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反)정치, 정치혐오와의 투쟁
    [노회찬의 시간 돌아보기⓵] 승자독식 패자전몰
        2018년 08월 07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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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조지오웰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일갈했듯 노회찬 의원의 위대한 업적은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할 평범한 이웃들에게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손을 내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망국적 지역주의와 싸웠던 것처럼 노회찬의 일생은 반(反)정치의식을 조장하는 모든 정치적인 것들과의 투쟁이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는 ‘근로자는 산업현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언술도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반정치의식의 출발이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정치를 본업으로 하는 특별한 계층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정치와 무관해야 할’ 박정희, 전두환 군부가 쿠데타 직후 개악한 노동악법도 노동조합 정치활동 금지와 제3자 개입금지 등 일하는 사람들과 정치의 분리, 사회연대의 범죄화가 아니었나. 끝없이 늘어선 조문 행렬은 노회찬 의원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오열했다.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 노회찬이 되자고 했기에 감히 노회찬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했던가.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는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양당독점 정당체제(party system)를 닮아간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 노동존중사회,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면 앞선 복지국가의 공통된 정당체제는 온건다당제를 기본으로 한다. 온건다당제를 유지하는 선거제도는 ‘민심 그대로를 의석에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1차에서는 선택하고 2차에서는 배제하는’ 결선투표제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혁은 단순히 소수정당이 살아남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결 과제가 된다.

    그런데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승자‘들’의 동의 없이 개정이 불가능하다. 승자들은 현행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인 큰 정당만 아니라 정치혐오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정치’를 하려는 시장권력과 그에 종속된 극우언론이다.

    기득권 카르텔이 유포하는 반정치의식은 조직적으로 자신들 치부를 간헐적으로 들어내면서 우리 삶과 정치를 멀리하게 만든다. 과거 기득권세력이었던 보수정당은 “깜도 안 되는 일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일종의 약속 대련과 같은) 부패한 모습을 주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4류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 마치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당신들도 더러워질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겁박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출혈이 발생하고 선거 때만 되면 물갈이 비율 운운하지만 결국 사람이 바뀐다 해도 양당체제라는 정당체제는 굳건하게 유지된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공약과 개헌안에도 포함됐던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는 이제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결단에 달려있다(지난 칼럼에서 살펴봤듯이 비례대표제는 20세기 초반 노동자 투표권 확대와 좌파정당 대중화 성공에 놀란 보수당의 생존전략으로 도입된 경우도 있듯이 자유한국당에게 선거제도 개혁은 선택의 문제를 넘었다. 관련 글 링크).

    그런데 민주당은 왜 선거제도 개혁에 유보적인가? 지난 정권 이른바 반MB, 반박 야권연대를 추진할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 일각에서는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를 주장한 사람부터 자기 지역구를 양보하라는 동료의원들의 요구에 누구도 말을 못 꺼냈다고 토로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지역구 의석 일부(독일은 지역구와 비례의석 비율이 1:1이고 일본만 하더라도 2:1이다)를 비례의석에 양보하거나 전체 의원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지금은 여당인데 ‘여권연대’는 더욱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거 때만 되면 진보정당이 민주당 내부의 왼쪽 블럭을 형성하라는 ‘빅텐트’론이 반복될 것이고, 이는 온건다당제로의 정당체제 개혁이 아닌 양당체제를 고착화시키는 예기치 않은(또는 분명히 예견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올바른 대안은 전체 의석수를 늘리는 방안이지만 ‘놀고먹는 세금도둑 자리만 늘린다’는 극우언론의 반정치 공세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대로만 가면 총선 압승은 따 놓은 당상일 것 같은데 굳이 증세 논쟁과 같은 악재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기야 한 때 국회의원 정수를 200석으로 줄이는 것이 ‘새정치’로 둔갑되는 비극 같은 희극도 있었으니 민주당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노회찬의 마지막 법안이 되어버린 특활비 폐지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전략가 노회찬의 승부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활비 폐지와 선거제도 개혁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 다음 시간에 알아본다.

    필자소개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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