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대학생 당원에서
노회찬 이을 차세대 진보정치인으로
[당당히 앞으로①] 정의당 이기중 관악구의원
    2018년 08월 14일 01: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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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눈앞에서 벌어진 것인데도 믿기지 않는 일이 있다. 이 믿기지 않은 일이 기적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겪어 보지 못한 비통함이었다. 시간의 법칙은 보편적이라 그의 부재까지 어느 순간 익숙해지겠지만, 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부재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제외한 수많은 타자로 구성된다. 그는 나를 구성한 영향력 있는 타자였다. 나는 많은 부분 그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봤다. 진보정치를 이 땅에 싹틔우고, 키우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도 그는 현미경이었고 망원경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기대며 산다. 나와 우리는 기대고 있었던 큰 나무가 갑자기 뿌리째 사라진 비통함을 경험했다.

경험은 과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우리 모두가 그가 되자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우리가 보내주지 않는 만큼, 보내주기 싫어하는 만큼 우리와 같이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 때까지 우리는 그를 보내줄 수 없다. 그가 없이 그렇게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 서열과 학력 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 노회찬, 『진보의 재탄생』 중에서

노회찬, 그는 자신의 꿈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떠났다. 그는 죽음으로써 과거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가 됐으며, 고유명사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동사로 우리에게 남았다. 그가 오랜 고난의 시절 동안에도 온전하게 간수하다가 넘겨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실천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그가 가장 흡족해 할 ‘애도의 방법’일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레디앙>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짐을 진 노회찬의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첫 인터뷰로 정의당 이기중 관악구의원을 만났다. 2회에 나눠 게재한다. 인터뷰와 내용 정리는 이광호 전 레디앙 대표가 맡았다.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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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중은 1980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교가 가까운 서울시 관악구에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살고 앞으로도 오래 그럴 것 같다. 음대 작곡과, 서양사학과, 노무사, 진보정당 정치인. 하나로 엮기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 경력이 38세인 그가 지금까지 거쳐 왔거나 지금 지나가는 곳들이다. 이들을 횡단하는 그의 가치는 무엇일까? 무엇이 작곡 공부하려고 대학에 진학한 이 사람을 노회찬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정치인이 되게 만들었을까? 하늘도 공기도 땅도 바람까지 뜨겁던 8월초 관악구 의회 건물 408호실에서 그를 만났다. 오래전 여의도 두레빌딩 9층, 갓 탄생한 민주노동당 당사에서 그를 처음 봤다.

인터뷰 중인 이기중 의원

이광호 : 18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나?

이기중 : 물론 기억난다. 그때 대학생 당원이었다.

이광 : 첫 만남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외모가 아니라 전공이.(웃음) 그 이후 뜨문뜨문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민주노동당 초기 노회찬 부대표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당 기관지였던 주간 <진보정치>를 통해 당원들에게 그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 이런 것보다는 좀 인간적인 면이랄까, 사적인 부분을 알려주려 했다. 예컨대 첼로 연주 이야기 같은 것. 준비해 간 질문을 했더니 그가 너무 낯설어 하면서 답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중 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조금 변하긴 했지만. 오늘 인터뷰에서는 사사로운 이야기도 포함이 된다.

스무 살에 진보정당 당원이 됐고, 서른 살에 처음 출마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 번 출마 끝에 당선이 됐다. 당선 소감은 이미 많이 했으리라 본다. 세 번 출마에 노무사 일도 제대로 못했을 것 같은데 현재 빚도 있나?

이기 : 많다.

이광 : 어느 정도인가?

이기 : 마이너스 통장에 쌓인 빚이 상당한 수준이다. 이건 오프인데.(웃음)

이광 : 아, 상당히 많다. 이거 공개하면 큰일 나겠는데.(웃음)

이기 : 그렇다.

이광 : 지역 활동하면서 이렇게 빚을 진 건가?

이기 : 사실은 거의 생활비였던 것 같다. 처음 출마하고 나서 그 이후로 노무사 일을 하긴 했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당 활동하고, 때 되면 내 선거 하고, 남의 선거 돕고 하면서 노무사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1년 1천만 원씩 빚이 늘어났다.

이광 : 노무사 하면 얼마까지 마이너스 통장이 가능한가?

이기 : 처음 만들 때는 5천만 원이었는데 중간에 1억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준 데가 있었다.

이광 : 이자는 얼마나 하나?

이기 : 한 4% 정도 됐다.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 입학했다가 운동권과 진보정치로

이광 : 세비 관련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이번 선거 전에 인터뷰 한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다. 거기 보니까 “유희열, 신해철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음대에서 하는 건 클래식이라…… 망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나왔다. 이거 실화냐? 이걸 모르고 작곡과에 같나?

이기 : 사실 처음에 정말 그냥 무턱대고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그렇다면 대학은 가야 되니까 음대를 가라고 말씀하셨다. 화성학부터 공부를 했는데, 그때부터 알았다. 이게 아닌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런 공부를 하더라도 대중음악을 할 수는 있고……

이광 : 원래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 했나?

이기 : 그렇다. 고등학교 때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집에서 과외까지 시켜 주셨는데 도중에 접기는 쉽지 않았다.

이광 : 요즘 식으로 하면 아이들이 많이 가고 싶어 하는 실용음악과 쪽이 더 맞았을 것 같다.

이기 : 그렇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실용음학과가 별로 없었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는 그런 과가 없었다.

이광 : 음대는 운동권이 특히 드물었고 본인이 좋아했던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대부분 운동을 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대학 운동권은 희귀종이고 일반 학생들도 별로 쳐주지 않았던 때 아닌가?

이기 :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꽤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학교마다 편차는 있지만 서울대의 경우 정파도 7~8개 정도 있었고, 활동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다. 총학생회 선거 때 많은 정파에서 나왔고, 학생회는 모두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했다.

이광 : 99년에 입학하고 2000년 당이 생기던 해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나?

이기 : 정확하게는 선거(2000년 총선)를 하고 와서 당원이 됐다.

이광 : 당원이 아닌 상태에서 권영길 국회의원 후보를 돕기 위해 창원에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희열과 신해철의 음악 대신 권영길의 정치를 만난 셈이다. 운동 또는 진보정치 운동 쪽으로 자신의 삶의 행로를 틀게 만든 씨앗이라고 할까, 원초적 감정 또는 욕망이 무엇이었나?

이기 : 아주 원초적인 것이라면 사춘기적인 반항심 같은 것이 있었다.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수용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냥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대에서는 그나마 공부 안 하고 술 좀 마시고 노는 사람이 운동권 선배밖에 없었다.

또 고등학교 다닐 때 뭔가 막연하게 사회나 학교 시스템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많이 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들과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왜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바뀌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광 : 당시 상황에서 가장 심각하게 비합리적인 사회문제라고 생각했던 사안 중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이기 : 1학년 때였던 1999년 지하철 파업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서울대로 대피해 들어와 있었다. 상당히 오래 있었다. 당시 구호가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자는 요구는 직관적으로 봐도 당연하고 옳다고 생각했다. 이 요구에 대해 정부나 언론은 무슨 요구를 하는지 신경은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진압하려 했던 것을 보고 문제가 정말 많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

이광 : 학교 들어가서 데모하러 다니고, 술 마시고 이러다 보니까 점수가 안 나와 졸업 못할 것 같아서 과를 옮겼다고 했다. 정말 그랬나? 혹시 음악보다 정치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닌가?

이기 : 물론 그때부터 정치를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냥 음대를 졸업해도 전공과 무관하게 정치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는 졸업장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는 졸업이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광 : 이번엔 서울대 서양사학과였다. 왜 서양사학과였나?

이기 : 당시는 과를 먼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과대를 먼저 결정하는 학부제였다. 인문대를 가게 된 것은 점수를 고려한 대목도 있고, 기본적으로 인문학 공부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던 건 아니다.

이광 : 졸업하던 해인 2010년, 30세에 처음 출마했다. 출마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했던 훨씬 전이었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나?

이기 : 정말 막연하게 치자면 2000년 창원에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결정한 것 같다.

이광 : 권영길 키즈였나?

이기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웃음)

이광 : 비교적 이른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 배경은 뭔가?

이기 : 1학년 때 집회도 나가고 데모도 했는데, 그때부터 선배들로부터 진보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우리가 흔히 하던 이야기는 밖에서 싸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국회 안에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들어가서 목소리를 들어가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직접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창원에 선거운동을 하러 가게 됐다. 거기서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 300명 정도 선거운동에 함께 붙어 줬다. 내가 볼 때 굉장한 선거운동이었다. 그런 모습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직접적 방법이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실제 정치 현장에 와서 경험하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당과의 첫 만남은 민주노동당
민주당으로 가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이광 : 세상을 직접 바꾸는 것이 정치이고, 내가 그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은 좀 편한 길을 가려 한다. 물론 아주 편한 길은 없다. 고향 따라 당을 선택한다거나, 유력 양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진보정당이었나?

이기 : 아까 말한 것처럼 그때까지 사회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데모할 때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민주당이 어떤 당이고, 한나라당이 어떤 당인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처음 보고 겪은 당이 민주노동당이었다. 다른 정당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광 : 다행이다.

이기 : (웃음)

이광 : 2010년 낙선 후 결혼과 노무사 자격 취득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동지와 자산’을 만든 것 같다. 결혼식 주례가 노회찬 의원이었다. 노 의원과 인연, 주례를 부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 : 일단 제가 하는 본업이 정치이고, 이 공간에서 제일 본받고 싶은 사람, 존경하는 사람이다. 또 잘 알려진 분이라서 부탁했다.

이광 : 어려운 질문 하나 추가하겠다. 주례사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나?

이기 : 없다.(웃음)

이광 : 예상대로다.(웃음)

이기 : 다만 역시 기대한 것처럼 빤하지 않은 좋은 주례사였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사실 누구나 처음 하는 결혼식에는 정신이 없지 않나.

결혼의 주례이자 진보정치의 롤모델인 노회찬 의원과 함께

이광 : 말이 쉬워 세 번째 도전이지, 10년 가까운 세월이다. 복수전은 아니지만, 와신상담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 기간 동안을 버티게 한, 꾸준히 준비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기 : 사실 잘 모르겠다. 이를 악물고 버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번째 떨어졌을 때 세 번째까지는 해 보자. 한계가 올 때까지는 해 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정치인이 되겠다고 생각했고, 진보정당에서 계속 활동을 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광 : 지난 지방선거에서 몇 번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 이 사람이 민주당으로 나왔네.” 정의당 당원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이 옮긴 것이다. 예전처럼 변절이니 뭐니 하는 분위기는 없고, 덕담을 해 주는 수준인 것 같다. 딱히 나쁘게 볼 일도 아닌 것 같다. 피차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 할까. 혹시 이기중 후보가 민주당으로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이기 : 그런 고민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이광 :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지역 유권자가 이기중 후보를 이번에 당선시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기 : 처음 나왔을 때부터 19%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얻고 간 것은 젊은 후보,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라고 본다. 이 지역에서는 이 요인이 기본적으로 15~20% 정도 받쳐주고 있다고 본다. 진보성향 있는 동네라는 지역 특성이 있다. 거기에서 시작해서 1% 더 쌓아나가는 것은 엄청난 자원 투입해야 그나마 조금씩 쌓이는 일이다. 내가 조금씩 더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계속 동네에서 있으면서 같이 생활했던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그게 일종의 동정표가 된 것도 있고.

이광 : 이번에 나온 다른 후보들보다 주민과 함께 했던 시간이 월등히 많았나?

이기 : 그랬던 것 같다. 같은 지역구에 나온 후보들이 나보다는 덜 열심히 했다. 그 쪽이 잘못한 것이다.

이광 : 선출직은 임기가 있다. 이번 임기가 끝날 때 어떤 정치인으로 평가를 받고 싶나?

이기 : 구의원은 많은 것을 바꾸기는 어렵다.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하나 도입하려 해도 구청을 통해서 해야 되고, 조례로만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뚜렷한 업적을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첫 번째는 성실하고, 두 번째는 주민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입장을 가장 잘 대변했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싶다.

이광 :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정의당 기초의원 당선자 5명(김희서 이기중 주희준 설혜영 임한솔) 모두 이번이 세 번째 출마자들이다. 선거구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진보정당이 여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게임의 룰 자체가 달라서 지속적인 출마가 당선의 길에 가깝게 다가서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많다. 지금의 정당 구도로 보면 어느 때보다도 좋은 환경이라는 관측이 많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현행 선거제도가 정의당에 어떤 종류의 면죄부가 되면 안 되겠지만.

이기 : 선거구제 제도 개혁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정의당의 당력 기울인다고 될 수 있는 부분인가. 정의당 국회의원이 메시지를 그 방향으로 집중하고, 당 차원에서 관련 내용으로 집회를 열어 당력을 모은다고 해서,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지지 여론을 일으켜서 실제로 개혁에 큰 힘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있다. 지난 2015~2016년 솔직히 당 지도부가 선거제도 개혁 말고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선거제도 개혁도 안 되고, 정의당의 다른 중점 사업도 안 보였다. 총선에서 당의 메시지나 전략이 전혀 없었다고 본다. 그런 상황은 곤란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그런 얘기를 몇 번 들었다. 몇몇 광역 단위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기초의원 4인으로 하자는 초안이 나왔다. 서울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그것만 믿고, 4인 선거구가 될 테니까 당선 가능성 높겠지, 하면서 안이하게 생각했던 지역과 후보들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쪼개기를 해버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우리 당의 선거 전략이 비례 당선 말고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거다. 예전에 출마했던 분들도 있고. 그런데 이런 분들은 도대체 뭘 보고, 뭘 위해서 출마를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경우 2000년, 2004년, 2008년 총선에서는 그래도 당을 위해 비례 득표 높이고 당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희생한다는 정신으로 출마했던 분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은 두세 번 출마하니 개인적 타격 크다. 앞으로 전망 안 보인다. 이런 식으로 총선을 여러 차례 치러 왔다. 지난 총선의 경우 서울에서 그래도 나름 지역 활동을 열심히 했던 분들도 3%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지역구 출마를 하라고 할 수가 있을까? 당은 비례 대표에게 표 좀 주세요, 라고 밖에 말을 하지 못하면서. 선거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비례 후보를 늘리자는 얘기만 하고, 선거에 돌입하면 비례 후보 표 주세요라는 얘기밖에 못하는데. 지역구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출마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지역 소상공인들과 대화하는 이기중 의원(사진=이기중 페이스북)

비례 당선에만 몰입하는 당의 총선 전략은 안 돼

이광 : 그 동안 지역구에 출마해서 지금 얘기한 것처럼 고생을 많이 한 분들 중에는 다음 총선에서는 비례 후보 출마를 검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당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선거구제 개혁 말고 정의당이 길게 보고 당의 힘을 전략적으로 모아 내야 할 부분은 어디라고 보는가?

이기 :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많이 얘기한 게 있다. 우리 당이 중앙 정치에만 관심이 있고 지역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지적들이었다. 지방선거 때도 그렇고 정말 지역에는 아무런 자원을 투입하지 않고 있다. 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도의 경우 개편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행 선거제도 안에서 이것을 뚫을 수 있는 모델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서울의 경우 구 의원이 다섯 명이다. 정말 25개구에서 구 의원 한 명씩 만들거나, 한 구에서 4~5명씩 구 의원이 생기게 되면, 그런 지역에서는 시의원 등 상위 선거에서도 유의미 득표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뚫을 수도 것 아닌가. 소선거구제 하에서도 이길 수 있는 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지금처럼 두세 번 구 의원에 출마해서 낙선한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당 내 경력 훌륭하고 활동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례로만 몰려가는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

이광 : 사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는 이 벽을 뚫었다. 개인의 역량, 지역의 조건 등이 반영됐을 것이다. 지금 얘기한 부분과 연결시켜서 물어 보자면, 이건 목표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는데, 이기중 의원이 이곳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기 : 일단은 당 지지율이 많이 올라야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구 의원 재선까지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도 계속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재선 이후는 다음 진로는 고민해야 한다. 시 의원에 올라가고 싶다. 그렇다면 일단은 지역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역에 잠만 자는 사람에게도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종편 출연이 될 수도 있다(웃음). 또는 지역 문제이면서도 전국적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든지, 이런 게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서울에서 소선거구제를 뚫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반 이상의 유권자들이 정주의식이 없고, 지역정치에도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부분이다.

이광 : 정치인에게 필요한 소질이랄까, 이에 대해 자신을 기준으로 정치를 즐길 줄 아는 관심종자, 성취 지향, 꾸준한 실천, 소통 능력을 꼽은 적이 있다. 이건 보수 진보 좌우를 넘어선 정치인 일반에게 필요한 덕목 같다. 주변에 봐 온 정치인들이 보통 이런 소질을 가지고 있나?

이기 :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반짝했다가 사라져 갔고, 반짝한 정도도 다르다. 작은 당에서 활동하다가 금방 실망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 했다가 사라진 경우도 있다. 정치판은 운도 많이 따르는 영역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소질은 없어도 잘 되는 경우가 꽤 있다.

내 경우를 보면 학생운동 할 때 붙임성, 사교성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공식적 행사가 있으면 다 참석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할 일 피하지 않고 맡은 일 열심히 하다 보니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됐다. 당 활동도 그랬던 것 같다.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 당원 중에서는 지역 당원들을 많이 아는 당원이 됐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에 대한 주변이나 당의 기대도 커졌으며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2008년에 제대한 이후 2010년 선거에 출마한 것도 내가 원해서 한 측면도 물론 있지만 주변의 요구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광 : 지금 말한 소질이나 덕목 이전에 어떤 가치가 있을 법한데. 가치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에서 언급한 소질만 출중하면 좋은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른바 생계형 국회의원 또는 생계형 정치인이 그런 사람들 아닐까. 정치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가?

이기 : 간단한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국민들에게 삶의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 2010년 처음에 출마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즈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나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고 여유가 있어야 마음도 삶에도 여유가 생긴다. 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정치, 삶에 여유를 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 모든 국민이 직업 이외에 취미를 가질 수 있고, 노회찬 의원이 말한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내가 정치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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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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