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수의 헌법 재판 변론기
    “헌법재판소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
    [책소개] 《헌법의 현장에서》(김선수/오월의 봄)
        2018년 08월 12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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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로 쟁취한 1987년 헌법에 의해 출범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입니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철저하게 신뢰한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관입니다.” – 본문에서

    ‘대한민국 대표 노동변호사’의 헌법재판 변론기

    ‘대한민국 대표 노동변호사’ 김선수의 헌법재판 변론기를 묶은 《헌법의 현장에서》가 출간됐다. 김선수 변호사는 지난 30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맡아 판례를 바꾸고 법률을 개정시켰다.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 서울대병원 법정수당 사건 등 통상임금, 대학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 탈락, 콜트·콜텍의 정리해고, 공무원노조 문제 등이 그의 손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건들의 변론은 《노동을 변호하다》(오월의봄, 2014)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 김선수 변호사는 1988년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변호 인생의 첫 발을 떼었다. 대학 재학 중 군복무 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 개선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자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이래 노동변호사로 줄곧 활동해왔다.

    고비마다 거목 같은 조영래 변호사의 존재를 죽비 소리 삼았다고 말하는 그는, 10대 시절 은사가 지어준 ‘여민’이라는 호를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여민(黎民)은 ‘검은 백성’, 즉 노동을 해서 살갗이 검게 그을린 평범한 백성을 가리킨다. 저자는 노동변호사란 바로 이 ‘여민’을 기억하고 늘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노동법이, 나아가 법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인권을 보호해야 하는데 도리어 인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도 하는―를 끌어안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여민’이라는 상징이 그의 좌표가 되어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의 현장에서》에는 그간 김선수 변호사가 맡은 12개의 헌법재판(7건의 공개변론 사건과 5건의 서면심리 사건) 변론기가 정리되어 있다. 이 사건들 중에는 청구인을 대리해 법률이나 공권력 행사의 위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고, 피청구인을 대리해 합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다.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한 것과 ‘공소 제기 후 수사기록 복사 거부 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결정을 한 것이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헌소원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합헌을 주장했는데, 청구인인 현대자동차가 취하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받지는 못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중앙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선거중립 위반 경고조치 취소 사건’, ‘언론관계법 날치기 부작위 권한쟁의 사건’ 등 나머지 사건에서는 모두 김선수 변호사가 원하는 결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소수 의견이 나왔고, 후에 법 개정으로 해결된 것도 있다. ‘전교조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받았지만 후에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해결되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지만 후에 법률 개정과정에서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헌법재판소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파악할 수 있고, 김선수 변호사가 그곳에서 다수 의견에 맞서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국가공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에 묻혀 뜻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았다. 그 사건들을 통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등을 논의하고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비판하는 부분은 날카롭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년 동안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1987년 헌법에 의해 탄생된 헌법재판소가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 강하게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심판 사건 결정의 다수 의견을 그대로 원용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제라도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모양이다.”(전교조 사립학교법 위헌심판 사건)

    “두 번에 걸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한계만 확인했다. 박재승 변호사님은 헌법재판관들의 천박한 인식 태도와 소극적 자세에 대해 한탄했다.”(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권한쟁의심판 사건)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려나? 김이수·이정미 두 재판관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는 날이 그날이 될 텐데 그때는 언제나 오려나?”(전교조 시국선언 관련 사건)

    “헌법재판소가 현대자동차의 재정 상황까지 염려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판결 선고를 지연함으로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지엠 회장이 한국의 고용경직성 내지 통상임금에 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노동법제와 사법제도를 무시하는 천박한 자본가의 입장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대통령과 장관 등 한 나라가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조차 이런 말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도 서글펐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

    “노동사건에서 역사의 진보는 없는가?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은 1996년 결정의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을 거의 답습했다. …… 법이 개정되는 그날까지 위헌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및 필수유지업무제도 조항의 위헌소원 사건)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 최고의 규범적 판단을 하는 사법적 기관이라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그 구성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노동절 제외한 공휴일 규정 위헌확인 소원 사건)

    위와 같은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로 1987년 출범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이 되어야 하며,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고 있고, 더군다나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김선수 변호사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세기적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이를테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이 정당해산제도를 채택하고,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의 하나로 정당해산심판이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활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형식적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소수 정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되기 어려운데도 굳이 강제적으로 소수 정당을 해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구술변론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해 자행되었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졌습니다. …… 이 사건 심판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함으로써 성숙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수 반대파를 배제함으로써 암흑과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 결정권은 이제 아홉 분의 헌법재판관님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국가권력이 소수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그런 야만적인 수준의 국가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소위 국격國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 둘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어떠한 비이성적인 광풍이 몰아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自尊을 위해서입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이 사건 심판청구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제기된 것입니다. …… 넷째, 청구인 즉,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형사적·행정적 대응수단을 통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를 방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 다섯째,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피청구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연대하고 같이 투쟁해온 정당입니다. …… 여섯째,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를 위해서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소수 반대파 정당을 해산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존립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결정을 “세기적 참사”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이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 정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변론하며 비판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금지어禁止語가 된 좋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만약 해산결정이 내려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는 ‘자주, 민주, 통일’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폐기될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곧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되고, 이를 위한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어 정당조차도 해산시킬 정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떳떳하게 그러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최종변론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둘러 해산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에 당선된 그날(12월 19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심판청구 시점부터 계산하면 13개월 정도만”에 모든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결정문에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잘못 적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서둘러 해산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에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는 구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다시 한 번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는가

    김선수 변호사는 에필로그에서 ‘헌법재판소 30년 평가’와 ‘개헌 시 헌법제판제도 개선 방안’을 밝히고 있다. 우선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30년 동안 표현의 자유 신장, 여성의 지위 향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신장 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관습헌법 법리를 동원하여 행정수도 이전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선수 변호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 의견’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여러 요인 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주요 의견이 되지 못한 소수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충실한 소수 의견은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지켜준 희망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1기 헌법재판관이었던 변정수 재판관과 2012년부터 2018년 8월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 의견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정수, 김이수 두 재판관께 크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16건 중 39건(33.6%)18)이 13:0으로 같은 견해를 취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김선수 변호사는 개헌 이루어지면 헌법재판제도가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사항 확대, 현행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헌법재판관의 자격 요건 중 ‘법관 자격’ 삭제, 헌법재판관 모두를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 헌법재판소장 임명 제도 개선, 헌법재판관의 임기와 연임 개선 등이 그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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