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하나를 품으면 탱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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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3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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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이 불타올랐다. 찰진 땅의 속살을 헤집으며 능욕하는 포크레인에 맞서 마른 짚단에 불을 놓아 축문처럼 흩뿌리던 날이었다. 천지간 매운 연기로 뒤덮인 들녘에서 눈 둘 곳 몰라 하늘을 치어다보았다.

능욕하는 포크레인과 마른 짚단에 붙은 불

그날도 미군 정찰기는 들판 위를 떠다녔고, 정찰기 지나간 자리에 수십 마리 새들이 쏟아졌다. 나는 한순간, 느닷없이 출현한 그 새들이 정찰기에서 쏟아진 줄 알았다. 정찰기가 오래고 고된 비행에 지친 새들을 실어다 황새울 들녘에 부려놓은 줄 알았다.

   
 
도두리 들녘에 세워진 최평곤 작가의 문무인상
 

정찰기는 새들의 길을 짓밟으며 하늘마저 유린했고, 충돌의 찰나를 모면한 새들은 가까스로 다시 날개를 저었다. 쫓기고 쫓겨 온 날개의 힘으로 세상을 뜨는 그들의 뒤를 들녘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긴 꼬리를 끌며 따라갔다. 그 환시가 여태 나를 따라다니며 귓속말을 한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겠냐고.

대추리 들녘에 서면 자주 그런 환시를 본다. 21세기를 살다가 한순간에 1980년대로, 1920년대로 곤두박질친 것 같다. 아는 것이라곤 농사일밖에 몰라 흙 한 점 한 점 퍼다 날라 바닷물을 메우는 농투성이들이 거기 있고, 한가로이 날아와 먹이를 찾는 황새들이 거기 있고, 마침내 일군 논에서 난산 끝에 태어난 아이 같은 곡식이 거기 있다. 그리고 불도저로 담장과 대문을 부수고 총을 쏘면서 몰려온 미군들이 거기 있고, 문짝과 솥단지를 부여안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거기 있고, 있고….

문짝과 솥단지 부여안고 쫓겨나는 사람들

이제 다시 수천 명의 전투경찰과 수백 명의 용역 깡패들이 들녘을 점령하려고 들어왔다. 미군이 전 세계를 향해 전쟁 놀음을 할 땅을 알뜰히 마련해 주기 위해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과 주민들은 포크레인 바퀴 앞에 드러눕고 포크레인이 판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고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을 하며 능욕당한 땅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황새울 들녘에 세워진 최병수 작가의 미사일솟대
 

우리는 다시 노래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느냐고. 아니, 꼭 오게 할 것이라고. 그 옛날 옛적 시를 다시 노래해야 하는 이 서글픈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그 힘겨운 싸움을 어루만지고 함께하기 위해 이 들녘에 환시 같은 것이 정말 솟았다. 도두리 들녘에 우뚝 선 문무인상. 황새울녘에 선 새벽닭과 솟대들, 그리고 수많은 깃발들, 깃발의 아우성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지만, 여기 모인 예술가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이 풍요로운 들녘보다 더 예술적인 것이 어디 있으며, 그럼에도 이곳에서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 예술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다시 부르는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03년부터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을 중심으로 모인 문화예술인들은 많은 작품을 이 들녘에 남겼고, 우리의 활동이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12주 동안 집중적으로 <대추리 현장예술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열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이렇게 부른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대추리 도두2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 공동행동-들이 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들사람들>이라고 부른다. 20여 명의 기획연출단을 비롯한 9백여 명의 문화예술인들. 가까이는 평택에서, 서울에서, 멀리는 강원도에서, 제주에서 마음으로 몸으로 작품으로 이 외진 시골 마을로 모여들었다.

한겨울부터 유난히 바람이 많은 대추리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언 발을 동동 구르며 벽화를 그렸다. 전통 수호신인 도깨비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을 이고 툭 불거진 눈망울을 부라리며 마을을 지키고, 끝끝내 이곳에 뼈를 묻고자 남아 계신 어르신들이, 그 옛날 주민들이 쌀을 팔아 세웠다가 지금은 폐교가 된 대추초교 유리창마다 새겨져 미군 기지를 바라보고 있다.

들이 운다, 들사람들이 운다

주민들은 이 작업 과정을 유달리 유심히 지켜보았으니, 마침내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것이었다. 누구는 안 닮았다, 누구 코는 왜 저러냐, 누구는 왜 안 그렸냐, 누구도 그려라 등등.

외지에서 들어와 뭐를 세우네, 뭐를 그리네 하는 일들이 주민들로서는 마냥 반갑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우리들한테야 예술이고 무기이지만, 그것은 죽이 되지도 밥이 되지도, 무기는 더더구나 될 수 없는 야릇한 짓에 불과할 터이다. 그랬던 것이 이 초상화 작업을 시작으로 주민들은 우리와 우리의 작품들과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초상화 아래에 거대한 브론즈 조각 작품이 들어왔으니, 故 구본주 작가의 ‘갑오농민전쟁’이다. 갑갑한 전시실에 갇혀 있던 전봉준 장군은 대추리에서 다시 살아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매서운 눈빛과 그 무엇도 쓰러뜨릴 수 없는 굳센 몸으로 미군 기지를 향해 죽창을 겨누며 6백 일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닐하우스에 모여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지키고 있다.

이곳 대추리에는 들사람들의 집도 있다. 이름하여 ‘들집’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국방부에 땅과 집을 팔고 떠나간 빈집이다. 국방부 재산을 무단 점거하여 우리 집으로 삼았으니, 대추리의 많은 빈집 점거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범법자들이다.

그곳에 들어서면 우리는 모두 범법자가 된다

빈집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 손괴죄요, 국방부가 매수한 땅을 밟으면 무단침입죄니, 대추리에 들어서는 것부터가 불법인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유럽의 진보적인 예술 활동인 빈집점거운동(스쾃)을 대한민국에서는 유일무이하게 벌이며, 포부도 당당하게 들어가 안팎으로 말끔하게 청소를 해 둥지를 틀고 떡하니 문패도 달았다.

들집은 12주 동안의 활동을 위한 작업공간이 되기도 했고, 추위에 언 속을 달래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쉼터가 되기도 했고, 각계각층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고, 기획연출단의 회의장이 되기도 했다.

역시 제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집’이 있어야 무엇을 해도 잘 하는 법일 터, 50년 전 미군들에게 쫓겨 토막집과 천막집, 심하게는 엄동설한을 토굴에서 나며 지킨 주민들에게 제 집과 제 땅을 버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짓들인지, 숭악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보상금 받았다, 후회한다, 돌아가고 싶다

보상금을 두둑이 주겠다는 꼬드김을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믿고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보상금이 융자금으로 돌변한 지금에야 양의 탈을 벗은 늑대의 얼굴을 보고서 경악해하고 분노하고 후회하고 있지 않는가. 생전에 내본 적이 없는 월세를 몇 십만 원씩 내며, 논일 밭일 하던 이 땅으로 다시 되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가.

   
 
4월 29일 마지막 대추리 현장예술제에서 작품들을 돌며 터닦기를 했다.사진 제공_컬처뉴스
 

그 동안에도 혼례를 치른 집이 두 집이나 있어 성대한 점심을 대접받았고, 힘든 작업을 할 때마다 할머니들이 노인정에 모여 식사당번을 도맡아주셨는데, 그 맛깔 나는 음식 앞에 앉으면 대추리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즐거움으로 바뀌게 마련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을 그 누가 떠나고 싶으랴.

3월에 접어들자 시인들도 대거 합류했다. 그동안 ‘증거물’을 남기기 어려운 장르적 특성 때문에 문인들의 활동은 도드라지지 못했다. 그러나 대추리는 거대한 종이가 되었고, 문인들은 ‘벽시’라는 새로운 문예행동을 만들어냈으니, ‘시’는 대추리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고은, 정희성, 백무산 등 우리 문단의 거목이신 분들의 작품을 포함해 모두 60여 편의 벽시가 골목골목을 돌아 황새울까지 그 울림을 전하고 있다.

대추리, 거대한 종이가 되다, 그 위에 시가 기록되다

이런 작업들은 4월이 끝날 때까지 이어져 화가들은 벽화를, 만화가들은 벽만화를 계속 그렸고, 사진작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담아 사진관을 열었고, 임옥상 씨의 작품 <The Great American Phallus>와 문무인상의 작가 최평곤 씨의 또 다른 대나무 작품 <파랑새>가 옮겨져 왔다. 그리고 가수들은 노래를 했으니, 그 공연의 이름은 ‘비닐하우스 콘서트’. 매주 토요일마다 수많은 노래패와 가수들이 노래를 들려주며 주민들의 시름을 씻어내고 투쟁에 힘을 실어주었다.

12주차 마지막 행사를 앞두고 대공사를 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야트막한 언덕을 동산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잡풀과 잡목을 걷어내고 수십 년 동안 묻힌 쓰레기들을 치우고 땅을 고르고 김해에서 달려온 수천 포기의 야생화와 잔디를 심었다. 이 동산에 우뚝 선 <파랑새>는 붉은 노을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되었다. 우리는 이곳을 ‘대추리 평화예술동산’이라 이름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로, 아이들의 놀이터로 열어두었다.

4월 29일, 마지막 ‘황새울의 날’ 행사를 끝으로 대추리 현장예술제가 막을 내렸다. 낮부터 ‘전쟁과 국가폭력을 반대하는 대추리 평화예술마을’과 ‘대추리 평화예술동산’ 현판식과 고사를 지내고 작품들이 있는 곳을 돌며 터닦기를 하고, 운동장에 마련된 무대 아래에 2백여 명의 문화예술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동안 현장에 직접 오지 못해 미안해하던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해 굿판과 마임과 시낭송, 노래, 사진 슬라이드, 동영상 상영 등이 이어졌고, 대동 한마당까지 마치니 밤 열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으로 연대하고 행동한다

   
 
마지막 콘서트 현장. 들사람들 기획연출단 모두 무대에 올라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를 부르고
 

<들사람들> 기획연출단의 큰 형님인 가수 정태춘 씨는 우리의 인터넷 아지트인 카페 ‘황새우울’을 통해 모든 회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준비기간을 포함한 그 넉 달 동안 대추리 도두2리 현장에 남긴 것은 대단한 예술적 성취가 아닌, 그것보다 더욱 값진 문예인들의 자기 헌신과 ‘우리는 어떠한 전쟁이나 전쟁 준비도, 어떠한 국가 폭력도 반대한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으로서 연대하고 행동한다’라는 연대의 메시지”라고 전한다.

지금 대추리 도두2리에는 언제 군부대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오늘도 주민들은 언제 군홧발에 짓이겨질지 모르는 땅에서 목숨 같은 곡식들을 돌보고 있다. “논두렁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가 작품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으니, <들사람들>은 앞으로의 투쟁 또한 함께하기 위해 후속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대추리 도두2리에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문예인 공동행동은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박해석 시인의 시 ‘노래 하나를 품으면’ 중에서 빌려온 것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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