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하지 않은,
    그러나 너무 당연했던
    [청년기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주변 ‘김지영’과의 인터뷰
        2018년 07월 31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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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82년생 김지영』中-)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 민음사 ©유재혁 기자

    지나치게 익숙했다. 불편했다. 그러나 침묵했다. 기나긴 침묵 속, 작가 ‘조남주’는 저서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오래된 폐단을 고발했다. 82년생인 주인공 ‘김지영’은 어느 특정 인물을 대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보편적인 대한민국의 여성을 대표할 뿐이다. 그렇기에 위에서 인용된 소설의 일부분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은 반면,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란 속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대한민국 여성의 소회에 대해 직접 들어보고자 하였다.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82년생 김지영』과 더불어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Q: 『82년생 김지영』을 읽으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제일 기억에 나는 부분은 어디였나요?

    A: 아무래도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라고 한 부분이 가장 기억납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당할 수밖에 없던 처사에 대한 서술입니다. 이 사회에서 과거부터 열심히 살면서 현대에 이르러 커피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 거죠. 이 책의 절정이라 생각됩니다.

    맘충 관련 내용이 나오는 같은 책 p164(왼쪽)와 p165

    Q: 올해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본인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던 중 『82년생 김지영』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페미니스트라며 비방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혹시 본인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A: 솔직히 아이린 사건이 터진 게 처음이 아니에요.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명품 홍보 모델이 돼서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를 착용한 것을 가지고도 네티즌들이 비난했던 사례가 있었어요. 이와 연장선상에서 아이린 사건은 단지 베스트셀러를 읽은 건데 논란이 되었던 어이없는 사례지요. 이런 사건들은 현재 페미니즘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최근에 와서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 특별한 사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평등한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뿐이고 사람들이 살면서 언젠가 해결돼야 할 숙제라 생각됩니다.

    Q: 『82년생 김지영』도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요?

    A: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이라는 것을 타파하기 위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Q: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 속에 페미니즘의 입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절망적입니다. 아주 최근에 있던 홍대 몰카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여성이 불법 촬영의 피해자일 때 가해자는 집행유예이나 이에 반해 홍대 몰카 사건에서는 수사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기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홍대 몰카 사건’이 문제되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요?

    A: 여성들은 지금까지 몰카 범죄에 시달려온 피해자들입니다. 화장실에 가면 구멍부터 찾아서 막으려고 하고 제 친구들은 구멍을 막고 다니는 실리콘을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성에 대한 몰카 범죄는 예전부터도 익히 알려져 있는 부분이지만 이에 대한 수사도 미비했고 형량 또한 공평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남성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몰카 범죄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사실상 대중 앞에서 드러난 몰카 범죄의 가해자는 여성이라니 참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Q: 대한민국에서 고착화되어 있는 성(性)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예전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저에 보수적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맨박스’도 이러한 것인데요. 남자들이 남자다움 속에 갇히는 것을 뜻합니다. ‘토니 포터’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개념은 남성들이 남자답기 위해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법으로 잘못 교육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묵인하고 살아가면서 간접적인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주체적인 노력은커녕 남자다움이라는 굴레 속에 본인을 가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남성들도 이와 관련하여 겪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A: 남성들의 고충도 당연히 있죠. 위에서 이야기한 ‘맨박스’도 그렇고 항상 남성들이 말하는 군대에서의 취약한 인권 문제도 조속히 해결돼야 하는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여성혐오은 없고 여성상위시대라 말하는 것은 인식의 부족이라 생각합니다.

    Q: 페미니즘에 대해서 불편하게 바라보는 남성들의 견해들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남성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지고 있는 이권은 포기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역차별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데 본인들이 사회 구조 속에서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먼저 남성들은 본인들이 받는 이익들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요?

    A: 지금 현실상으로는 여성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많아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을 외치는 남성은 적습니다. 남성이 페미니즘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여성이 내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데도 말이죠. 페미니즘에 대해 많이 공부해야하고 그래야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럼 마지막으로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더 소개해주실 수 있는 책이 있나요?

    제가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입니다. 일단 그 책은 이제 막 페미니즘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건 아니고 다소 심오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는 위에서 말씀드렸던 ‘맨박스’도 있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물론 복잡한 내용은 없어서 많은 내용을 논하기에는 부족하긴 합니다.

    『맨박스 Man Box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저/김영진 역 | 한빛비즈,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김명남 역 | 창비

    인터뷰를 했던 그녀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답이 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답에 그녀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아래와 같다. “페미니즘이 여권 신장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권 신장이라는 것은 여성이 남성의 권리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자로서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던 이름 모를 특권들에 대해 내려놓고 여성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남성들은 기존에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형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 속에서 남성은 원했든 혹은 원치 않았어도 여성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왔다. 이를 인식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기에 많은 남성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든 공범자라 인정하는 셈이니 말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를 탈피하면 세상은 더 넓게 보인다. 가정에서만 보아도 늘 주변에서 헌신하시는 부모님 중 한 분도 여성이고, 혹은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다면 이 또한 여성이고,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는 딸 또한 여성이니 말이다. 남의 권리가 아닌 ‘우리’의 권리를 신장하는 운동인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교육’이라는 해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한국외대 EL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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