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한계,
포스트 자유주의의 전망
[국제정치 이슈]故노회찬을 그리며
    2018년 08월 17일 04: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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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는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지구촌 곳곳의 소식을 듣다 보면 마치 100여 년 전의 세계를 다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첫 번째 세계대전의 포연이 사라지기도 전에 대공황과 파시즘의 광기 속에서 또 한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내몰렸던 20세기 초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한 착각 말이다.

다행히도 21세기의 세계는 전쟁의 포성으로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열지는 않았다. 지구촌 곳곳이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적어도 세계 대전이라 부를만한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21세기의 역사는 20세기의 그것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20세기 초반의 세계를 두 번째 세계 대전으로 내몰았던 파국적 징조들은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역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기는 이유이다.

20세기의 세계는 대공황,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으로 대표되는 약탈적 경제전쟁, 그리고 그 토양 속에서 성장한 파시즘의 광기 속에서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내몰렸다. 21세기의 세계는 전쟁 대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이름의 경제적 파국으로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열었다. 전 세계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지만 그래도 20세기의 대공황에 비하면 저강도의 위기였다. 그 후 10년, 이제 위기는 해소되었거나 적어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구도 안도하고 있지는 못하다. 10년 전의 위기가 단지 본격적인 파국을 예고하는 전조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대공황의 와중에 탄생하여 결국 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내몰았던 20세기 초반의 약탈적 경제전쟁은 오늘날 미국발 ‘무역전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불균형 해소와 국내 산업 보호,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대적인 ‘관세폭탄’ 투하에 나섰다. 최대의 대미 무역 흑자국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캐나다와 유럽의 서방 선진국, 중남미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이 패권적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인 적도 없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 중국은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조치를 개시했고 유럽과 캐나다는 이미 수차례 임박한 보복을 예고한 바 있다. 무역전쟁의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방송화면 캡처

20세기 초반의 무역전쟁은 유럽 대륙에 몰아친 파시즘의 광풍 속에서 절정에 달했다.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로 무장한 파시스트들은 빈곤과 실업의 늪에서 허덕이던 유럽의 노동자들에게 ‘외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했다.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던 유럽의 노동자들은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포획되었고, 유럽은 사회주의자와 유대인,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광기어린 혐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불행히도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럽은 또다시 이민자와 무슬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정당들의 발호를 목도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유럽의 상황은 미국보다는 차라리 나은지도 모른다. 20세기 초반 파시즘의 광기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웠던 미국은 오늘날 ‘외부자’에 대한 혐오를 공식화한 국가가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감세와 복지 축소를 통해 노골적으로 금융자산가들의 천년왕국을 획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외부자’에 대한 혐오의 선동은 필연적이다. 미국 노동자들이 그들의 곤궁한 삶의 원인을 금융자산가들이 지배하는 경제구조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도록 효율적으로 호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파시스트들이 ‘외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인 금융자산가들의 지배를 은폐, 유지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불행히도 오늘의 역사는 20세기 초반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거처럼 파국으로 귀결될지 아직은 미지수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자유주의의 궤적 그리고 역사의 반복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20세기 초반의 파국적 역사는 19세기 후반 정점에 다다른 자유주의 정치경제질서의 산물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다. 군주의 지배력은 완고했고, 시민권과 정치적 자유의 개념은 취약했다. 그러나 경제관계는 이미 충분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자유주의적이었다.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였고,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궁핍을 대가로 한 이윤 축적은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상징으로 칭송되었다. 일국적인 단위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경제관계 또한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국가 간의 무역은 자유로웠고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윤 사냥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정치적 자유주의를 비타협적으로 혐오한 군주들조차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 사냥만은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자유주의자들에게 19세기 후반의 세계는 마침내 도래한 천년왕국과 같았다. 일부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한 식민주의의 참상을 외면한다면, 당시의 국제경제질서는 자유로운 이윤 사냥이 무한정으로 보장된 가히 교과서적인 세계였다.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낳는다는 그들의 완고한 믿음은 19세기 후반에 만개한 자유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영원한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기대하도록 이끌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내재한 착취와 불평등의 문제를 전혀 사고할 수 없었거나 적어도 둔감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시장에서의 이윤 경쟁이 평화적 공존이 아니라 경쟁 상대의 절멸을 요구하는 파국적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20세기 초반의 세계에서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파국적 성격을 간파한 것은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다소 역설적이지만 파시스트들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전복을 통해 파국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슬로건은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파시스트들 또한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이윤 경쟁의 논리는 불가피하게 파국적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 이러한 파국적 결말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이자 법칙과 같이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 어떤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파국적 성격을 수용하고 극단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수호자가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파시즘, 사회주의 혁명의 광풍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파국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시스트들과는 달리 파국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회피 가능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근본적 전복이 파국을 막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재산권과 자유로운 이윤 사냥의 보장이라는 자유주의의 근본 원리를 일부 제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기간산업의 국영화와 누진적 조세 정책,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을 통제하는 조치들을 통해 ‘국민경제’라는 사회적 목적에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종속시킴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수호하는 길을 택했다. 자본통제와 복지국가를 두 축으로 하는 2차 대전 이후의 이른바 ‘제한적 자유주의’ 질서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자유주의의 근본 원리를 제약함으로써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한다는 제한적 자유주의자들의 기획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제한적 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폐허는 신속히 복구되었고, 경제위기라 일컬을 만한 일도 없이 번영은 지속되었다. 자유주의를 위해서라도 자유주의를 제약해야 한다는 제한적 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 타당성이 입증되는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1970년대의 위기를 경유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맹렬한 공격 앞에 무릎을 꿇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한적 자유주의 질서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본질적 속성인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 축적을 보장하면서도 그것을 복지국가라는 자유시장 경제체제 외부의 목표와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 따라서 이 질서는 복지국가라는 외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이윤 축적이 가능한 한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1970년대의 위기를 경과하면서 이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선택지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본질적 속성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포기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그 선택지는 너무도 자명했다. 제한적 자유주의 질서를 고수할 것을 주장하는 일부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자유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로 급속히 경도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19세기 후반 풍미했던 무제한적 자유주의는 20세기 후반의 세계에 재림했다. 20세기 초반의 세계를 파국으로 내몰았던 여러 징후들과 함께. 제한적 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그나마 완화된 듯이 보였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고삐 풀린 자본의 무분별한 이윤 축적으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19세기 후반의 세계가 그러했듯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 경쟁은 세계를 약탈적 경제전쟁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외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은 20세기 초반에 그러했듯 임박한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파국을 예고하는 듯이 보인다.

역사는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의 역사가 20세기 전반부와 같은 파국으로 귀결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주의 질서가 잉태한 파국을 자유주의의 전복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20세기 초반의 정치적 기획이 오늘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포스트 자유주의의 기획이 아직 우리의 가시권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차이 말이다.

유럽 주요 극우정당의 지도자들(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독일대안의 페트리, 프랑스 국민전선 르펜, 이탈리아 동맹당의 살비니, 네덜란드 자유당의 빌더르스 )

촛불, 문재인 정부, 그리고 한국 자유주의의 배신

‘이게 나라냐’던 촛불의 외침은 작년 문재인 정부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극단적인 보수 정권 하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사실 사상누각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은 우리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일종의 안도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권위적 리더십과 갑갑할 정도로 더디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나아가고 있는 적폐 청산, 그리고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문재인 정부의 탄생이 가져다 준 안도감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희망은 계속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탄생했다. 그러나 광장의 촛불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광장의 촛불에는 보수정권 9년 동안 자행된 부패와 민주주의의 후퇴는 말할 것도 없고,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노동 3권은 고사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마저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현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면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알바와 고시원을 전전하는 청년들, 임대료와 각종 수수료의 중압감을 노동시장보다 더한 장시간 노동으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사업주라는 허울 좋은 명목의 자영업자들, 그리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생활비에 신음하는 모든 평범한 서민들의 분노가 촛불과 함께 타올랐다. 그리고 촛불은 이 모든 헬조선의 근원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재벌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와 이 기득권 체제 수호의 첨병을 자처한 부패정권에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촛불은 문재인 정부에게 이 기득권 체제를 청산할 임무를 위임했다.

그러나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와 희망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멈추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을 걷어낼 최소한의 조치인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갈등을 빌미로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임대료와 각종 수수료 인하 등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 줄 최소한의 조치가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외면하면서 을과 을의 갈등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 행위로 사법적 심판을 받고 있는 재벌 3세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뜬금없이 나타나더니 경제부총리의 깍듯한 예방까지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면죄부를 발부한 것이다.

헬조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확히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없이 헬조선은 해결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단지 외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규제 대신 재벌과 대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이 정답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 총수와의 면담을 통해 투자 확대를 확약 받았다고 자랑하는 경제부총리의 행보는 그 반증에 다름 아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반대급부 없는 투자 확대는 없다.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예로 들며 대통령이 직접 은산분리와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뜬금없다기보다는 대단히 일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규제 기요틴을 외치던 박근혜 정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동일한 논리를 서슴없이 제기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보수주의 정치세력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해 왔지만, 재산권을 보호하고 자유로운 이윤 축적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 질서의 근본 원리라는 믿음은 확고하게 공유해 왔다. 자유시장 경제주의자라는 점에서 그들은 동일했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에 어떤 형태로든 반응해야 했다는 점 정도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벌어진 문재인 정부 내부의 갈등처럼, 한국의 자유주의 정부가 완전한 자유주의자들과 일종의 제한적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을 겪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이 갈등에서 제한적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던 세력이 변방으로 내몰린 현실은 이것이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故 노회찬을 그리며

그가 홀연히 떠났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고 다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수 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장례식장을 다녀 온 지금에도 여전히 믿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대단히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지면서도 또 원망스럽기도 했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생명까지 포기해버린 그의 엄격한 도덕성이 밉기도 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를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그가 걸어 온 길과 그가 꿈꾸던 세상의 전망을 단지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고인에 대한 무례함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포스트 자유주의의 전망을 꿈꾸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들 중의 하나였고 또 그 대표 주자의 하나였다. 내게 그의 죽음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정치인의 죽음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아직 멀기만 한 포스트 자유주의 사회의 기획을 현실화하는데 중차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던 정치인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었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헬조선 극복이라는 촛불의 외침을 배신하는 징후들이 농후해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죽음은 안타까움 그 이상이었다. 헬조선은 제한적 자유주의마저도 허용하지 못하는 완고한 한국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산물이다. 포스트 자유주의는 고사하고 재산권과 이윤 축적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것만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제한적 자유주의마저도 발붙이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하에 재산권에 기초한 유산자들의 갑질과 재벌과 대기업의 무제한적인 이윤 사냥이 보장되는 한 헬조선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제한적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재산권과 이윤 축적의 자유를 조금이나마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헬조선의 현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엄한 역사의 경험은 제한적 자유주의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라도 그것마저 넘어서는 포스트 자유주의의 기획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말해 준다. 20세기 초반의 제한적 자유주의는 포스트 자유주의의 정치적 기획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국이 헬조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포스트 자유주의의 기획이 절실한 이유이다. 노회찬의 죽음이 더없이 안타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다시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필자소개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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