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항쟁 뒤의 오늘
    2018년,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책소개]『나쁜 사마리아인들(특별판)』(장하준/부키)
        2018년 07월 28일 12: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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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우리말로 번역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성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한 대중 경제서였다. 당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근사한 구호 아래 신자유주의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런 조류에 역행해 신자유주의 담론이 얼마나 허약한 역사적·이론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고, 그것이 추천하는 무역 자유화·외국인 투자 자유화·민영화·보수적 재정 정책 등이 얼마나 경제 전반에 해로운가를 보여 주려고 했다. 이 책이 강조한 것은, 이런 정책이 가난한 나라들에게는 더더욱 안 좋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부자 나라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할 때는 그들이 현재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쓴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장하준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30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계속 유지된다면 대규모 경제 위기, 나아가 제2차 대공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1980년대의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와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외환 위기로 이어진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곱씹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를 피하려면 보호 무역과 산업 정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부자 나라들이 이제는 자유 무역을 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을 멈추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어지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자국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면 경기자들 간의 수준 격차가 좁혀지고, 그 결과 경기장을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이 더 이상 불필요해지는 날이 보다 쉽게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국방부 불온도서 23종을 지정하다

    난데없이 2007년 한 해에만 1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도서 목록에 올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불온도서라는 발상 자체도 시대착오적이었지만 그 이유 또한 어처구니없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 책은 반미,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반정부 도서였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미국 초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비롯해서 미국의 경제 사상과 경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록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가 취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그런 정책을 후진국에 강요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특정 정부, 특정 정책에 반대하는 것일 뿐 미국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자본주의라는 이유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지지하는 책은 아니었다. 또한 이 책은 무분별한 시장주의가 지나친 불평등과 경제 불안을 가져와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시장을 적절히 규제하고 복지국가 등 사회 통합적 정책을 펴는 것이 사실은 자본주의를 더 잘 지키는 책이라고 지적했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를 지키려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책이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추천하는 대부분의 정책은 ‘보수’를 자임하는 세력에서 그렇게도 신격화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했던 정책이다. 그러니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자본주의적이라면 박정희도 반자본주의자인 셈이었다.

    2008년 9월,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하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최대은행 BNP파리바은행은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을 이유로 자사의 자산유동화증권 펀드에 대한 자산가치 평가 및 환매를 일시 중단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며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장하준이 『나쁜 사마라아인들』에서 경고한 바로 그 위기가 불과 1년여 만에 발생한 것이다.

    이 재앙은 따지고 보면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었다. 정부 소유의 기업과 금융 기관들을 민영화하고, 금융 및 산업 부문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국제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하고, 소득세를 인하하고 복지 지출을 줄인 결과였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적한 대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자유 시장 정책은 금융 위기 전부터 대부분의 나라에 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부자 나라들에서는 막대한 신용 확대 조치로 이 문제를 덮어 왔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임금 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노동 시간은 늘어난 현실은 신용 확대에 힘입은 소비 붐으로 눈가림해왔다.

    가난한 나라들이 당면한 문제는 한층 더 심각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 국가들의 생활수준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1인당 성장률은 3분의 2가 떨어졌다. 2008년 금융 위기는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한 이야기가 잘해야 부분적으로만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린 말이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2018년,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특별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가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로서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관계는 10년 전과 유사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는 ‘갑질’, ‘양극화’라는 말이 유행한 것처럼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했던 일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신자유주의자들은 일시적으로 몸을 사렸다. 세계화와 시장 자유화 덕분에 끊임없이 번영하는 경제 체제가 만들어졌다고 자랑하던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잠깐, 2011년 유로권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자들은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유로권 위기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생산성이 낮은 취약한 경제에서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 침체로 세수가 감소되고 그로 인해 재정 적자가 늘어나서 생겼다. 그런데도 유럽연합, IMF 등 돈줄을 쥐고 있는 세력은 재정 적자의 이유가 이들 나라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라면서, 재정 지출의 급격한 삭감,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정부 채무 상환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사이에 정부 구제 금융으로 회생한 금융 기업들은 다시 로비를 해서 새로 도입된 금융 규제에 물타기를 시도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폐허로 만들었나?

    현재 세계 경제는 얼핏 보기에 2008년 금융 위기에서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회복은 진정한 회복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 등 몇몇 선진국에서 보이는 경제 성장은 저금리와 양적 팽창을 통한 거품 경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실업률 감소도 구직 포기자와 자영업자의 증가에 따른 것이며, 그나마 새로 생긴 일자리도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임시직이 대부분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한 세대 전과 비교해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미국 같은 경우에는 20세기 초반 이래 최악의 불평등도를 보여 주고 있다. 고삐 풀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빚어낸 이런 결과는 바로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선출, 유럽 각국의 반이민을 내건 극우파 정당의 득세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이른바 ‘뒤처진 사람들(those left behind)’의 분노의 가장 큰 원인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는 더욱 취약하다.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고성장으로 시작된 석유, 광물, 농산물 등 1차 산품 가격 인상으로 벌어들인 돈을 산업 발전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고(이에는 정부 개입, 특히 산업 정책을 백안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의 영향이 크다), 그 결과 중국 경제가 감속하고 선진국이 금융 위기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암초에 부딪힌 나라들이 많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고, 남미와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였다. 외환 위기는 사실상 김영삼 정부 때 이루어진 지나친, 그리고 지나치게 급격한 금융 자유화의 결과였지만, 국내외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국가주도형 경제 모델 때문이라고 호도하면서 적극적인 개방, 민영화, 규제 완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금융 시장의 변화에 따른 기업 투자의 부진, 경제 계획의 폐기에 따른 신산업 개발의 정체가 일어났다. 고용도 불안해졌다. 비정규직 비율은 OECD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공공복지 지출은 GDP 대비 10%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두 번째로 낮다. 육아, 교육 등에 대한 보조도 미비하니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생계 곤란과 사회 안전망 약화로 자살이 급증하여 1995년까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던 우리나라 자살률이 이제는 평균의 세 배 수준으로 단연 1위가 되었다.

    우리 안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누구인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전 세계 독자를 겨냥한 책이므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여기서 부자 나라를 강자로, 가난한 나라를 약자로 바꾸면, 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예컨대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부자 나라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만일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따랐다면 지금 렉서스를 수출하는 국민이 아니라 누가 뽕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국민이 되었을 것이다. 장하준에 따르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자유 무역이라는 것은, 브라질 축구 국가 대표팀과 열한 살 먹은 그의 딸 유나의 친구들로 구성된 축구팀의 경기나 다름없다. 지식 수준이 다르고, 기술 수준이 다르고, 자본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하준은 그런 논리를 따른다면 그의 여섯 살 난 아들 진규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게 그랬듯이, 강자는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사회를 강화하는 한편 약자에게는 ‘노오력’으로 경쟁력을 키우거나 현실을 인정하고 패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이런 논리는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촛불 이후 1년, 신자유주의의 폐허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악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복지 지출도 늘리려 하고 있다. 중소기업, 벤처 기업 등을 지원하며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정책으로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사회 문제들을 풀기에는 태부족이라고 장하준은 주장한다.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산업 정책의 부활과 획기적인 복지국가의 확대를 요구한다. 우선 정부, 기업,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과연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부 정책, 기업 전략 등이 필요한지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산업 정책을 하면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지금도 대규모 산업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미국 정부는 재빨리 개입해서 자동차 산업에 대대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구조조정을 하였고, 그 이후에도 각종 첨단 산업 발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복지 제도가 모든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복지 제도를 통해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고, 실업 보험, 재교육 등을 확대해서 실패를 해도 재기할 수 있게 해 주면, 노동자들이 더 진취적이 되어 신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직업 선택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이 신속해지고 신산업 창출이 더 쉬워져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미국에 비해 1.5배가량 큰 복지국가인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미국보다 경제 성장이 빠른 이유는 그들이 이룬 복지국가가 생산 지향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촛불 혁명은 더 공정하고, 다 같이 잘 살고, 미래에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이런 열망이 더 절실해진 것은 외환 위기 이후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불공정하고 잔인한 데다 역동적이지도 못한 나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런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는 정책들로는 부족하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 경제, 사회 체제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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