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 속에 가려진 십자군 전쟁의 진실
    2006년 05월 03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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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을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할리우드의 오랜 소망이었다. 하지만 오래 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이었다. 우선은 그 규모를 온전하게 영화로 담아낼 자신감을 가진 감독이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폴 버호벤 같은 감독들이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십자군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단지 규모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딜레마는 십자군 그 자체에 있었다. 십자군은 히틀러의 일생만큼이나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민감한 소재다. 영화 속에 십자군을 도대체 어떻게 그려야 할까.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찬 이상주의자들로 그리면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슬람권역에서 반발할 것이다. 그렇다고 십자군이 저지른 학살이나 만행을 그대로 재현하면 기독교 진영의 반발과 아울러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백인들과 기독교 문명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역사를 왜곡하자니 양심에 걸린다. 이런 문제를 비켜가면서 십자군의 실상을 영화로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도 서방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십자군이라는 단어를 자유와 정의를 위한 구원 행위로 사용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로 진격하면서 동맹군을 21세기의 십자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슬람권역에서는 십자군이라는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무슬림들에게 십자군은 ‘공포’를 의미한다. 천년전 학살과 죽음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지금도 십자군과 그들의 상징이었던 붉은 십자가는 사회적 금기가 됐다. 부시가 동맹군을 십자군에 비유했을 때 미국에 우호적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한 적십자의 상징이 이슬람권역에서는 붉은 초생달로 바뀐 것도 단순한 종교적 이기심의 표현은 아니었다.

이런 배경을 보면 십자군 전쟁을 영화로 옮긴다 해도 잘 만들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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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를 만들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택한 전략은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로 줄이고 스펙터클을 통해 논란을 비켜가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리들리 스콧은 갈등구조를 단순화 시켰다. 십자군 내부에서는 착한 십자군과 나쁜 십자군이 대립하고 용맹한 이슬람은 나쁜 십자군을 물리친다. 착한 십자군은 용맹한 이슬람과의 대결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용맹한 이슬람의 무장 살라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이 단순한 구도는 서방과 이슬람, 기독교계와 관객, 영화사와 평단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역사극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라마가 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지만 영화 속의 이야기는 모두 꾸며낸 것들이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운명도 모두 재조정됐다. 예를 들어 시빌라 공주는 영화 속에서 권력관계의 희생양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 발리안을 두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인 기 드 루지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보면 시빌라는 그런 청순가련한 여인이 아니라 권력에 적극적이었던 여걸로 보두앵 4세의 왕위를 이은 자기 아들 보두앵 5세가 9살의 어린 나이로 숨지자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 드 루지와 정략결혼을 하고 여왕이 된 인물이다.

   
▲ 주인공 발리안의 모델이라고 이야기되는 인물은 있지만 영화 속 발리안의 과거와 현재는 100% 창작이다.
 

감독은 당시 이슬람 병사들의 신발 하나까지 고증하면서 재현했지만 정작 역사적 사실들은 과감히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관객들이 컴퓨터 그래픽 대신 엑스트라를 대거 동원하면서, 다시 말해 엄청난 제작비를 써가면서 만들어낸 중세 전쟁 장면에 매혹되기를 바랬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했는지 영화는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일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광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픽션이라는 사실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대의 관객들은 십자군 전쟁에 대해 ‘낭만’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십자군 내부의 암투는, 그러니까 예루살렘 왕국 내부의 암투는 현대 정치의 권력암투로 투영된다. 이를 보면서 관객들은 ‘정치란게 원래 그렇지 뭐’라는 식으로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 십자군이라는 집단이 알고 보면 꽤 합리적인 집단이었다는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보두앵 4세나 발리안이나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티베리아스 같은 온건파들도 따지고 보면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침략군의 온건파일 뿐이다. 온건파들이 이슬람과의 공존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침략군이라는 그들의 본질과 침략과정에서 저지른 학살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런 맥락을 모두 잘라낸 채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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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십자군 전쟁에 대해 궁금해진다면 김태권 작가가 지은 <십자군 이야기>를 읽어보자. 아직 2권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고 따라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이 다루고 있는 시대까지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곧 나올 책에서는 영화 속의 인물들의 실제행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도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어차피 역사란 해석되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작가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다. 가령 김태권 작가는 초기 십자군 전쟁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를 과도할 정도로 노무현 정권에 비유했다. 서로마라는 ‘외세’와 내부의 수구보수세력 사이에서 개혁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알고보면 알렉시우스도 십자군이나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바티칸의 교황만큼이나 음흉한 인물이었다.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 십자군이 자력으로 점령한 것으로 짧게 언급된 니케아 공방전의 경우도 사실은 십자군이 성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알렉시우스가 성안의 권력자들과의 뒷거래를 통해 십자군의 뒤통수를 치고 먼저 성을 차지했다.

십자군 전쟁동안 이유도 모르면서 학살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십자군이라는 이름에 자유도 신념도 낭만도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이런 내용을 배제한 채 그저 영웅적인 전투장면 만을 보여주기 바쁜 영화다. 그러나 그런 영웅은 역사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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