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무 이혼 18%…부채, 가족을 해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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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3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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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한 빚 독촉과 과중 채무에 따른 이혼 등 가족 해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본부장 이선근)가 3월~4월 두달 동안 파산 신청 중인 34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7.9%인 61명이 빚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조사됐다.

       
     
    ▲길거리에서 채무상담을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또 지난 1년 동안 가정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수도 언론에 보도된 것만 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빚에 몰린 아버지가 10살 난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는 등 가족이 동반 자살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생활고와 사업 실패 등 생계 문제로 빚이 늘어난 경우였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임동현 국장은 “과중채무자들이 파산신청 시 법원에 내는 ‘채무증대 및 지급불능 경위서’(왜 빚을 졌고, 왜 못 갚게 됐는지 적는 진술서)를 보면 가족 해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보증채무 등으로 온 가족이 소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가혹한 추심을 견디다 못해 뿔뿔이 흩어져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과중채무로 인한 가족해체 현상을 막기 위해 △개인파산·회생제 실무지원기구 활성화와 공적 제도 수준의 민간 채무조정기구 설립 △공정채권추심법 제정 △개인파산·회생 신청 시 판사의 보증인 재량면책제 도입 △고금리 제한법 제정 △파산선고 등에 따른 직업·자격상의 불이익 폐지에 나설 방침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채무조정 상담 및 개인 파산제 신청 지원을 통한 개인채무자 구제 ▲이해당사자와 함께 제도개선을 병행하는 가계부채 SOS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화번호 02-2077-0558~9(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사례

    부모 식당 도와주다 가족 전체 파산
    장진화(27세, 가명) 씨

    집안이 어려운 장진화 씨는 199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중소기업에 경리사원으로 취직했다. 졸업 이후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더 어려워졌다. 장씨는 물품 구입용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카드를 빌려 드렸다.

    경기 불황 때문에 장씨는 계속 직장을 옮겨야 했다. 폐업하는 회사가 속출해서 한 직장에 1년을 다니기 어려웠다. 장씨는 공부를 계속할 결심을 했다. 퇴직금 등을 모아 한 시립대학에 입학했다. 1학년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학자금 대출을 100만원 받았다.

    부모님의 식당 사정은 더 힘들어졌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심해졌다. 한 카드사는 장씨의 부모를 독촉해 대학생이던 오빠를 보증인으로 세웠다. 오빠의 소득이나 신용 능력은 고려 대상에 들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장진화 씨는 유치원 교사로 취업하고 빚을 갚아갔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빌려 준 카드 채무로 인해 빚 독촉에 시달렸다. 부모님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으며, 오빠는 빚 독촉으로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 어려워 직장을 그만뒀다. 장씨는 부모, 오빠, 본인 총 네 명인이 개인 파산 및 면책을 신청했다.

    교통사고 후 실직, 식당 배달원과 대리운전
    권승진(가명) 씨

    영업사원이던 권승진 씨는 1999년 교통사고로 2개월 간 입원치료 진단을 받았다. 권씨는 가족의 생계가 걱정되어 통원치료를 하는 등 노력했으나 회사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사고 후유증 때문에 취업이 어려워진 권씨는 생활비와 두 아이의 교육비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그 뒤에도 생활이 힘 들자 권씨는 아파트를 처분하여 금융권 부채를 모두 해결했다.

    2003년 초등학교 수련회에 갔던 아들이 손에 골절상을 당했다. 권씨도 건축일용직으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권씨는 자신과 아들의 치료비로 다시 빚을 졌다. 사고 후유증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 생활비까지 빚을 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1천만원의 채무를 변제했지만, 한번 늘어난 채무는 줄지 않았다.

    권승진 씨는 낮에는 일용직 노동자로,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채무변제에 노력했다. 수시로 걸려오는 추심원들의 빚 독촉 전화에 아내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권씨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2005년 집을 나와 석 달간 노숙 생활을 했다. 월세방에 살던 아내와 아이들은 월세를 연체하다가 처가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2005년 권씨는 4천5백만원의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 법원에 개인파산 및 면책신청을 했다. 현재 권씨는 식당 배달과 대리운전을 함께 하면서 다시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채무로 시아버지 자살, 남편과 이혼
    오숙경(가명) 씨

    1999년 오숙경 씨는 남편이 자신의 카드를 정수기 판매사업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남편은 밤낮없이 정수기 판매에 매달렸지만, 사무실 운영경비만 지출되는 등 적자만 늘었다. 오씨는 채무가 급격히 늘어나자, 시골에 있는 시부모님 댁으로 살림을 옮겼다.

    시아버지는 농가부채를 지고 병중에 있었는데 아들의 채무가 상당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아버지는 2003년 3월 “자식의 채무상환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병원비도 계속 들어가 채무가 늘고 있다”며 자살했다.

    시어머니는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도시로 나가야 한다”며 이사하려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외삼촌댁에서 6개월을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오숙경씨는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본인의 채무 5천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오씨는 2006년 1월 남편과 이혼한 후 현재 보증금 3백만원에 월세 25만원하는 월세방에 거주하면서 개인파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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