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자민련이었는디 이제 노동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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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7일 12: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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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낮술을 한잔 했다지만 쉽지 않은 말이다.
    “위원장님, 사실은 저 이 장사하기 전에는 기업에 있었어요. 총무실에 있었는데 제가 노조파괴 담당이었어요.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을)제주도에도 보내봤고, 울릉도에도 보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충성하는 걸로 생각했거든요.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하니까, 저도 노조파괴 공작을 했죠. 멀리 보내서 살살 구슬리기도 하고….”

    고백이다. 그가 살아온 날 중 어느 한때에 대한 깊은 회한이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의 말은 이제 과거를 넘어서 미래로 이어진다.

    언제나 한나라당이 최고라던 가게 ‘사장님’

    “이제 왜 민주노동당이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민주노동당입니다. 저도 회사 관두고 나니까 허망하더라고요. 이 장사 시작하면서 많은 걸 느꼈고, 이번 싸움에서 민주노동당이 관여하는 거 보고 여러 가지 생각했습니다. 자, 한잔 받으세요.”

    강원도가 고향이고, 언제나 한나라당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이 영세한 가게의 ‘사장님’은 이제야 거창한 신념에 의해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강한 확신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됐다. 그가 내 손을 꼭 잡는다. 몸은 낮술을 이기지 못하는 듯, 앞뒤로 조금씩 흔들린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과 마주보고 서 있는 마포농수산물센터 상인들을 처음 본 건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인 2004년 여름이다. 당시 마포농수산물센터는 마포개발공사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 공기업인 마포개발공사와 농수산물센터 상인간의 분쟁이 있었고, 거기에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가 함께 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변호사 당원도 큰 도움을 주었고, 결국 상인들이 원하는 대로 사태는 잘 해결됐다.

    내심 감사 인사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농수산물센터 상인들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며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2년 만에 다시 시작된 상암동 상인들의 투쟁

       
     
    ▲지난 4월 27일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임대료 인상에 항의하는 농수산물센터 상인들의 집회

    2년이 지나서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농수산물센터 벽면에 ‘임대료 인하’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걸 본 당원이 전화를 걸었다.

    “위원장, 농수산물센터에서 뭔 싸움이 있는 것 같은데, 한번 가봐야죠.” 당원들의 이런 제보는 충분히 훌륭한 것이어서, 아직까지 내가 속한 마포지역 사안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없는 당의 역량을 당원들이 보완해 주곤 한다.

    200개 점포가 넘는 농수산물센터 상인들과 마포개발공사는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임대료를 12% 인상하겠다는 마포개발공사의 안에 상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

    여기서 잠깐 임대료 12% 인상의 의미를 한번 짚어보자.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되고 난 뒤, 법적 임대료 최고치 인상률은 12%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모든 임대점포가 상가임대차보호법 범위 내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경우, 거칠게 얘기해서 월 임대료 200만원에 보증금 4,000만원이 넘어서게 되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월세 * 100 +임대보증금이 2억4천만 원을 넘지 않아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

    마포농수산물센터의 점포는 영세한 규모기 때문에 월세가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점포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재계약시 월 임대료 12% 이상 인상이 불가능하다.

    재래시장 육성 말로만, 법정최고치 임대료 인상하는 ‘공사’

    결국 지방 공기업인 마포개발공사는 법에서 정한 최고치인 12%의 인상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마포개발공사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말로는 재래시장을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법에서 정한 최고치의 인상안을 내걸었다.

    시장의 주체인 상인들의 처지가 최우선적으로 배려되어야 하는데 상황은 정반대.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하는 주체인 노동자를 우선 고려해야 함에도 정반대인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처음에는 주저했던 상인들도 조금씩 ‘전의’를 불사른다.
    상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마포개발공사는 임대료를 12%에서 10%로, 그리고 5%로 낮추겠다고 최종 제의했다. 5%로 임대료를 낮추게 되자, 내부에 이견이 생겼다. 그 정도면 충분히 된 거란 판단과, 어차피 임대료 싸움은 2년마다 반복될 것이니 이번에 확실하게 단합된 모습을 보이자는 주장이 맞섰다.

    상인들 난생 처음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결국 100여개 점포만이 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 집회신고를 내고, 피켓을 만들고, 현수막을 제작하고, 농수산물센터 상인들과 회의를 가졌다. 당에서 실무지원을 맡았다. 이번 기회에 상인연합회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마포구청 앞 집회 당일.
    100여명의 상인들이 모였고, 중앙당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이 참석했다. 집회는 대성공이었다.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잔뜩 상기된 상인들의 표정에는 “해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져 있었다.

    보통 잔뜩 긴장을 했다가, 그것이 성공리에 끝나면 무용담을 담아내기에 정신이 없다. 우리의 점심식사도 그랬다. 처음 갖는 집회, 경찰이 출동하고, 구호를 외치고, 난생 처음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비롯한 운동권 가요를 배우고 또 불렀다.

    집회가 끝나고 다시 점심식사 장면.
    “위원장님, 민주노동당은 오늘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 열 표는 벌었어요. 나 이명박 좋아했는데, 아까 이선근 본부장님이 얘기한 거 듣고, 이제부터 민주노동당편 할 겁니다.”

    당선되든 안 되든 밀어줘야 냉중에 힘이 될 것 아니것나

       
     
    ▲ 집회에 참석한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

    중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본부장이 집회 발언을 통해 서울시가 시도했던 ‘지하도 세입자 임대료 인상 사건’을 소개했다. 많게는 몇백 %의 임대료 인상을 시도했던 서울시의 행태를 비판했는데 그것이 이 산전수전 다 겪은 상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이날 농수산물센터 상인들은 자체 조직을 결성하기로 했다. 또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도 이어졌고, 내 마음을 꼭 짚어 낸 발언도 이어졌다.

    “그니까 이번엔 무조건 민주노동당 밀어야 해.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건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해봐. 민주노동당 후보가 득표를 많이 해야 냉중에 힘이 되지 않것나. 아, 그래야 (후보 득표율이 높아야) 우리가 싸울 때 조금이라도 더 힘을 쓸 수가 있어.”

    그러자, 탁자를 치는 소리와 함께 제일 목소리 큰, 아마도 곧 회장으로 추대될 상인이 호쾌하게 소리쳤다. 이날의 압권이었다. 이제껏 마음속 비밀로 간직했던 것을 터뜨리듯 그가 소리쳤다.

    “그려, 나 지금까지 자민련이었는데, 이제부턴 민주노동당이여.”
    세상에, 자민련이라니. 이미 한나라당과 통합한 당인데 말이다.
    “아니 자민련 지지자셨어요. 좀 그렇다.”
    “아, 위원장님도 차암나, 민주노동당이나 자민련이나 지지율로 보자면 그게 그거지, 뭐.”
    뭐 당사자야 “왜 하필이면 늘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소수정당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흔쾌히 자민련에서 민주노동당으로 ‘턴’했다.

    현장 연대와 당의 정책이 아름답게 만나야한다

    그렇다. 지금은 ‘터닝 포인트’다.
    수많은 대중들이 다시 한번 지지했던 정당을 고민하고, 선택을 하는 시기다. 어제의 지지가 내일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노조말살을 위해 납치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도 어느 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며 자신의 과거 어느 한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쓰리게 회상하기도 한다. 망해가는 자민련을 꼭 부여잡던 어떤 사람이 180도 지지정당을 뒤바꾸게 된다. 물론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이 ‘터닝’ 하는 ‘포인트’는 바로 현장에서의 긴밀한 연대와 당의 정책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당의 정책이 있기에 연대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정책은 허상에 불과하다. 지방선거가 다가왔다.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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