한 경쟁을 거부하고
    다른 싸움을 시작하는 것.

    돈이 없어도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권리,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만들기 위해 공부할 권리,

    내 고향에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 권리,

    혼자서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면 함께 오를 수 있는 권리,

    우리 삶의 방식을 우리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위한 싸움을 시작할 때

    우린 이미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며,

    그 때 우리는, 정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필요 없이 행복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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