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영적 보물을 나눌 산타클로스 기대
    2018년 08월 09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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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한국축구팬들의 잠을 설치게 한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프랑스의 우승으로 막이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경기는 다시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것보다 더 큰 아쉬움은 매스컴이 축구중계에만 매달렸지 러시아의 문화예술과 종교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쉬움에 인터넷으로 러시아정교회의 성당들을 둘러보니 양파모양의 대성당 돔들은 독특하게 아름다웠고 내부도 대단했습니다. 러시아 민중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지만 정교회 대성당들은 위대한 건축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푸시킨 등 헤아릴 수 없는 문화예술의 대가들이 즐비한데 그리스도교(러시아정교회)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정통고백(정통신앙고백)의 기초에 서 있다고 하여 ‘orthodox’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하나로 근동과 슬라브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정교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하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교세가 커서 약 2억 5천만명 이상의 교우들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교황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통치권자나 기구는 없고, 콘스탄티노플리스 세계총대주교가 동등한 대주교 안에서 명예상 수위권을 행사합니다. 정교회는 국가별이나 민족별로 체제가 갖추어져 있고 각 교회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인정하는 느슨한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전례적인 위엄을 갖춘 예배의식과 성화상 등 각종 상징물들입니다. 이콘(성화상)을 ‘그림으로 된 말씀’으로 공경하고 있으며 결혼한 사람도 성직자가 될 수 있지만 주교직은 독신 사제 중에서만 선출합니다.

1054년 하나의 교회에서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가 상호 파문하여 분열하였습니다. 신학적인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더 컸는데 교류는 계속되다가, 실제적인 분열의 계기는 1204년의 제4차 십자군 원정이었습니다. 로마교회 소속 군대가 정교국가에서 방화를 저지르고 정교회 성당의 제단장식, 십자가 성상, 성인들의 성물까지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평신도들이 격렬하게 로마교회를 거부하게 되었고 마침내 1453년 비잔틴 제국 패망하여 오스만투르크 치하로 넘어가면서 영구적으로 동·서 교회로 나뉘었습니다. 하지만 정교회는 오스만투르크 치하 500년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동유럽 슬라브족을 복음화하면서 슬라브 정교회들을 통해 신앙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정교회는 러시아정교회의 선교로 시작되었습니다. 1897년 당시 러시아공사 볼랴노프스키가 사제 파송을 본국에 요청했고, 3년 후 1900년 1월에 흐리산토스 쉣트콥스키 수도대사제가 들어와 예배를 인도하였고, 입국 3년 만에 고종 황제의 허락으로 서울 정동에 니콜라스 성인에게 봉헌된 소성당을 설립하였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인들을 출국시키는 바람에 흐리산토스 신부와 그를 돕던 러시아들이 돌아가서 작은 정교회 공동체는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1906년에 수도대사제가 파송되었지만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정교회는 심하게 박해를 받아 양국이 교류할 수 없게 됩니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는 그리스정교회의 안드레아스 할끼오뿔로스 수사 신부를 파견하여 한국정교회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1956년 뉴질랜드 대교구에 속하게 되었고, 1968년에 마포구에 니콜라스 성당을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2004년 4월에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주교를 대교구장으로 하는 대교구청이 설립되었고, 2008년 5월 27일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착좌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현재 전국에 열개 성당과 두 수도원이 있습니다.

동방정교회는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콘스탄티노플 등의 정교회 인사들이 참석하였는데 그 이전 1927년에는 신앙과 직제 컨퍼런스에도 참여했습니다. 오늘날 정교회는 WCC에서 전통신앙을 보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정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의 회원으로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을 높이는 활동에 적극 동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 대주교가 교회협 회장으로서 국정농단 세력을 물리치고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겸손하고 사려 깊은 조성암 대주교께서 2013년, 교회협 교육훈련원장이던 저에게 정교회 수도운동의 메카인 그리스 아토스성산 수도원에 가고 싶으면 도와주겠다고 하여 지금도 그곳에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림=이근복

우여곡절 끝에 마포구 아현동에 자리 잡은 비잔틴 양식의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은 러시아 대성당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소박하고 우아합니다. 이런 소박함은 가난과 나눔을 강조한 정교회 교부들의 영성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거봉으로 여겨지는 니싸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 희망의 관리자입니다. 의로운 자에게는 문이 열리고, 악한 자와 이기적인 자에게는 그 문이 닫히는 하늘왕국의 수문장입니다. 그들은 비록 언제나 침묵하고 있지만, 두려운 자요, 열렬한 변호자입니다. 심판관께서 그들을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부와 가난』, 정교회출판사, P. 210)

“자비와 선행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다. 그것들은 그 사람을 신화시키고 선을 닮아가게 하며, 마침내 원초적이고 영원하시며 모든 지성을 초월하시는 존재자의 형상이 되게 해줍니다.”(『부와 가난』, 정교회출판사, P 214)

저는 2012년 기독교사상에 『동방정교회 이야기』(박찬희 저, 신앙과지성사)에 대하여 서평을 쓰면서 정교회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인천 성 바울로 성당(주임사제/ 나창규 대신부)의 예배에 참석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후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성탄절이면 늘 등장하는 산타클로스는 비록 코카콜라 자본에 의해 너무 상업화되었지만 그 본래의 전통은 4세기경 터키 남서부의 미라 정교회의 주교였던 성인 니콜라스(Saint Nicholas)에게서 유래되었습니다. 성 니콜라스는 생전에 어린이들을 위해 남몰래 선행을 많이 베풀어 어린이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이 시대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적 보물을 풍성히 나누어주길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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