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공화국은 유통기한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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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3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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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은 됐어!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에서 부활한 문익환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벌써 수립되었다. 한미 FTA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이미 체결된 FTA에서는 벌써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미 벌써 장군님과 재벌들이 앞서서 ‘남과 북의 체제를 상호 존중’하여 남북협력사업을 하고 있고,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남은 건 메이드 인 코리아Korea를 Corea로 바꾸는 것일 뿐, 연방공화국 치하 남북한 지역정부의 상호존중, 꼭 ‘운동권’이 안 나서도 잘 되고 있다. 물론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므로 연방공화국 수립의 주장이 복벽주의는 아니겠다.

    하지만 1876년의 주장을 1948년에 반복해서는 진보라고 하기 곤란한 것처럼, 2008년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다가온 것은 진보의 과제가 아니며, 다가온 것을 바탕으로 다음 과제를 도출해 내야 한다.

    남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입장변화, 그리고 북핵의 처리 과정이 좀 남았지만 북미수교의 기운은, 한반도에게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강하훈련 중인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북한군을 상대로 한 중무장군에서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신속배치군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사진=뉴시스)
     

    대북 강경파 이회창 신당은 재벌보다 약하니, 약간의 진폭은 있을지언정 대세가 뒤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건, 세상이 아버지 세대 때와는 달라졌다는 건, 미스터 부시, 미스터 김, 미스터 이(혹은 정, 최, 구 등등)도 잘 안다.

    진보정당은 ‘재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재영의 글 「남북경협, 지금 시비 걸어야 한다」(2007.10.16. <레디앙>)는 표층 아래의 징후를 잘 포착하고, 이 시대 좌파의 과제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당연한 원칙은 남북 민중의 이해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우리가 아는 만큼, 그리고 해야 할 만큼 남북 민중을 위해 지금의 남과 북의 체제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찾는 것이다. 물론 남한의 진보정당이므로, 활동 기반이자 변혁의 직접적인 대상인 남한에 대한 접근과, 활동 기반이 없는 북에 대한 접근의 격이 같을 수는 없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개선할 점을 찾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북이데올로기’를 벗고 북한의 현황을 보았더니 과연 정말로 비판할 게 하나도 없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면 알아내서라도 비판할지언정, 더 이상 ‘현황을 몰라서 비판을 못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삼성 이씨나 현대 정씨 등 ‘왕조집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소위 자주파든 평등파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층도 남한 재벌과 자본주의의 생리를 잘 아는 우리의 이러한 조언과 비판을 경청하리라 믿는다.

    일제와 싸운다고 다 진보는 아니다. 우리 안에 있을 복벽주의와 결별하고, 진보의 유통기한이 지난 ‘상호 체제를 존중하는 연방공화국’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진보를 업데이트 해야 한다.

    아제국(亞帝國)의 진보정당에게 민족은 곧 아시아 민중이다

    세계13위의 한국경제는 이주노동자 없이 굴러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과, 한국 자본의 동남아시아 진출상은 한국이 제국주의 질서의 중간보스급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진보정당도 식민지 조국이 아니라, 랭킹 13위의 중견 깡패 국가의 진보정당이 된 것이다.

    중간보스가 우두머리에게 대들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이 상황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저항’이 일말의 진보성을 가지려거든, 우리가 억압하는 아시아 민중들이 납득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구호와 목표를 제시해야만 한다.

    또, 그럴 때에야, 미국의 종속에서 ‘바람직하게’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놈들 몰아내기 위해서, 그래서 그럴 힘을 키우기 위해서, 아시아 민중들을 더욱 괴롭히거나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못 본 채 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어선 안 된다.

    따라서 ‘태양민족’과 ‘우리끼리’라는 표현은, 따라서 앞으로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의 민족은, 최대한 좁게 잡아도, ‘아시아 민중’이다. 하여 한반도를 넘어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관성적으로 “으응, 국제연대 당연히 해야지”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2008년의 진보정당은 개성과 해주의 노동자, 안산의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아시아 민중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설계도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주아시아 미군을 어쩔 것인가?

    오보 논란의 ‘2사단의 순환배치군’ 전환 문제가 아니어도, 작전권 환수, 기지의 평택 이전 등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성격이 변하는 중이다. 주한미군의 존재를 북한에서 용인할 경우, 남한사회에 존재했던 기존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은 크게 세 갈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이남의 민족주의자의 도리를 다하여 계속해서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이겠다. 둘째는 소위 동북공정 등, 중국의 대 한반도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서 필요하므로 남북정권의 어느 정도의 ‘관리’ 아래에 놓이면 상관없다는 ‘관리주의’가 있겠다. 그리고 위의 두 입장과 목표는 달리 할지 몰라도, 실천적으로는 환경피해 복구 및 범죄근절 차원의 활동은 같이 하게 될 온건파 혹은 부문운동 세력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군도 자선사업을 하러 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주한미군은 ‘북한을 봉쇄하고 이남 혁명을 가로막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동아시아보다 약간 넓은 범위에서의 미국의 이해관계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역시 새 시대의 진보의 업데이트에 큰 변수가 된다. 준비하지 않으면 ‘자주와 평등의 두 수레바퀴’는 할 말이 없어지거나, 바라보고만 있게 된다. 아시아 민중의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끼리만 싸우려고 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은 한반도에 편재된 주아시아미군이 다른 지역에 파견될 경우이다. 국군의 이라크 파병 반대하듯 파병에 반대하여, 계속 남한에 주둔하라 할 것인가? 아니면 나가는 것은 환영하니 일단 나가되, 파병지로 가지 말고 본국으로 철수하라 할 것인가?

    최악의 경우는 중국을 견제하는 주아시아 미군의 후원아래, ‘노동착취’나 ‘공공성 왜곡(인프라 투자는 세금으로, 수익은 재벌이!)’ 이 벌어지는 남북경협 방식이 북한 전역으로 퍼질 때이다.

    “민중과 혼연일체가 된 조선노동당이 묵과하고 있을 리 없으니 착취일 없어”라며 자기최면 속에 바라보고 있거나(‘사교집단 종북파’) -, 환경이나 노동권 차원에서 개선할 지점이 보여도 “조선노동당이 그렇지 뭐”, “남의 나라 일이므로 개입하기 애매하군”이라며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혐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무능한 평등파’)?

    자주와 평등은 특수와 보편

    자주는 통일운동, 평등은 노동운동을 해왔고, 자주는 민족 문제, 평등은 계급 문제에 강하므로, 서로 분업을 하면서 좌우 동거의 당을 해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전략 아닌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기계적 분업을 넘어서 새 시대에 맞게 유전자를 통합하고 전략을 업데이트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 후반의 남한의 대미 종속적인 특수한 조건에 주목해서 나온 것이 ‘자주파’의 과제였다. 그러다 보니 한 때 든든한 모범사례라고 생각한 북한에 대해서 과도한 편향성을 보인 일부 집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국가보안법의 탄압 때문에 ‘음지’에서 활동하던 방식이 합법대중정당에서 심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한편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전개과정에서 한국사회의 보편적 조건과 과제를 중시한 것이 평등파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소 추상적이었고 실천보다는 이론논쟁에만 강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겠다.

    ‘종북’이나 ‘패권’은 버려야 할 것이지만, 특수와 보편은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북’이나 ‘패권’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본인이 듣기 싫어하는 이름으로 부르기 보다는, 특수와 보편을 버무린 새 시대의 진보의 좌표를 제시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못 따라오는 이들을 아쉽지만 두고 가더라도, 일단 먼저 제시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비대위여, 빠른 시일 내에 새 시대의 진보의 좌표를 제시하라. 총선 이전에 국민들에게 선보여야 한다.

    비대위 뿐만 아니다. 탈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신당파나, 신당파를 분열주의자들로 여기는 구당파나, 모두 자신들의 진보의 좌표를 제시해야 한다. ‘반종북’과 ‘반패권’을 넘어서는 대안이 무엇인가? 여태까지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이나 저항적 민족주의가 미래에도 고스란히 그대로 유효한가?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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