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 안희정 ‘무죄’
홍대 몰카 여성에는 ‘실형’
김지은 “이미 예고되었던 결과였을지도···끝까지 살아남아 싸우겠다”
    2018년 08월 14일 04: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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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업무상 위력 행사한 정황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여성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미투 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한편 법원은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을 불법촬영해 온라인에 유포한 여성 모델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된 안 전 지사의 선고 공판에서 안 전 지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를 떠나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안희정 전 지사(방송화면)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에게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유력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상황에서 피해자의 심리상태가 어땠는지를 떠나 피고인이 적어도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던 안 전 지사가 헌신적으로 일한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한 중대범죄”라며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안 전 지사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끝까지 살아남아 권력형 성폭력 심판 받는 날까지 싸우겠다

김지은 씨는 변호사를 통해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씨는 입장문에서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며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도 아프고 괴로웠다,우선 그간의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지금 제가 생존해 있는 건미약한 저와 함께해주는 분들이 있어서였다며 숱한 외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주셨고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어쩌면 미리 예고되었던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지금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굳건히 살고 살아서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며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자가 힘에 겨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당당히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혀 범죄자는 감옥으로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내겠다면서 끝까지 함께해달라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사회 분위기 전혀 반영하지 않은 판결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여성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혐의는 강한 거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임에도, 법원이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기이한 판결이라는 것이 일부 여성계의 주장이다.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스트칼리지 교수는 “강력한 거부를 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핵심적 메커니즘”이라며 “법원이 이러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감각이 뒤쳐진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엄 교수는 “대체적으로 많은 성범죄 사건에서 효력이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가 쟁점이기 때문에 정황이라는 건 매우 중요하다. 만약 법원이 그 정황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권력관계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봤다면 의의가 있는 판결문이 나올 수 있었음에도 그런 것들은 완전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법부가 미투운동 등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면 최소한 부분 유죄판결이라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 교수는 “안희정 전 지사의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 재판에 있어서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해자에게 충분한 동의를 확보했는지 등 동의 여부에 입증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들, 무죄 선고 납득 어렵다…“미투운동에 대한 사형선고”

정치권 역시 법원의 무죄 판결 근거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법원은 안 전 지사가 피의자에게 위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위력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며 “‘술을 먹고 운전을 했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이번 사건으로 사법부의 한계는 뚜렷이 나타났다”며 “재판부조차 판결문을 통해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가 국민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와 동떨어진 법해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지금과 같은 법체제하에는 동일한 성범죄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도, 처벌받을 일이 없다는 말”이라며 “결국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진 이가 위력을 행사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질타했다.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사법부가 성차별 적폐의 본산임을 보여주는 최악의 판결”이라며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에 면죄부를 준 사법부는 유죄”라고 규탄했다.

이 대변인은 “미투 운동이 잠잠해지면서 가해자들이 고소·고발로 반격하던 차에, 오늘 무죄선고는 앞으로 더 많은 피해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게 될 것”이라며 “한마디로 미투운동 사형선고”라고 규정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도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안희정 전 지사 무죄판결은 미투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안희정 전 지사의 무죄판결을 보며 대한민국 곳곳에서 안도하고 있을 수많은 괴물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부의 판결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은 이어지는 모든 미투 관련 재판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감정과 완전히 괴리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위력을 인정하면서도 위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없다고 판시한 것은 대단히 인색한 접근”이라며 “안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이 ‘미투 운동’에 좌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민주평화당은 김형구 부대변인 명의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에 비해 의외의 결과라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이라며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미투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우려된다”는 짤막한 논평을 냈다.

안 전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일관성 없는 판결에 법조·여성계 모두 “편파적”, “일관성 없다” 성토
“젠더적 관점에서의 사법개혁 필요”

한편 법원은 전날인 13일 홍익대 회화과 누드크로키 수업 중 동료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한 여성 모델에게 징역 10개월이라는 다소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 전 지사에는 무죄를, 불법 촬영·유포 혐의를 받는 여성 가해자에겐 실형을 선고한 법원에 형평성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여성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환영하면서도, 남성이 가해자였던 불법촬영에 대한 안이한 수사를 벌여온 경찰과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온 법원에 ‘편파수사’ 문제를 제기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성몰카 피의자 모습(방송화면)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13일 남성 모델의 성기와 얼굴이 노출된 나체를 몰래 찍어 유포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 모델 안모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가 남녀냐에 따라 처벌의 정도가 달라질 수 없으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고 있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남성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14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범죄자의 성별과 관계없이 사건 그 자체만 보면 중형이 선고되는 게 맞다”면서도 “그런데 기존에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했을 때 처벌의 정도가 굉장히 미미했기 때문에 (법원의 이번 판결이) 편파적이라는 결론으로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발표한 ‘2017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1심 양형을 보면, 벌금형이 72%, 집행유예가 15%, 선고유예는 7.5%였고, 이번 여성 가해자와 같이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5.3%에 불과했다. 촬영자가 불법촬영 후 촬영물을 유포한 경우로 한정하면 분석대상 판결 66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18건(27.27%)에 불과했다.

불법촬영과 같은 성과 관련한 범죄와 관련해, 동일한 범죄에 성별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는 객관적 통계도 낼 수가 없다. 여성 가해자에 비해 남성 가해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비교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처음으로 불법촬영 범죄인 경우에 제대로 된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의 99% 이상이 여성이었다”며 “그래서 두 성별 자체를 비교해서 어떤 판결이 타당한지, 성차별이 있는 것인지, 편파적인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안희정 무죄’와 ‘홍대 불법촬영 여성 가해자 실형’은 사법부가 사회적 분위기, 국민감정과 얼마나 동떨어진 판단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엄혜진 교수는 “홍대 불법촬영 사건의 실형은 과도했고 안희정 사건에 대해선 미투운동 등 성범죄 문제의식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며 “(일관성 없는 이런 재판은 미투운동 등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워마드 운영자를 수사할 수도 있고, 실형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도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보이는 일관성이 부족한 판결은 기존 관례를 따른다고 보기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반된 두 판결을 계기로 젠더 관점의 사법개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엄 교수는 “사법개혁의 관점이 그동안 정권과의 문제로만 논의된 측면이 있다”며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편파적인) 사법적 판단은 법원의 보수성이나 기득권 유지하는 중요한 지렛대였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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