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문심(文心)을 찾아서
『사마천의 마음으로 읽는 「사기」』 (이승수/돌베개)
    2018년 08월 04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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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생명은 성격이고, 성격은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일정한 시간의 단위 안에서, 원인과 결과, 발단과 전개와 갈등과 결말 등의 질서를 지닌 일련의 사건을 서술하는 것을 서사(敍事)라고 한다. 서사의 재미와 감동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안목과 솜씨다. 잘 빚어진 인물은 바로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스스럼없이 떠나간다. 역사에서든 소설에서든 그런 인물들은 작가의 어두운 심연을 거쳐야만 태어날 수 있다.

사마천은 서사의 방식으로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빚어내는 연금술사였다. 『춘추좌씨전』이나 『전국책』에 등장하는, 장식장 속 도자기 같은 인물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지금 나의 현실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사마천의 글은 뒷시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그 인물들은 이야기 세계 속의 숱한 후손들을 낳았다. 따지고 보면 『수호전』의 노지심과 무송, 허균의 장생, 박지원의 허생은 모두 『사기열전』의 후손들이다. 『사기열전』은 역사와 소설이라는 두 개의 물줄기로 흘러내렸다.

사실의 토대 위에서 과감하게 허구의 건축 솜씨를 발휘하고, 자기실존을 투영하고 곳곳에 상상의 묘수를 착점하면서도 역사의 무게를 잃지 않는 것이 『사기열전』의 생명, 문심이다.

문심(文心)의 의미를 풀면, 문장가의 마음도 되고, 문장의 심장도 된다. 조선시대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표현을 빌리면, 문장이 꽃이라면, 문심은 나비다.

족하는 태사공을 읽었다 했지만 아직 그 마음을 읽지는 못했군요. 왜 그럴까요? 「항우 본기」를 읽을 때는 해하성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상상을 하고, 「자객 열전」을 읽으면서 고점리가 서글프게 축을 연주하는 장면을 떠올린다고 했는데, 이는 늙은이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이니, 부엌 바닥에서 숟가락을 주운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를 잡는 광경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무릎은 반쯤 구부리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돋움하여 집게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내밀지만 머뭇거리는 순간 나비는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

― 박지원, 「경지에게 답하다」(答京之)에서

박지원은 사마천의 글에서 문심의 중요성을 깊이 알았다. 해하성 싸움의 장관이나 고점리의 축 연주 풍경은 문자로 묘사된 것, 즉 겉 이미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감각에 이끌려 보이는 대로 이해하지만,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사유 능력이 없으면 문심도 헤아릴 수 없고, 문심을 헤아리지 못하면 수박의 겉만 핥게 된다. 주방에서 숟가락을 주워 들고 대단한 걸 얻은 양 만세를 부르는 격이다.

박지원은 『사기』를 읽을 때 사마천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마음, 즉 문심은 어디에 있나? 사마천은 정성을 다해 나비를 잡으려 했지만,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남은 것은 나비가 앉아 있던 꽃뿐이다. 마찬가지로 『사기』에는 역사를 표방한 글이 있을 뿐이다. 역사 이야기에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낼 것인가? 박지원의 말은, 남은 글을 통해 날아간 나비, 즉 사마천의 마음을 얻어야 『사기』를 제대로 읽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 『사마천의 마음으로 읽는 사기』는 그 나비를 찾아다닌 여행기이다.

네 글자에 사마천의 마음을 담다!

이 책은 『사기열전』 70편 중 30편의 열전을 선정해 새로 번역하고, 여기에 평어(評語)를 덧붙인 것이다. 선정된 글들의 주인공은 통일 진(秦)나라 이전 시기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먼 시기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상상도 과감하고 표현도 생동하는 데 반해, 자신이 살았던 한나라 시기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고 따라서 글도 다분히 지루하다. 그 표현이 권력의 역린을 건드렸을 때 받게 될 무자비한 형벌을 사마천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정한 30편 안에서도 사실 고증에 집착하거나 화제가 곁가지로 빠져나가 필세가 약해진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더하여 『한서』 「사마천전」에 실린 「소경 임안에게 보낸 편지」도 문미에 수록했는데, 이 글은 사마천의 글이자 사마천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30편 선정 기준은 서사가 지닌 박진감과 문장의 구성미에 있다. 또한 사마천의 입장과 판단이 강하게 드러나는 글들을 대상으로 했다. 요컨대 저자는 개성 강한 ‘작가’ 사마천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기열전』을 읽을 때 각 편마다 읽는 방법, 즉 독법(讀法)이 제시된다면 사마천의 문심 찾기가 좀더 쉽지 않을까. 저자는 선정한 열전의 각 편마다 네 글자 한자 어구로 독법을 제안했다. 마치, 마을 어귀에서 나그네를 안내하는 장승처럼, 길안내 표지판처럼 말이다.

벽해장도(碧海藏島), 푸른 바다 어딘가에 숨은 섬을 찾아서 / 백이 열전

저자가 제시한 「백이열전」을 읽는 방법이다. 마치 큰 바닷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섬을 찾듯 이 글 속에 숨겨진 사마천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라는 의미이다. 흔히 사람들은 「백이 열전」을 두 가지 선입견을 가지고 읽는다.

첫째, 이 글은 백이의 생애와 행적에 대한 소개일 것이다. 하지만 백이의 행적은 전체 글의 3분의 1도 되지 않고, 그 내용 또한 별 게 없다. 오히려 백이보다는 공자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백이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빌려온 인물, 즉 가짜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이 글에는 사마천의 명징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자신의 입장을 명백하게 말하지 않는다. 글은 인용문과 의문 부호의 연속이다. 이래서는 논리가 이어지기도, 의미가 드러나기도 어렵다. 비유하면 인용문과 의문 부호들은 구름이고 사마천의 의중은 그 속에서 머리와 꼬리만 내민 용이니, 몸통은 독자들이 추리해야 한다. 과연 사마천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백이 열전」은 크게 4개(작게는 8개)의 의문과 하나의 확신으로 구성된 문장이다. 앞에 4개의 의문을 둔 것은 마지막 하나의 확신을 이끌어 내고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장자』 등에 기록된 허유와 무광의 행적의 사실 여부, 백이의 행적의 사실이나 공자가 언급한 그의 불원(不怨) 여부, 천도의 시비(是非)에 사마천은 모두 물음표를 달았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통합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이다. 사마천은 그 여부를 결정지으려 하지 않았다. 삶의 태도 또한 ‘도부동’(道不同)이니 각자 취향을 좇으면 될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세상 만물은 용과 구름, 범과 바람의 관계처럼 같은 빛끼리 서로 비춰 주고 자기와 같은 부류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백이·안연과 공자는 그런 사이이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평범한 동명상조(同明相照)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공자’라는 특별한 존재에 있다. 공자에 대한 사마천의 태도는 「백이 열전」 독법의 핵심이다. 사마천은 공자와 관련된 어떤 점에 물음표를 달았고, 무엇을 확신했는가?

동백경절(冬栢頸折), 동백꽃이 툭 떨어지다 / 노자한비 열전

한비(韓非)는 오래도록 준비한 그 유장하고 정연한 이론을 펼쳐보기도 전에 한순간 목이 꺾여 죽는다. 마치 동백꽃이 떨어지듯.

신산일실(神算一失), 신산묘수의 치명적 실수 / 손자오기 열전

손빈(孫?)과 오기(吳起)는 신산묘책으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손빈은 방연의 흉수를 눈치 채지 못했고, 오기는 비참한 종말을 셈하지 못했다.

쌍벽좌대(雙璧坐對), 천하의 이목을 끈 한 쌍의 벽옥 / 소진 열전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전국 말 천하를 움직였던 한 쌍의 진주였다. 사마천은 두 개의 진주를 마주보게 놓아 각자의 장단허실이 절로 드러나게 했다.

죽림호안(竹林虎眼), 대숲에서 빛나는 범의 눈동자 / 악의열전

악의(樂毅)의 열전 속에 인용된 악의의 글은 마치 대숲 속에서 빛나는 범의 눈동자와 같아서, 대숲을 떠난 뒤에도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는다.

급정해갈(汲井解渴), 우물을 찾아 타는 목을 적시다 / 굴원가생 열전

우리는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문장에서 내 삶을 위로 받는다. 천하의 문장가 사마천도 굴원(屈原)과 가의(賈誼)의 시를 읊조리며 자신의 처지를 달랬다. 목마른 나그네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목을 적시듯.

보보응념(步步凝念), 걸음 하나에 생각 하나 / 소경 임안에게 보낸 편지

옥중의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한 편은, 걸음걸음마다 또는 바느질 한 땀마다 깊은 생각이 응어리져있는 것처럼, 글자 하나하나도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다.

‘소설계의 시조’ 사마천을 마주하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가 사마천이 아닌 문장가(정확하게는 소설계의 시조) 사마천을 보여주고자 했다. 따라서 소개하는 열전의 글도 완역하지 않았다. 재미없는 글들은 뺐고, 선택한 글 중에서도 문장의 기세가 지리한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버렸다. 인간 군상의 긴박한 사건 전개는 여느 소설 못지않다. 폭염 속 피서(避暑)에는 피서(避書)도 함께한다지만, 시원한 그늘 아래서 독서하는 것만큼 돈 안 드는 휴가가 있을까.

각 편 글의 앞과 뒤, 그리고 문장과 단락의 사이에 간략한 평어(評語)를 더했다. 비유하면 이 평어들은 일종의 여행안내거나 의원의 진맥이다. 글 읽기가 여행이라면, 좋은 안내자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한 편의 글이 살아 있는 인체라면, 그 약동하는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맥과 관절과 내장과 감각기관 등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여행의 안내자로 자처한다.

사마천의 글을 읽으며 옛사람과 대화하고 그의 조언을 듣고 때로는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외려 마음이 통할 때가 있고, 몸이 만날 수 없어 반대로 대화가 진진해지기도 한다. 이 글은 2천 년 전, 만 리 밖의 만날 수 없는 사람과의 교감이며 소소한 차담(茶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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