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국회에서 상영할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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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4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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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게으른 나는 며칠 만에 메일을 정리하다가 검색어 1위에 ‘박계동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검색어를 넣어서 돌아다녀보니 벌써 삭제된 곳이 많았다. 머, 그래봐야 뻔한 일이다. 좀 귀찮기는 했지만 P2P로 동영상을 내려 받아 보았다.

내가 본 버전은 49초 분량의 동영상이었고, 그런 다음 그 뒤에는 박계동 의원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붙어있었다. 그 동영상의 소개에 의하면 어떤 행사에서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다고 (본인의 말에 의하면 ‘무시했다’고) 뒷풀이 자리에서 맥주를 상대에게 붓기도 하는 등 자기의 직업, 사회적 위치, 이른바 나이 값, 여기에 더해 상식 등등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공식 행사에서 다채로운 액션 장면을 연출한 분이었다.

미성년 관람 불가 내용과 카메라의 각도

이 분의 의원 활동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보러 다녀할 시사회가 많기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의 의정활동에까지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 여러 행사에서 심상치 않은 돌출행동을 자제하지 않는 과감한 액션, 솔직한 의사표명,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주관에 찬 결단들이 돋보이는지라 그 동영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동영상은 상영시간은 매우 짧지만 보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기에 그 내용에서나 형식에서 손색이 없었다. 우선 그 내용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18금’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남자가 한 여자 왼쪽에 앉아서 오른 팔로 그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다음 그 오른 손으로 여자의 옷 단추를 풀어서 그 안에 힘겹게 넣고 있는 자세였다.

물론 왼손은 여자의 다른 곳을 만지고 있었는데 내가 본 버전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 생각에 좀 더 선명한 버전이라 할지라도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화상의 선명도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의 각도 문제 때문이다.

1.33대 1로 촬영된 프레임, 맞은 편 사람 아쉽게도 짤려나가

이 동영상은 여자의 어깨에 팔을 이미 올려놓은 데서 시작해서 남자의 얼굴이 여자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간 다음, (16초에서 23초) 그러니까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 유지하는 거리보다 더 안까지 들어간 다음 여자의 몸 가까이서 여자 얼굴 아래쪽에 자기 얼굴을 거의 닿을 정도로 밀착시킨 다음 그 아래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때 (25초) 여자가 고개를 들면서 살짝 밀쳐내자 (남자의 몸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다소 물러난 다음 두 손을 들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 (28초에서 39초)

그런데 그 상대방은 옆에 앉은 여자가 아니라 맞은편을 향해서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맞은편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이런 행동은 맞은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상대방이 ‘빤히’ 보고 있을 것이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이 분은 그런 주변 여건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몸소 보여주었다. 그러나 1.33대 1로 촬영된 프레임에서 ‘아쉽게도’ 맞은편은 오른쪽에서 잘려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곧 이어 다시 (40초) 여자의 어깨에 팔을 얹어놓은 다음 여자의 옷 속으로 손이 들어간 대목에서 끝난다.

전모를 아는 네 사람

그러므로 이 장면 이전에 이미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는 뜻이고, 이 장면이 끝난 다음에도 여자의 옷 속에 손이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손이 얼마나 옷 안에 머물렀는지에 대해서는 네 사람, 즉 이 남자와 여자, 틀림없이 있었을 맞은편에 앉은 사람, (미치지 않은 다음에는 맞은편에 아무도 없는데 그 쪽을 향해서 두 팔을 흔들어가면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의 전체 분량을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형식에 대해서. 이 카메라는 무인 촬영이 되었을 것이다. 즉 몰래 카메라라는 뜻이다. 두 사람 모두 이 행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카메라를 향해서 눈길을 준 적이 없다. 이 말은 남자도 알지 못했지만 여자도 몰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카메라의 기종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앞의 카메라 부분만 소형 뷰(View)를 사용하고 케이블을 이용해서 신호를 받는 형식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촬영이 되고 있다는 신호가 보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이 어두운 상태이기 때문에 신호가 눈에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롱 테이크 찍기’, 음란성보다 진위에 관심 많다는 의미

두 번째. 이 장면은 롱 테이크로 찍혔다. 즉 한 자리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다음(fixed) 편집 없이 실시간 촬영으로 (지루한 부분을 편집하거나 일부 손대지 않고) 이루어져 있다. 이 말 뜻은 현재의 동영상 촬영본은 이 행위의 음란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행위의 진위 여부에 더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서로 다른 장면을 이어붙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장소에서 연속적인 시간에 동일한 인물이 한 행위를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뜻이다.

한 가지 더. 이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이 장소의 채광상태를 잘 알고 있다. 실내인데다가 이 장소에서 별도의 조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빛으로부터의) 노출 정도를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게다가 이 남자와 여자의 뒤편, 즉 프레임의 왼편에서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 결정이 잘못되면 일종의 역광 현상이 일어나 남자의 얼굴이 모두 ‘날아가거나’ 반대로 너무 어두워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노출의 정도는 보기 좋은 상태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제법 미세한 동작까지도 카메라에 잘 잡혀있다. 손의 동작을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행위보다 얼굴 중시, 위험 무릅쓴 로우 앵글

그 다음 카메라의 위치. 이 카메라를 놓은 사람은 일반적인 이런 몰래 카메라들이 갖는 행위에 대한 관심보다 얼굴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카메라는 로우 앵글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 구도는 행위보다는 얼굴을 찍기에 좋은 각도이다.

대부분의 몰래 카메라는 행위를 하는 도중 이 행위의 인물이 카메라와 눈이 마주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모든 카메라는 자기가 찍는 방향으로 구도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긋기 때문이다. 어떤 카메라도 뷰 파인더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상향을 찍거나 하향을 찍을 수는 없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구도를 인물의 얼굴이 아니라 몸 쪽으로 향하게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카메라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로우 앵글로 찍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이 장소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이미 숙지한 사람이다. 혹은 이미 이 전에 이 장소를 찍어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째, 이 장소에 카메라를 놓는 것이 최선의 장소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 장소에 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장소에 카메라를 놓으면 매우 비좁은 위치이기 때문에 와이드 렌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초점 거리를 포기하더라도 와이드 뷰(wide view)를 선택했다.

‘그’는 이 남자가 ‘이 방’에 올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건 이미 이 장소에 올 때 준비했을 것이다. 혹은 테스트 촬영을 해보았던 것일까? 이때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점, 첫째. 이 남자가 이 방에 올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설혹 예약을 했다 할지라도 몇 호실 방까지 예약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과 안내한 사람은 동일 인물이거나 혹은 서로 이 촬영에 합의한 상태일 것이다.

물론 이미 어느 방에 갈지 미리 알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징크스를 믿는 비즈니스맨들. 그러나 그렇다면 가정은 좀 더 참혹해진다. 이 방에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 혹은 이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이 남자의 징크스까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이 동영상 촬영분은 케이블을 사용했다면 이 케이블을 외부로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 공간의 소유주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카메라를 사용했다면 테이프를 회수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나간 다음에 이 방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

혹은 무선을 사용했다 할지라도 촬영용 카메라는 나중에 다시 회수해야 할 테니 하여튼 이 장소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 아니면 그 정도의 장비는 그냥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처음의 설치는 어떻게? 어떤 각도에서 생각해도 이 동영상은 이 장소를 대여해서 촬영한 것이다. 본인들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한 행동이지만 이 동영상은 말하자면 일종의 스튜디오 라이브 촬영이다.

이 남자가 ‘그 자리’에 앉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내가 가장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이 화면에 맞은편까지 다 보이는 것이 아닌데 카메라를 기준으로 이 남자가 왼쪽에 앉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의문이다. 첫 번째 가정.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남자가 여기 앉으리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동영상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현장에서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연출한 것이다. 흔히 함정에 빠트렸다고도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이 남자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이 말은 할 수 없다.

두 번째 가정. 찍은 사람이 그냥 운에 맡긴 것이다. 그래서 이쪽에 앉으면 ‘낚시에 걸린 것’이고, 앉지 않으면 그냥 운이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 가정. 이 남자와 함께 온 상대방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찍혔어도 역시 효과는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 앉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무시무시한 가정, 카메라가 두 대였다면?

여기에 네 번째 가정이 있다. 이건 좀 무시무시하다. 이 각도뿐만 아니라 맞은편에도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쪽에 앉았기 때문에 이쪽 촬영분만 공개한 것이다. 즉 두 대 이상의 카메라가 사용되었고, 결국 어느 쪽에 앉았더라도 이 방에 들어온 이상 이 카메라의 시선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남자의 실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만일 이 남자가 오른 쪽에 앉았다면 이 동영상의 가치는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더더구나 이 남자의 동작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남자의 얼굴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내내 여자를 보(거나 맞은편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 남자의 얼굴 방향이 대부분 카메라와 반대 방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남자는 자기의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본 버전에는 목소리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자기가 아니라고 우기거나, 에로 영화 연기연습이라고 우겼다면?

   
   ⓒ연합뉴스

그러나 두 번째 실수. 이 남자는 이 동영상이 “이 화면은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2시간 정도의 모임을 촬영하고 그 중 가장 의혹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51초를 편집하여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만 유포한 것”(레디앙 기사, ‘박계동 몰카 한나라당, 또? 곤혹스럽다’, 김선희 기자)이라고 말해서 화면속의 인물이 자신이라고 박계동 의원이 인정했을 뿐 아니라 이 상황 자체도 인정했다.

말하자면 박계동 의원은 자신의 말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놓쳤다. 만일 끝내 자신이 아니라고 우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중에 가서는 결국 그걸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며 이걸 누가 찍고 유포했느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에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 연기 연습을 한 것이라고 우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당 의원들께서는 ‘상소리’ 연극 공연도 하는데 머, ‘에로’ 비디오를 찍지 못할 이유가 또 무엇인가?

좀 야하긴 하지만 의도적인 설정이었으며,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연기 연습일 뿐 만 아니라 연기 연습을 하던 일부 테이프가 잘못 유포된 것이라고 주장했더라면 매우 웃기긴 했겠지만 그것이 연기라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연기랍니다, 하는 수밖에. 박계동 의원은 황우석 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박계동은 황우석 박사한테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하여튼! 우선 박계동 의원의 주장 중 틀린 점. 이 화면은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화면은 편집되지 않았다. 두 번째, 이 화면은 롱 테이크에 픽스 카메라로 찍혔기 때문에 보여준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다르게 설명해도 이 장면의 행위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동영상이다. 오히려 이 장면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보아 달라고 요구할 때 정말 악의가 되는 것이 아닐까? 미안하지만 우리는 장님이 아니다.

물론 내 본분을 안다. 이 동영상의 정치적 의도는 내가 따져 물어야 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걸 누가 찍었는지는 나에게 관심 바깥의 일이다. 또한 박계동 의원이 품위 상실로 국회에서 배지를 떼어야 하는지는 내가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게 성매매 법에 걸려서 경찰서에 갈 지는 여의도에서 판단할 것이다.

혹은 박근혜 의원이 대표로 있는 한나라당에서 탈당을 할 지 아니면 퇴출을 당할 지는 한나라당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다. 그런 분이 또 국회의원이 될지는 지역구 구민들께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혹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 또 배지를 달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문제이다.

제법 잘 한 촬영, 이 동영상 동료와 함께 볼 필요 있다

다만 영화 평론가로서 이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아, 이 정도라면 제법 촬영을 잘 했다는 생각은 든다. 구도도 나쁘지 않고, 게다가 의도가 좀 눈에 보이게 드러나긴 하지만 위치도 잘 잡았고, 그렇게 나쁜 조건에서 노출도 ‘아티스틱’한 느낌마저 있어서 두 세 차례를 보아도 눈에 특별히 거슬리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왼쪽에서 빛이 들어와서 실내를 밝히는 일종의 베르메르 조명. 이 동영상은 당신의 동료들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차라리 내 제안은 이 동영상을 국회에서 상영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당신들에 대한 투명할 정도의 감시의 시선. 구태여 푸코를 끌어들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푸코가 쓴 책의 제목은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행동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감옥의 시선에 관한 책 제목은 『감시와 처벌』이다. 나는 감시 뒤에 처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감시’ 뒤에는 ‘처벌’이 있다, 인터넷 바다에서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당신들의 모든 행동은 감시 안에 있다. 행동에 대한 감시로 이렇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것이 될 것이며 당연히 우리들의 답례는 처벌이다. 물론 당신은 또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처벌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언젠가, 어쩌면 내일 당장 당신의 손녀가 검색어 순위에 오른 할아버지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검색어에 넣은 다음 동영상이 떴을 때 그걸 보고 있는 손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왜 당신은 당신의 손녀가 한글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당신의 손녀가 인터넷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가?

그 동영상은 영원히 인터넷의 바다에서 떠돌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딸, 당신의 손녀, 그 손녀의 딸이 당신의 이름을 치면 언제나 51초 동안 재생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안 됐지만 당신이 한 일이니 그걸 어찌하랴. 당신의 51초는 역사에 보관될 것이다. 혹은 영원히 현재이다. 정보의 바다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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