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8일 여당과 심야회동서 가닥 잡아
        2006년 05월 06일 10: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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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던 지난달 3일.  <레디앙>의 창간일이기도 했던 그날 새벽 2시 30분경,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 법사위를 기습 점거했다. 비정규직 법안의 처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당 당직자들은 "의회주의를 파괴한 범법자"라며 민주노동당을 비난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른 지난 2일 오후, 여당 당직자들은 또 다시 의회주의를 파괴한 범법 행위를 비판했다. 이번에는 본회의 법안 처리를 막으려고 국회의장 공관을 쳐들어가서 점거한 한나라당이 범법자였다. 

    민주노동당은 ‘범법자’에서 뚝심있게 민생 법안을 관철시킨 ‘다윗’이 됐다. 그것 뿐이 아니다. 여당으로부터 비정규직 법안을 재논의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여당에는 ‘빚’을 남겼다. 언론들은 일제히 4월 임시 국회의 ‘승자’는 민주노동당이라 보도했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골리앗을 누른 다윗"이라는 얘기도 나왔고, "국회 들어온지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는 얘기도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4월의 의사당에서는.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4월 임시국회가 민주노동당에게는.

    <레디앙>은 4월 임시국회 투쟁과 협상의 중심에 있었던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단 수석부대표를 만났다. 심 의원은 "이런 인터뷰에서는 협상 과정에 대한 여러가지 뒷얘기를 해야 하는데 수석 위치에서 이거 가지고 장사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그런 점은 제가 많이 경계해왔던 입장이라 대답하기 싫은 건 안할께요(웃음)"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 저지가 가장 큰 성과"

    -4월 임시국회를 전반적으로 평가해주시죠.

    =한마디로 말해 반쪽 국회였습니다. 거대 양당의 사학법 개악 협상 때문에 민생 법안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4월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뭘까요.

    =최대의 정치적 과제였던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저지한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했는데 못했다고 생각하는 법안이 있나요.

    =대부업법을 지난 2년간 준비해왔어요. 현행 대부업 이자율의 상한은 66%고 저희는 이것을 40%로 낮추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 여당과 협의하는 중에 일단 50% 수준까지는 낮추는 것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졌는데 국회가 파행으로 가면서 법안 처리를 못했어요.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대부업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일본 야쿠자 돈이 국내로 몰려올 가능성이 굉장히 커지고 있거든요. 정부 입장에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예요. 가능하면 6월 임시국회에서,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는 처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할 생각입니다.

    -여당과 법안 처리에 합의한 배경과 내막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제 기억에는 지난달 28일 한나라당이 ‘4자회담’을 거부한 이후 여당이 민주노동당과의 공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 같은데요.

    =여당은 지금 당 지지율이 아주 낮죠. 무기력한 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할 일은 하는 강단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던 것 같아요. 여태껏 여당은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정치를 해왔는데 두 바퀴 중 한 바퀴가 빠져버리니까,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의 공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27일, 김한길 원내대표와 통화에서 오간 말 

       
     

    그러니까 목요일이죠, 27일이면. 김한길 대표가 한나라당에 ‘4자회담’을 제안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소집했어요.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에 상임위 협조를 요청했죠. 당초 민주노동당은 국회 파행의 원인이 거대 양당의 사학법 개악 협상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여당이 ‘4자회담’을 제안했어요. 이건 사학법 개악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뜻이거든요.

    여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한쪽에 대고는 사학법 개악 협상을 계속 하자고 하고 다른 쪽에 대고는 국회를 정상화하자고 하니 믿을 수가 있어야죠. 그런 식이라면 여당의 단독 상임위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게 당의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행자위에서 주민소환제법 처리가 있었어요. 아시다시피 주민소환제법은 민주노동당이 앞장 서 요구했던 법안입니다. 그날은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서 공청회도 하고, 여당도 직권상정해서라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약속하고 해서 결국 이영순 의원이 도장을 찍어줬어요.

    행자위에서 법안 처리하기 전에 제가 김한길 원내대표하고 통화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들 항상 법안 처리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해놓고 뒤에 한나라당하고 대화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통과된 것까지 걸러내고 퇴색시키고 이런 일을 반복해왔는데 그런 들러리에 민주노동당이 협력할 수 없다" 그러니까 김 원내대표가 "주민소환제법 만큼은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도 그 약속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는 없다", 이런 대화가 오갔어요.

    "28일 심야 회동비정규직 실질 보호법안 상호 논의 인식 공유"

    -그게 27일이군요.

    =그렇죠. 27일 낮의 상황이죠. 그건 직권상정과는 상관없이 주민소환제만 가지고 오갔던 얘기예요. 그러는 와중에 양당 원내대표하고 수석부대표하고 잠깐이라도 만나자는 제안을 왔죠. "오늘은 4자회담까지 제안한 상태에서 우리하고 할 얘기가 뭐냐"고 퇴짜를 놨더니 "더 이상 한나라당과 사학법 협상은 없다, 기자들 앞에서도 선언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지방일정이 있으니 필요하면 내일 봅시다" 해서 결국 금요일, 28일이죠, 밤 10시에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원내대표 청와대 조찬 제안이 있었어요. 만자나마자 그 얘기부터 했죠. 김한길 대표가 "사립학교법 협상은 더 이상 없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 몇 가지 시급한 민생법안들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되겠으니 협조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몇 가지를 확인해봤어요. 먼저 "대통령이 이 국회 파행 시기에 아무 복안 없이 양당 대표를 불렀겠느냐, 사학법 양보를 전제로 부동산법 처리를 당부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그럴 것 같지 않다, 확인해봤는데, 사학법과 관련된 구체적인 얘기는 안 할 것 같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어요.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은 처리하지 않겠다"고 하길래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보호법안을 만들기 위한 상호 논의가 있어야 된다"고 했고, 결국 그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이 두가지를 확인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시급히 처리되야될 민생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눴어요. 민주노동당은 주민소환제법, 3.30 대책 관련 법안, 론스타 과세 위한 ‘국제조세조정법’,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처리돼야 하고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가하자는 입장이었어요.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을 얘기했죠. 일단 직권상정 문제는 청와대 회담의 결과를 본 후에 결정하겠다. 둘째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과 함께 처리해야 한다. 셋째 한나라당에 사학법과 별개로 민생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하자. 그렇게 했는데도 한나라당이 처리 못하겠다고 하면 민주당, 국민중심당과 함께 처리하자는 거였죠.

    "비정규직 법안 재논의 가능해도 합의는 어려울 것"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실질적인 보호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셨다고 했는데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반응은 정확히 뭐였나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재논의에 합의했다, 이런 보도가 있었는데,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된 상황적 인식을 공유했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우선 비정규직 법안이, 열린우리당이 2기 국회에서도 일관되게 추진할만큼 그렇게 자신있는 법안이 아니예요. 여당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이 법안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바뀌잖아요. 원구성을 통해서요. 열린우리당 의원 뿐만이 아니라 법안에 참여했던 바깥 시민단체 사람들까지 다 바뀔겁니다.

    또 지방선거 이후 대선으로 가는 국면에서 다양한 정치적 변화들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상황대로라면 한나라당과 다른 정당 간에 일강 삼약 구도 비슷하게 갈 가능성이 많잖아요. 이 때문에 여당 입장에서는 국회 원내대책과 관련해서 민주노동당, 민주당과와의 협력 강화를 한 자락 고민으로 넣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재논의는 가능하다는 쌍방의 인식 공유가 있었죠.

    물론 여당이 재논의 과정에서 포함하려고 하는 내용은 민주노동당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열린우리당은 고용의제를 포함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만 우리는 사용사유 제한을 말하고 있어요. 사용사유 제한은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의 일정한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논의를 하더라도 아마 여당과 합의처리를 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노동자들 투쟁과 국민의 협조 없으면 민주노동당 입장 관철 어려워 

    결국 노동 주체의 투쟁과 국민들의 협조, 이것을 보완해서 실질적인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어떻게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입니다. 재논의는 가능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법안처리 일정이나 시점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더 이상 법안 처리 절차가 논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논의를 어떤 방식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의견을 모을거냐 하는 전략적 협의를 선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러야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검토가 이뤄지겠군요.

    =6월 국회가 열리더라도 원구성에 대해 주로 논의할테니까요.

    -사전 실태조사와 관련해서 의견접근이 있었나요. 김한길 원내대표가 취임 100일 맞이 기자간담회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의견을 나누겠다고 했어요. 의견을 나누는 범위가 어디까지냐, 사전 실태 조사도 포함되느냐고, 여당 쪽에 물어봤더니 그럴 거라고 하던데요.

    =사전 실태조사나 사유제한에 대한 실질적 검토는 민주노동당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느냐는 건데요. 저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말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지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죠. 재계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여당의 입장으로 볼 때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정규직 노동자, 민주노총 등 노동 주체들의 투쟁과 민주노동당 의원단의 투쟁으로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으로 통과시키려고 했던 개악을 저지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의 원래 목표는 개악저지가 아니라 보호입법이다, 그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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