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선배에게,
    30년 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노회찬 추도- 4]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추도사
        2018년 07월 27일 03: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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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국회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에서 낭독한 김호규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의 추도사이다.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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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올려집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체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을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져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할 수 있는 나라를 꿈 궜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사진=곽노충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 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데 발걸음마다 나즈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 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추모 물결의 다양한 모습은 선배가 있었기에 볼 수 있는 자발적인 장면입니다

    선배님!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자유롭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 가슴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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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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