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부서에 앉아 집회하는 조합원들 감시
        2006년 05월 04일 1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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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너미오브스테이트’나 ‘트루먼쇼’처럼 회사가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최첨단 CCTV로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인천 동구에서 굴삭기를 만드는 두산인프라코아(옛 대우종합기계)는 최근 32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정문 경비실과 담장 곳곳에 최첨단 회전식 CCTV를 설치해 정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물론 회사 안에서 돌아다니거나 집회하는 노동자들을 정문 경비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감시하고 있다.

       
     
    ▲ 경주 광진상공 회사가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감시카메라 ⓒ금속노조
     

    회사가 설치한 CCTV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SCC-C4203A라는 제품이다. 이 감시카메라는 디지틀 카메라로 220배의 줌이 되어 있고, 야간에도 대낮같은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제품설명서에는 ▲주야간을 자유롭게 고화질로 감시하고자 하는 장소 ▲줌기능으로 확대촬영기능을 가지는 최고의 감시기능이 필요한 곳 등에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회사의 감시 벗어나 집회할 수 있는 장소 없어

    두산인프라코아 조합원들은 주로 정문 앞 ‘민주광장’이나 잔디운동장에서 집회를 한다. 지난 4월 7일 금속노조 인천지부는 정문 앞에서 ‘중앙교섭 합의사항 이행과 중앙교섭 참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정문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두산인프라코아지회 진기석 부지회장은 "회전이 되는 카메라이기 때문에 정문 밖이든 안이든 카메라에 다 잡힌다"고 말했다.

    즉, 이날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얼굴이 모두 회사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 회사는 3층에 있는 노무팀 사무실을 통해 잔디운동장에서 하는 집회도 감시하고 있다. 이제 노동조합이 회사의 감시를 벗어나 집회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 회사는 중앙 정문경비실 안에 32대의 CCTV 화면을 통해 회사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있다. 정문 앞을 지나던 조합원들이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조합원들은 "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회사는 경비실 모니터를 장막으로 가려놓고 있다. 지회 신승우 조합원은 "회사 울타리 쪽으로도 다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니면 누가 어디를 이동하는지 다 감시가 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 "감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가 절감이 목적"

    회사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서 경비노동자 11명을 줄였다. 회사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조합원들을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에서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노동조합에 설명했다.

    두산인프라코아 김상함 노사관리팀장은 "직원들이 일하는 걸 감시하는 건 전혀 없고, 경비인력을 축소하면서 원가절감 차원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광장에서 집회하는 게 다 찍히지 않느냐고 묻자 "공장 안에서 집회하는 사례는 1년에 한두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회사 말처럼 라인 안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장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가 고정식뿐만 아니라 회전식 카메라도 있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면 언제든지 조합원들을 촬영할 수 있다. 또 두산중공업에 확인한 결과 두산중공업에는 정문과 중문에 2대가 설치되어 있다. 두산중공업지회 박정일 조직부장은 "예전에 공장 안에 설치하려고 했는데 대의원들이 이를 막았고 지금 감시카메라는 정문과 중문에 설치되어 있는 2대가 전부"라고 말했다.

    경주 광진상공도 감시카메라 2대 설치

    경주에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광장상공도 지난 4월 10일 노동조합 몰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작은 공장이기 때문에 카메라 2대면 공장을 출입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감시할 수 있다. 노조는 5월 3일 노사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철거할 것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재산권 차원이라며 철거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김태완 사무국장은 "하나는 정문, 하나는 정문 앞 공터에 설치했는데, 주로 조합원들이 집회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장동식 광진상공 부지회장은 "회사에서 철거하지 않겠다고 하면 지회에서 강제로라도 철거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진산업회 감시카메라 12대 철거·대표이사 사과

    이에 반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감사카메라를 철거한 회사도 있다. 경주의 전진산업은 지난 4월 17일 지회 간부들이 서울 출장을 간 사이에 12대의 감시카메라를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문에 부착했고, 총 15대를 설치하려고 했다. 이를 발견한 장준호 지회장은 관리부장한테 전화를 걸어 "감시카메라를 떼지 않으면 다 부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회사는 대표이사와 면담하자고 제안했으나 지회는 "당장 철거시키지 않으면 준법투쟁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당황한 회사는 4월 20일 카메라를 모두 철거했다. 지회는 대표이사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담화문을 공장에 붙일 것을 요구했고, 잔업과 특근 거부를 준비해나가자 21일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발표됐다. 장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원체 분개를 했고, 우리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처음에 막아내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어"

       
    ▲ 국가안보국이 CCTV와 위성 등 최첨단장비를 동원해 한 개인을 추적하고 감사하는 영화 에너미오브스테이트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이황현아 연구원은 "감시문제가 점점 확산돼 이제는 CCTV를 넘어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까지 나아가고 있다"며 "금속에서는 CCTV가 여전히 위력적이고 노동조합 무력화에 악용하고 있는데 철거싸움부터 시작해서 막아내는 게 1순위"라고 말했다. 그는 "감시시스템이 한 번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고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저항하다 그것을 없애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 통제하게 되는 감시의 내면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조활동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도 "부당노동행위나 집회시위의 자유를 걸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사용자들은 외부인의 기밀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것"이라며 "법률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있지만 노동조합이 싸워서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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