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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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3일 05: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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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하루에 300여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또한 그 절반가량의 죽음을 기록하는 곳. 매일 200여 쌍이 새 가정을 꾸리고(말하자면 주말에 1,400쌍의 신혼부부가 ‘양산’된다는 것) 이혼하는 부부도 100여 쌍이나 된다. 나날이 250억 원이 넘는 지방세가 걷히고, 12만 톤이 넘는 쓰레기가 나온다. 날마다 천 여 마리의 소고기를 먹어치우고, 돼지고기 양은 1만 마리가 넘는다.

    길이라는 길은 죄다 자동차로 주체할 바를 모르는데, 오늘도 200대가 넘는 새 차가 거리에 쏟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1분 25초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오늘 밤도 100만의 우울증 환자가 한숨지을 것이다. 이곳, 이 엄청난 욕망과 낭비와 좌절의 소용돌이 속에 과연 우리는 사람들의 공동체라 불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서울이라는 극단적 예를 들기는 했지만 다른 도시들의 사정도 수치(數値) 외에는 다를 게 별로 없다. 서울의 황량함과 천박함을 판 박은 크고 작은 도시들이 반도의 남쪽에 넘쳐난다. 농촌은 이들 도시에 딸린 식민지와 같은 처지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고대의 ‘도시’국가연합을 닮아 있다.

    런던, 170여 년 전과 지금 사이

    서울은, 한국의 도시들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마침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런던’을 서울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다. 런던의 어떤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기에 그 도시를 서울의 전범으로 꼽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필자도 결론은 같다. 서울은 런던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하지만 눈길이 단지 오늘날의 런던에만 고정돼서는 안 된다. 지금의 런던이 있기까지 그 ‘역사’를 주시해야 한다. 너무 멀리 잡을 것 없이 100년 조금 더 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공산당 선언』의 공저자 중 한 명(F. 엥겔스)이 1845년에 낸 책이 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책 내용은 한 마디로, ‘상태’가 아주 안 좋다는 것이다. 이런 비관적 진단의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가 바로 런던이었다. 엥겔스가 보고하는 당시 런던의 뒷골목 풍경은 마치 현대 대도시의 문제들을 모두 집약해놓은 것 같았다. 벌집 같이 빽빽이 들어선 불량주택들, 하수와 오물로 뒤덮인 거리, 방치된 아이들… 벤치마킹은커녕 꿈자리가 다 뒤숭숭해질 정도였다.

    그럼 그 때와 지금, 이 두 개의 런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다섯 세대는 족히 지나갔다고 하지만, 단지 세월이 흘렀다는 것만으로 그 많은 변화가 가능하지는 않았을 터. 도대체 어떤 ‘마법’이 엥겔스의 지옥도(圖)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눈에 비친 장밋빛 이미지로 뒤바꿔놓은 것인가?

    그건 마법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꿈들이 있었고, 그 꿈들을 묶는 하나의 ‘이름’이 있었으며, 그 이름을 내건 투쟁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사회주의’다.

    현대 런던의 역사 – 도시와 사회주의의 동반 행진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런던 같은 추잡하고 구제불능인 도시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지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보기에, 소위 시장 법칙이라는 것에 맡겨둬선 답이 없었다. 시장은 누군가가 교외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돼지우리를 벗어날 길은 열어주지 못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180도의 방향 전환이었다. 도시에는 사회주의가 필요했다.

    이들은 주장했다. 이제는 시장(市場)이 아니라 시장(市長)이 도시 주민의 일상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수도관을 놓고 하수도를 묻고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며 전차를 운행하는 것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정부, 즉 지방정부의 몫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큰’ 정부가 필요하다. 시민의 삶 하나하나에 손길을 뻗을 수 있을 만큼 한껏 ‘큰’ 정부. 이게 바로 웹 부부나 버나드 쇼 같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이들의 꿈은 노동당이라는 (당시만 해도 젊었던) 정당을 통해 조금씩 현실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도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강한 저항과 무수한 장애물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투쟁이 있었다.

    노동당 소속의 초창기 런던 시 구청장 중 한 명(나중에 노동당 당수가 된 조지 란즈베리)은 부유층에 편향된 중앙정부의 조세 정책에 반대하다가 임기 중에 감방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노동당 지방정부의 복지정책도 기득권층과 보수 세력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도시 사회주의’의 행진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런던의 모습 또한 바뀌었다.

    런던 시장 ‘빨갱이 켄‘과 대처 전 수상의 볼만한 투쟁

       
     

    가장 최근의 볼만한 투쟁은 1980년대에 있었다. 이 때 중앙정부는 ‘복지국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처 수상의 보수당이 쥐고 있었다. 반면 런던 시정부를 이끈 것은 노동당 안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켄 리빙스턴이었다. 지금도 런던 시장인 그 ‘빨갱이’ 켄 말이다.

    대처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살린다며 철도를 죽이고 도로를 무차별로 증설할 때, 리빙스턴의 런던은 대중교통요금을 대폭 내려 자가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 중앙정부의 시장지상주의자들이 ‘작은’ 정부를 외치며 공기업 사유화와 외주 하청의 광기에 취해 있을 때, 런던 시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민간 기업을 인수하여 공기업이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만들었다. 보수당 내각이 광산 노동자들을 적으로 지목해 1년 가까이 사실상의 내전을 벌일 때, 런던에서는 시청 담당자와 지역 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도시개발계획을 새로 짰다.

       
     ⓒ연합뉴스
      

    골이 날대로 난 대처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런던의 광역자치단체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6년부터 런던은 (1995년까지의) 서울과 함께 광역 차원의 자치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세계적 대도시들 중 하나라는 오명을 덮어써야 했다.

    하지만 ‘쿠데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런던 시정부가 복구됐을 때 런던 시민이 선택한 직선 시장은 다름 아닌 켄 리빙스턴이었다. 지난 14년은 런던과 사회주의의 동반 행진에서 잠깐의 막간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시 런던시장이 된 리빙스턴은 도심혼잡통행료 제도를 실시해 ‘대중교통의 천국’을 되살리는 등 과거의 정책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런던’ 같아지기 위해 필요한 그것

    이제 지방선거의 달이다. 언제나 선거만 되면 늘 그러는 것처럼 이번에도 누구나 다 ‘복지 확충’을 이야기하고 ‘환경’을, ‘문화’를 떠벌린다. 자칭 ‘좌파 신자유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수구원조정당까지. 말만으로는 영 차별화가 안 되니까 이제는 애먼 색깔들(보라색, 녹색, 게다가 붉은 색!)까지 동원하는 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정부를 외치며 “벽을 허물고” 화합하자고 한다.

    도대체 ‘작은’ 정부로 어떻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인가? 또한 양극화의 한 쪽 극(가진 자들)을 침해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한 쪽 극(빼앗긴 자들)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오히려 이러한 물음이다. 최선의 앞날이라는 이상은 고사하고 최악의 미래라도 피하기 위해서는 누가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그것을 말해야 한다.

    런던에서 수 세대에 걸쳐 이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 이들을 상징하던 말은 ‘사회주의’였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도시들에 절실히 필요한 것 역시 바로 그런 의미의 사회주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서울에는, 우리의 도시들에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우린 월드컵 16강에는 들 수 있을지 몰라도, 올림픽은 좀 더 성대하게 치를 수 있을지 몰라도, 런던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반도의 지도를 수놓는 사막 지대들 위에 우리의 고향을 세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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