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바뀌는 은산분리 완화,
    ‘TV조선·삼성 은행’ 등장?
    재벌대기업 제외한다더니… ICT기업에만 진출 허용으로 ‘말 바꾸기’
        2018년 08월 20일 04: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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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한 은산분리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이대로라면 곧 ‘TV조선 은행’, ‘삼성전자 은행’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추혜선 의원과 경실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금융정의연대, 금융산업노조는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산분리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정부여당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정부여당이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을 8월 국회에서 처리하려는 시도와 관련해, 추 의원과 시민사회·학계 인사들은 “졸속”이라고 반발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법안의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은산분리 규제완화 비판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고용확산, 중금리 대출 확대 등 겉으로 표방하는 목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이것이 실현될 경우 그 결과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의 8월 통과는 즉각 중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률 참여연대 소장도 “법안에 대해 숙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8월말에 통과시킬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여당은 은산분리 완화 과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졸속과 편법, 말 바꾸기로 점철된 이번 은산분리 규제완화 논의는 최소한 충분한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처리해야 한다”며 “이처럼 중차대한 법안의 논의를 위해 반드시 저를 정무위 제1법안소위에 배치해 주실 것을 민병두 정무위원장에게 간곡하게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번 은산분리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추 의원은 ‘괴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금융혁신을 위해서 금융생태계에 메기를 풀어 놓자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지금 논의는 그것이 메기가 아니라 은산분리 원칙을 파괴하는 괴물”이라며 “정부 여당은 규제생태계를 파괴하는 은산분리 규제완화 입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재벌대기업 제외한다더니…
    ICT기업에만 진출 허용으로 ‘말 바꾸기’
    전성인 “정부, 삼성과 언론 사이에서 꽃놀이패 즐기나”

    총수가 있는 재벌대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자격을 주지 않겠다던 정부여당는 ICT기업은 예외로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은산분리 완화 반대론자들은 정부여당의 이러한 말 바꾸기가 카카오뱅크 등을 의식한 ‘특혜’라고 지적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를 계열사로 편입하게 되면 카카오의 규모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기준인 10조원 규모에 근접해 대주주 요건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여당은 ‘ICT 기업에만 허용’ 발언으로 삼성SDS, SK텔레콤 등 대기업 계열사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엔 ICT 자산규모가 50%를 넘을 때만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또 다시 기존 입장을 바꿨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원칙 없이 계속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엔 ICT 기업의 기준이 표준분류에 따른 것인지, 특수분류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통계청에는 표준분류인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상 정보통신업과 특수분류인 정보통신기술업이 존재한다.

    표준분류에 따르면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기술혁신과는 무관한 신문사, 방송사, 종편 등도 ICT 기업에 해당해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이 가능해진다. 특수분류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ICT 기업에 해당돼 재벌대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추 의원은 “지금 정부 여당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곧 종편 은행을 만나거나, 삼성 은행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의견에 대해 정부여당은 또 어떠한 주장을 하면서 은산분리 완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지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카카오 계열사와 케이티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고, 지금 언론 보도되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지주 회사 체제 내에 있기 때문에 금융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인터넷 포털사 네이버와 신문사, 잡지사, 종편 그리고 삼성전자”라며 “정부는 삼성에 은행을 줄지, 언론기관에 은행을 줄지 양자 사이에서 꽃놀이패 즐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도 이날 낸 논평에서 “ICT기업(네이버)에만 예외를 두는 것은 특혜”라며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겠다고 했지만 이를 뒤집는 것도 ‘공약을 파기’한 문재인 정부에게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대주주 대출 제한·주식 인수 차단하면 사금고화 방지?
    “1993년 삼성그룹, 2가지 장치 모두 회피해 사금고화”

    정부여당은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강행 추진하면서 ‘재벌대기업 사금고화를 방지할 안전장치가 있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대주주 대출 금지 ▲대주주의 주식 등 지분증권 취득 제한 등이 정부여당이 말하는 안전장치다.

    그러나 추 의원은 “대주주의 사금고화가 예상되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단 2가지 경로를 차단했다고 해서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1993년 승용차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삼성그룹 대주주의 의중에 따라 삼성생명 등 삼성 금융계열사를 통해서 기아자동차 주식을 매집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이 때 삼성의 금융계열사는 모두 고객의 권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주주의 뜻에 따라 자산을 운용했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주주에 대한 대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삼성 계열회사의 주식을 인수해 준 것도 아니다. 현재 정부여당이 말하는 2가지 장치를 모두 회피해 총수가 금융기관 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고 짚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 케이뱅크 인가 문제에 ‘면죄부’

    정무위 여당 간사인 정재호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이 케이뱅크 인가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발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추 의원은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자금조달 문제를 거론하고, 1차년도에 예정했던 1,600억원의 증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1,300억원의 자금만을 조달했다”며 “이는 애초에 케이뱅크가 자금조달 계획을 거짓으로 제출한 것이고, 이를 금융위원회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가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추 의원은 ‘금융위원회가 전자금융거래 방식을 조건으로 은행법에 따라 인가한 은행은 이 법에 따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본다’는 특례법안 부칙 제2조를 언급했다. 인가상의 불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케이뱅크에 대해 자동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허가한다는 뜻이다.

    그는 “감독당국의 엄정한 조사를 전제로 하기는커녕 자동적인 면죄부를 발급하고 있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면서 “특례법이 도입되면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은 현재의 은행업 면허를 반납하고 비록 서류상의 절차라도 새롭게 인가를 신청해 정당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자동전화 규정 조항도 모두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줄인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대출 확대?

    한편 여당 내에서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터넷은행은 금융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냐”며 “온 언론이 은산분리 원칙을 깨고 ICT산업자본에게는 지분보유한도 10%를 깨서 허용하자고 한다”며,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금융혁신의 방안이라는 일부 언론의 기조를 짚었다.

    이 의원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손쉽게, 빠르게, 편리하게 돈을 많이 빌려주었다 하자. 결과는 국민들의 부채 규모를 빠르게 증가시켜 줄 뿐”이라며 “지난 1년 동안 K뱅크, 카카오뱅크가 국민에게 대출해 준 것이 거의 9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카드 처음 발매할 때 생각나지 않는가? 무조건 빌려주고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정부여당의 은산분리 규제완화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은산분리까지 완화하여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계부채 규모를 줄인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금융정의연대도 “은산분리 규제완화가 실시되면 자본금이 부족했던 인터넷은행들이 늘어난 자본을 이용해 대출영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는 가계신용대출 제한 정책을 펴는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대출 받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가계부채 규모를 늘리는 꼴이”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박용진 민주당 의원 또한 여당이 은산분리를 지켜야 한다는 기존의 당론을 의견 수렴 한 번 없이 뒤집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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