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정세와 전교조 운동의 진로
    [기고] 총력투쟁이 아니라 정치가 필요한 시기
        2018년 08월 09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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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투쟁과 관련하여 장문의 기고 글을 전교조 상암고 분회장 하성환 선생이 보내왔다.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관계 설정, 법외노조 철회의 경로와 방안, 전교조 운동의 진로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뚜렷히 밝히는 글이다. 의미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견과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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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정치의 마중물

    법외노조 직권 취소 투쟁 국면에 조성된 교육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직결된다. 통상적인 시각은 문재인 정부를 4·19혁명 직후 7·29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 정부로 보는 관점이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집권한 제2공화국 민주당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자신들은 별다른 노력도 없이 4월 학생혁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집권했음에도 리더십을 상실한 채 분열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성격을 노정한 모습과 결부시킨다. 이른바 전형적인 부르주아 민주정부라는 시각이다.

    5/28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과 우여곡절 끝에 발표된 종합부동산세 정책 등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사례로 거론한다. 그리고 최근 문재인 정부 경제사령탑이 재벌 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구걸(?)하는 모양새로 비칠까봐 조심하는 태도 등도 그렇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했음에도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 그리고 노동계 갑질 횡포 등 불안정하고 때론 야만적인 노동 현실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75m 높이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268일째 고공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된 정부임을 천명했음에도 과연 그 기대를 충족시켰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따라서 이런 시각에선 문재인 정부를 최대한 그리고 전 방위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우리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게 올바른 투쟁전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대단히 교조적인 관점이다. 문재인 정부와 4월 혁명 직후 7·29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 정부와의 공통점은 학생(시민)의 희생과 지지를 딛고 탄생된 정부라는 것 이외엔 없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재확인하였듯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기대는 1년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또한 과거 민주당 정권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국정을 이끌어가는 능동성과 주체성에서 가히 인상적이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 낸 것과 함께 6·12북미정상회담, 급기야 종전선언까지 세기의 명장면을 올해 연출할 가능성에서 특히 그러하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21세기, 마지막 냉전의 고도로 남은 한반도를 전쟁과 갈등, 증오의 대립관계에서 해방시키고 우리 민족을 분단의 질곡에서 구해내는 혁명적 변화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십 년 지속된 적대적인 낡은 질서를 말끔히 청산하고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노래하며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2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자기성찰로 철저히 재무장돼 있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것은 단순한 정치슬로건이 아니다.

    세계사적 대전환의 시기!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운명과 민족의 앞날에 대해 이미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주체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권 당시 한일정부 간 맺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합의를 파기했다.(2018년 1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며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와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며 2015년의 한일 정부의 합의를 “부인할 수 없다”며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파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편집자) 나아가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승화시켰고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모습과 문재인 정부를 같은 부르주아 민주정부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속단이자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경제사조가 휩쓸고 감으로써 황폐화된 현실을 문재인 정부는 외면하지 않았다. 대통령 스스로 지향점이 ‘노동 존중 사회’임을 표방한 것은 그를 반증한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양산과 양극화라는 참담한 노동계 현실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초래한 신자유주의의 폐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 존중 사회’는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자기성찰이자 변혁에의 의지가 담긴 정치슬로건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활동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정세분석은 문재인 정부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이다. 부르주아 민주 정부라는 교조주의적인 성격 규정은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이미 전교조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 그 쓰라린 경험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전교조 등 진보 진영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5년을 보내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날의 과오를 발판 삼아 ‘진보세력의 마중물’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정신이기 때문이고 문재인 정부 참모들조차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보수는 극우냉전세력과 단절한 채 진보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민족의 번영과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하건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진보진영 다수의 정치인들이 의회 진출과 함께 양대 정당의 한 축을 감당할 것임을 확신한다. 2020년 21대 총선이 단순히 기대를 넘어 크게 흥분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온 정의당이 최근 15% 지지로 정당지지도 2위에 올라섰음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극우세력의 몰락과 동시에 정의당의 약진을 우린 보았다. 물론 휴머니즘을 실천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죽음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진솔한 삶이 재조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낮은 자세로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며 민중의 언어로 정치를 했던 노회찬의 삶을 뒤늦게 다수 국민이 공감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즉, 노회찬의 죽음이 가져온 결과라기보다 노회찬의 지나온 진보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제대로 평가된 결과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시대의 지성! 고 리영희 교수의 표현대로 좌우의 날개로 날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길 건너편 전교조 지도부 농성장 모습

    2.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안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장에 대한 정치적 재해석

    그렇다면 고용노동부 장관 직속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이하 개혁위)가 8/1일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2가지 해결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개혁위가 제시한 두 가지 해결방안은 첫째 고용노동부 장관 직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는 것과 둘째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을 조기 삭제하는 방식이다. 개혁위 권고안에 전교조는 크게 고무된 채 쌍수로 환영했다. 오늘로써 청와대 앞 농성 51일째이자 위원장 단식 23일째인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111년 만에 찾아온 극한의 폭염 속에서 위원장과 해직상황에 처해 있는 지도부의 고통은 너무 크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고생하는 열정적인 선생님들의 노고는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럴수록 개혁위 권고안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개혁위 권고안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고용노동부 담당 국장 등 실무진 단위에서 법조문 해석과 그에 따른 단순 법 집행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게다가 고 김영한 청와대수석 수첩에 전교조가 여러 차례 나오듯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이 청와대-주무장관이라는 최고위 핵심 권력층에서 사전 기획된 것임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즉,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대표적인 ‘교육적폐’임을 똑똑히 명문화한 것이다. 나아가 해결방안까지 두 가지를 명기하여 제시했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옴짝달싹할 여지를 주지 않고 반드시 해결하라는 ‘권고 아닌 명령(?)’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법외노조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 주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다. 아니 지혜롭다.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겠다거나 질질 끌면서 전교조를 계속 법외노조 상태로 두겠다는 꼼수가 전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엔 개혁위가 비록 자문기구이지만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자기부정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5년 내내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와 척을 지고 싸우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음으로 개혁위 권고안이 언론에 보도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고용노동부 장관 입장이 발표되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장관 스스로 지난 9개월간의 개혁위 활동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권고안을 충분히 검토해 성실히 이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에 문제가 있음을 공감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하던 처분의 방식으로 행정조치를 취하진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 바로 법령 개정을 통해 전교조 문제, 바로 법외노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의 삭제 권고도 공감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표는 6/20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과 같은 맥락이다. 내용도 똑같다. 특히 과거 국가인권위로부터 위헌소지가 크다며 삭제 권고를 받았던 노조법 시행령이 그렇다. 장관 발표문에는 없지만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 등 관련법령을 고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기존 발표와 같다. 노조법 시행령이야 문재인 정부 스스로 바로 삭제하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낙후된 교원노조 관련법의 경우 국제사회 보편적인 노동현실에 맞춰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협약에 맞게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옳다. 이게 문재인 정부의 태도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표, 즉 청와대의 입장은 ‘기다려라! 반드시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메시지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노조관련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스스로 교육개혁에 대해 전교조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 보편적인 노동현실을 적극 수용해 국내 노동환경을 제도적으로 정비해 나감으로써 명실상부한 노동 존중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표현이자 반대로 교육개혁의 중심세력인 전교조에 휘둘리거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또 다른 의지의 표현이다. 전교조를 대척점이 아니라 우군으로 두되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을 흔들지 못하도록 교육개혁의 중심키를 문재인 정부가 확실히 틀어쥐고 전교조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정치적 해석이 이럴진대 전교조는 6/20 청와대 대변인 발표 때처럼 즉자적으로 반응했다. 전교조에 들씌운 법외노조 문제에 대해 즉각적인 취소 처분을 촉구하면서 장관의 입장을 격렬히 비판했다. 심지어 전교조는 당일 기자회견을 통해 ‘직권 취소를 회피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를 촛불정부에게 부여된 임무의 방기’라고 격하게 성토했다. 박근혜 정권 세월호-국정제 투쟁 당시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았던 피해자인 전교조의 처지에서 볼 때 전교조의 주장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내하면서 1년 이상을 기다려 왔지 않은가!

    노조 관련 법이야 국회 개정절차를 거쳐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간이 걸린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개혁입법 연대 등 여야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를 불신하는 것 같다. 전교조 처지에서 법외노조 행정처분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 개혁위의 권고안처럼 즉각 취소 통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헌적인 노조법 시행령 또한 대통령령으로 즉시 폐기시키면 될 일이다. 왜 바로바로 시정 조치할 수 있는 것조차 기약 없이 차일피일 미루는지 그 태도에 분노하는 것이다. 덧붙여 박근혜 정권 때 법외노조 문제로 해직된 34명 선생님들이 겪는 고통스런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 없음도 시급히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런 사실들이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도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이 지속되는 분명한 이유이다.

    3.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적 · 동반자적 관계 설정의 중요성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전교조의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전교조가 내세우는 투쟁 의제에 적잖이 회의가 듦을 부인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없이 진보운동 내지 진보정당의 성공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은 과거 전교조 운동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전교조가 10만 조합원 꼭짓점을 찍은 시기가 2003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당시 전교조의 정치 위상이나 위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그런지 총력투쟁으로 진행된 2003-2004 네이스 반대 투쟁은 온 나라를 요동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네이스 찬반 논거가 대학 심층면접 구술시험 문제로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총력투쟁의 결과는 반대였다. 네이스 반대투쟁을 겪으면서 조합원이 1만 명 가량이나 이탈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2005-2006 교원평가 반대 투쟁 역시 불리한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연가투쟁 등 해를 넘기는 총력투쟁으로 일관했다. 총력 투쟁의 결과는 상처가 깊고 참담했다. 학생 정보인권을 지켜주려는 전교조의 정당한 저항임에도 전교조와 국민과의 괴리가 심했다. 특히 교원평가반대 투쟁은 국민여론을 거슬러 진행된 탓인지 전교조가 집단이기주의로 내몰리며 초심을 잃었다는 가짜뉴스가 유포되는 빌미까지 제공했다. 당연히 전교조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이 심했다. 당시로선 생소한 주제인 정보인권에 대해 국민적 관심과 의식을 높였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스 반대투쟁은 지도부와 현장이 괴리되는 심각한 결과를 자초했다. 국민 역시 네이스 반대 투쟁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기보다 불안한 눈길을 보냈을 뿐이다. 연가 투쟁 당시 거리 현장에서 선전물을 나눠주며 시민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별로 그다지 관심 밖 사항이었다. 학교 일반 교사들조차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일반 시민대중들 또한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해를 넘기면서 총력투쟁을 했던 것은 객관적 조건을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투쟁 주체인 현장교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한계를 노정했다. 이게 연가투쟁을 강행할 정도로 교육계 중대 사안이고 전교조 투쟁의제로서 적합했는지 아직도 회의적이다. 10만 조합원이라는 거대조직 전교조에 대해 지도부가 자기 과신 내지 주관적 판단을 조급히 내렸던 것은 아닌가 되묻고 싶다.

    2005-2006 교원평가 반대투쟁 과정은 전교조 스스로 고립돼 가는 과정이었다. 2003-2004 네이스 반대 투쟁이 지도부와 현장 대중교사와의 괴리를 촉발시켰다면 2005-2006 교원평가 반대투쟁은 국민 대중과 괴리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89년 전교조 창립 당시 촌지거부운동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음에도 수십 년 학교사회는 촌지가 횡행했고 비리가 온존했다. 더구나 폭력교사, 성적조작교사, 성추행교사도 온존했다. 그런 현실을 국민 다수는 학교교육을 거치면서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원평가를 통해서라도 부적격 교사를 교단에서 퇴출시키고자 하는 소박한 열망이 국민들 가슴 속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전교조의 교원평가반대 투쟁은 국민의 소박한 열망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 평가 요소의 비교육적인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켜 교원평가 전체를 부정하는 너무 경직된 전술이었다. 당연히 국민 여론은 싸늘했다. 교원평가 반대 투쟁이 시작되기 전 여론 조사에서도 30%가 조금 넘는 국민만이 교원평가 반대투쟁에 찬성하였으니까.

    교원평가라는 대전제를 받아들이되 각론에서 평가요소의 비교육적인 부분을 가지고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투쟁했어야 했다. 교원평가를 맨 먼저 노무현 정부에서 외쳤지만 전교조가 전면거부로 대응하기보다 교원평가 투쟁 국면을 주도했어야 옳았다. 기울어진 여론지형에서 정부와 전면전을 펼칠 게 아니었다. 당시 여론 지형을 생각하면서 여론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았어야 했다. 교원평가를 받아들여 촌지뇌물수수교사, 성적조작교사, 성폭력범죄교사, 폭력교사 등 부적격교사를 학교현장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데 전교조가 최선봉에 서서 교원평가 정국을 강력히 주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여론의 우위를 점한 뒤에 전교조는 교원평가의 세부적인 평가요소에서 노무현 정부와 맞짱 뜰 기세로 맞서야 했다.

    당시 전반적인 분위기도 기업과 공공부문 등 각 분야에서 평가체제가 도입돼가던 시기였다. 그걸 감안하면 교원평가 반대투쟁은 여론을 등진 채 스스로 불 섶에 뛰어든 투쟁이었다. 교사대중의 지지와 85,000명이라는 조합원 수 일시 증가라는 고무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국민 일반으로부터 고립돼 가는 투쟁을 낳고 말았다. 전교조가 초심을 잃지 않았고 창립 초기 순수한 열정과 변혁에 대한 의지로 충만했음에도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투쟁이었다. 여전히 학교현장에는 촌지뇌물수수교사가 존재했고 성적조작교사, 폭력교사, 성추행교사가 온존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전략적으로 좀 더 대범하게 접근했어야 했고 전술적으로도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은 참으로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맞서고 있는 오늘날 전교조는 법외노조 문제와 해직교사 문제 해결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보였던 대결적 자세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교조 스스로 문재인 정부를 대척점으로 규정하고 남은 4년 동안 투쟁으로 일관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게 할 소명을 안고 등장한 정권이다. 법과 제도를 완비함으로써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함으로써 다음 단계 복지국가의 토대를 구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4년 동안 시민적 자유권이 확립되고 선거법이 개정되며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지향할 것이다. 그리하여 명실상부한 민주적 질서와 정치・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한 정치 환경을 토대로 진보 정치가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고 진보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으로서 전교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통해 이명박근혜 정권과 완전히 단절함으로써 진보의 마중물로 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게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시대의 과제이자 소명이다. 그 부분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정서이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와 협력적 ·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전교조 나아가 진보세력의 성공으로 귀결될 것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기다릴 건 기다리고 협력할 건 협력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견인해 나가야 옳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초장부터 전교조 자신의 요구부터 줄기차게 주장할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협력적 ·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나갔어야 맞다. 적어도 올해가 끝날 때까지는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며 투쟁 국면을 형성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과부하가 걸린 문재인 정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고 소모적이기까지 하다. 2018년 교육정세에서 문재인 정부와 전면적 투쟁으로 난제를 돌파하기보다 교류와 소통, 신뢰와 협력의 정치가 절실한 대화 국면이 전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정치지형 상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일부는 극우적이며 진보는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 역사 현실, 정치 지형을 이해한다면 진보의 싹을 틔우고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2019년으로 넘어가면 총선 정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 때 가서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현실적 성과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2020년 여대야소 국회는 희망사항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21대 국회 정치지형을 여대야소로 전환시켰을 때 문재인 정부도 성공하고 진보정치의 마중물 정부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거듭 주장하건대 지금은 전교조가 연가 등 총력투쟁으로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투쟁 국면이 아니다. 각기 운동 단체들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투쟁으로 돌파하기보다 아직 강고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할 시기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1년 3개월이 지나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육개혁의 중심세력! 전교조 역시 지금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적 관계를 복원하려는 ‘전교조의 정치’가 절실한 대화국면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법외노조 문제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해결하자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사법부 최고 의결기구인 대법관 회의에서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8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3명이 다시 물갈이 되면서 김선수 노동인권변호사 등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대법관이 8/2자로 대법관회의 과반을 넘어섰다.

    더구나 지난 6.13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12석 가운데 11석을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독차지했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군소정당인 민주평화당은 자신의 정치적 힘이랄까 당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의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 길이 1-2% 지지로 버티고 있는 민주평화당이 2020년 총선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과 제도의 정비는 시대의 소명이자 개혁입법연대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함께 교원노조법 개정을 발의한 상황이다. 따라서 정의당(5석) – 민중당(1석) – 민주당(130석) – 민주평화당(14석)으로도 국회 과반을 넘어선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입법이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이 있다고 하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현실, 그리고 2020년 총선 정국을 염두에 둘 때 개혁입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요컨대 대법관 회의나 국회 의석수에서 전교조는 유리한 지형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2심에서 승소했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뒤집혔다. 그 과정에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의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정황을 담은 문건들이 무려 17건이나 드러난 상황이다. 따라서 법외노조 관련 재판은 사법적폐가 청산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협약에 부응하는 교원노조법과 노동법 관련 조항들이 하반기 국회에서 개정될 가능성이 짙다. 문재인 정부가 누누이 언급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인 것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2018년 올해가 가기 전에 해결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 전교조가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짓고 어떤 모습으로 협력적 ·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지 늦었지만 고민해야 할 것이다.

    4. 전교조 운동의 진로

    그렇다면 전교조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정치를 해야 한다. 대화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면서 총력투쟁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것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다양하게 대화 통로를 확보하여 청와대와 소통하고 교육부와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개혁, 사회개혁에 대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힘이 되어 주고 부족한 부분을 견인해 내야 한다. 우선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의 사령탑인 김상곤 교육부장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비판적으로 견인해 내야 한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 말하자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추진 과정에서 최고위층 정치 관료들만 검찰에 고발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다. 이 부분을 짚고 비판하면서 강력하게 교육계 적폐 청산을 외침으로써 문재인 정부를 견인해 내고 힘을 실어줬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 최고위층 정치 관료들 이외에 앞장서서 국정제 교과서 실무를 담당했던 교육 관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 교육 관료들은 출세욕에 눈 먼 자들로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협력하고 역사를 왜곡시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그들 국정제 관련 고위, 중간 교육 관료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전교조가 늦었지만 적극적으로 요구할 일이다.

    왜냐하면 승진 욕구에 눈 먼 교육 관료들은 언제든 반교육적인 정책을 쏟아내어 교육현장을 고통에 빠뜨릴 것이기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육정책을 학교현장에 집행을 강요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교육개혁의 최대의 걸림돌임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최근 평교사도 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에서 00초, 00중학교 사태는 그런 현실을 반증한다. 중간 교육 관료들이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도입 취지를 현장에서 흔들어 버림으로써 교육개혁의 최대 방해 요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단순 실수나 과오는 징계 대상이 아닐 수 있지만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의 교육정책 철학에 반기를 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교육개혁의 사령탑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의 지시와 영이 서지 않는다면 교육개혁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의 사령탑인 김상곤 교육부장관과 정기적인 교류와 대화 채널을 가동시켜야 한다. 비공식적으로라도 가칭 교육정책협의회라는 기구를 가동시켜 정기적으로 자주 회동하고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의 밑그림을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의 든든한 싱크탱크로, 교육개혁의 브레인으로 적극 결합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대화를 통해 기구 구성에 협의해야 한다. 전교조가 교육개혁의 핵심참모가 되어야 한다.

    먼발치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나 기자회견을 쏟아내며 할 일 다 했다고 선을 그을 게 아니다. 문재인 촛불시민혁명 정부의 출범은 전교조에게 상상 이상으로 유리한 정치·교육 환경을 제공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 교육부 관료들에게 교육개혁을 맡기고 뒷짐질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교육개혁의 사령탑인 김상곤 교육부장관과 자주 만나 적극적 협력관계, 교육개혁의 동반자적 관계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교조 교사 출신 10명을 포함하는 진보교육감 14명과 공동으로 협력적 협의체를 구성해 적극 가동시켜야 한다. 교육개혁은 단지 교육개혁 혼자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전 방위적으로 정부 간 협의체 구성으로 나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교육개혁은 반드시 사회개혁을 수반하는 상황에서 그 개혁의 실효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전 국민적 관심사인 대입제도 개편안에 전교조가 주체로 나서야 한다. 수시-정시 비율 논쟁, 학생부 전형 확대-축소 논쟁, 수능 절대평가-상대평가 논쟁 등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 전교조는 담론을 주도하고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교육개혁의 핵심세력임을 인정받도록 혼신을 다해야 한다. 교육의 본령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공정성을 훼손시키지 않을 것인가 참으로 지난한 난제 중에 난제이지만 전교조가 피해갈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정의의 토대가 취약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공정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타당한 입시 제도를 창안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교조 30년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얽히고설킨 교육난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교육문제를 국가사회 차원의 의제로 설정하고 시민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명색이 교육개혁의 핵심단체인 전교조가 대입제도 개편이라는 국민적 관심사에서 변방으로 위치 지워지거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없는 듯 존재한다면 교육운동, 나아가 교육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존립할 이유가 사라진다. 현행 학생부 종합전형의 문제점과 함께 수능시험이 공정한 입시제도임에도 평가의 타당도가 낮은 시험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공유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입시제도 개혁의 선봉에 서서 교육개혁의 견인차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전교조는 그저 교사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는 고만고만한 노동조합으로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전교조가 더욱더 전 국민적 관심사인 대입제도 개편을 포함한 대입전형제도의 문제점 나아가 교육제도 전반에 대해 담론을 주도하고 개혁을 실천하는 핵심세력으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

    또 다른 사례로 고교학점제의 경우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 때 내세운 대표적인 교육개혁정책의 하나이다. 물론 전교조는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규정했고 정책 발표 초기부터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그러나 전교조는 이 지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교학점제 시행을 이유로 문재인 정부 초반부터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교원평가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고교학점제를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면 부정하거나 반대로 일관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고교학점제를 계기로 전교조가 교육개혁의 담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이상적인 관념에 치우친 정책인 만큼 전교조는 고교학점제 정책 시행을 발판 삼아 교사 법정교원수 확보 및 교사 증원을 정부에 촉구할 수 있다. 그러면 대국민 여론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직된 고용시장에 숨통을 틔울 수 있고 한국 사회가 적어도 교육부문에서 복지사회로 전진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초등 돌봄 교실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방과후 학교를 내실 있게 혁명적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아이들에겐 꿈과 끼를, 그리고 학부모에겐 사교육비 부담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1000명 이상 대기업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학교마다 상설 내지 병설유치원을 설립하여 복지 정책을 공격적으로 강화할 것을 전교조가 촉구할 수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과도 맥락이 닿는 정책이다. 복지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내수를 진작시키고 국내수요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학교마다 전문상담교사 5인 배치나 교육행정사 증원도 같은 맥락이다.

    케인즈 경제학에서처럼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주체가 되어 교육복지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저절로 유효수요가 창출될 것이고 소득증대는 소비지출로 이어져 내수경기가 활성화될 공산이 크다. 재벌 등 수출 주도 성장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고 경제는 자생적으로 선순환할 것이다. 나아가 초중고교 3-4개 학교 학생들만 묶어서 그 학생들만 전용할 수 있는 ‘청소년 문화회관’을 전국적으로 건립하는 것이다. ‘청소년 문화회관’은 지상 20층 지하 4층 규모로 짓되 독서실, 그룹 스터디룸, 소회의실, 피트니스 센터, 음악감상실, 북카페 등 그 지역 청소년의 희망사항을 수렴하여 프로그램을 정착시킨다면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만일 ‘청소년 문화회관’이 전국적으로 건립된다면 전국에 11,000개가 넘는 학교가 분포돼 있는 만큼 단순 계산해도 3천군데 이상에서 건설경기 또한 되살아날 것이다. 나아가 무엇보다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인 나라에서 청소년이 행복한 복지국가로 비상할 수 있다. 더구나 ‘청소년 문화회관’ 운영진과 강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이는 두 마리 나아가 세 마리, 네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는 실효성 높은 교육복지정책이자 경제정책이 될 수 있다. 올해 처음으로 조세부담률이 20%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오늘 접했다. 그래도 OECD 평균 담세율 25%에 미치질 못한다. 증세를 통한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할 책무가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국민을 진정성 있게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되 북유럽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교조는 민주집중제 페기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여 현장 조직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전교조가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조직’으로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 그러할 때 현장 교사들은 교육개혁의 주체 세력으로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그 전제 아래에서 전교조가 손을 내밀 때 현장 교사들은 신이 나서 지도부를 따를 것이다. 캠페인이든 항의집회든 연가 투쟁이든 총력투쟁이든 지도부와 밀착돼 일체를 이룰 때 자신의 일처럼 투쟁의 현장에 앞장설 것이다.

    거듭 요구하지만 전교조의 뿌리인 분회 조직이 시들고 있고 이미 상당 부분 유명무실한 상태로 이름만 남은 조직들이 허다하다. 전교조 분회 가운데 동호인 모임 정도의 회합으로 그치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런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위에서 ‘교육대개혁’을 진정어린 목소리로 절규해도 현장교사들이 호응할 수가 없다. 일상적인 학내민주화 투쟁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어떻게 학교변화의 주체로 그리고 교육개혁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겠는가?

    전교조는 다른 NGO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투쟁성과 열정, 그리고 튼튼한 재정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개혁세력으로서 존재감이 미약하다. 전교조는 1년 예산이 최소 100억에 육박하는 거대조직이다. 시민운동단체 가운데 가장 활동력과 영향력이 높은 참여연대 1년 예산 25억에 비하면 4배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더구나 합법노조 당시엔 사무실 임대료와 전임자 임금까지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아왔던 점을 생각하면 예산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높은 투쟁성과 열정이 시들지 않고 학교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전교조는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시급히 전교조 조직 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시킴으로써 학교 현장에 민주주의 뿌리박기를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유명무실한 전교조 대의체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야 하고 전교조 조직을 본부-지부-지회-분회로 계층화된 관료조직으로 운영할 게 아니라 본부-분회로 슬림화해야 한다. 그러할 때 지도부와 학교현장이 소통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지부, 지회는 분회활동 지원조직으로 기능하도록 그 성격과 역할을 바꾸면 된다. 국가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진행하듯이 학교현장에서 단체교섭이 진행되도록 지부, 지회의 지원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학교현장 조직이 살아나고 조합원들이 전교조에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 단체교섭은 학교현장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이자 교사대중으로 하여금 전교조의 역할과 위상을 일상적으로 체득하게 함으로써 조합원의 저변을 확대시킬 수 있다.

    중요한 교육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분회장 총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투쟁으로 나아갈지 대화로 나아갈지 전교조 운동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무엇보다 운동 결정 과정에서 조합원 간 투쟁의 의의를 공유하고 저변을 확산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로 전교조 투쟁의 거대한 동력으로 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가투쟁 등 총력 투쟁의 경우 반드시 전체 조합원 교사들의 찬반을 묻는 총투표절차를 거치도록 못을 박아야 한다. 나아가 모든 투쟁의제와 투쟁 전략·전술 운용에서 조합원들의 총의를 구하고 집단적 지혜를 모으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할 때 전교조는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고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조직’으로 한국사회 변화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다.

    필자소개
    전교조 상암고 분회장, <진실과 거짓, 인물 한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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