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한다"
    [노회찬을 추모하며-3] 그의 마지막 길, 추도식
        2018년 07월 27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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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그 시간까지,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진보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바로 세우는데 모든 것을 털어 넣겠습니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보정당 대표의원,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무대 위 대형스크린 속 노 원내대표가 말을 이어간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 새벽 4시 6411번 버스에 몸을 싣는 투명인간들의 이야기다.

    아들 딸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빌딩을 드나들지만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로 불립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 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이들은 9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으로 모르고,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진보정당, 수많은 투명인간을 위해 존재할 때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분들에게 투명정당이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말하지만 이분들이 필요할 때 우리는 손에 닿는 곳에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정당, 이게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 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이분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손에 잡히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1700석 규모의 대강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원내대표의 생전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듯 했다. 더 아래로 향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바꾸고자 했던 그 ‘꿈’을 우리 모두가, 그가 되어 실현하겠다는 침묵의 다짐이 오가는 순간이었다.

    젊은 층부터 흰 머리가 지긋한 중장년층까지, 남자와 여자,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과 멀끔한 양복은 입은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사람,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추도식을 찾았다. 노 원내대표와 민주노동당 때부터 함께 해온 강기갑·권영길·단병호 전 의원, 유시민 작가와 그의 16년 지기인 배우 박중훈 씨, 생전 마지막 순간 그의 축하를 받은 김승하 KTX 해고 승무원이 맨 앞자리에서 노 원내대표를 추모했다. 1700여석 자리가 부족해 야외 스크린으로 추도식을 함께 한 시민들도 1천여 명에 달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추도식 현장엔 1시간 전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도식으로 향하던 한 시민은 “그와 같은 정치인이 또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대강당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러 노 원내대표의 사진 앞에 국화꽃을 놓고 고인을 추모했다.

    “노 대표님께서 만나면 늘 장미꽃 한 송이를 주셨다.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오늘은 제가 국화꽃을 드리게 됐다”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미화 씨는 그의 생전 영상을 본 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추모 묵념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스크린 속엔 밝은 표정으로 두 손을 번쩍 든 노 원내대표가 보였다.

    상임장례위원장인 이정미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핼쑥한 얼굴의 이 대표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는 듯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다시 입을 앙다물었다가 어렵게 추도사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노회찬은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 되기까지, 누구나 존엄한 평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길벗이었습니다.

    노회찬을 보고, 많은 분들이 진보정치의 아이콘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노회찬은 홀로 빛나는 별이 되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할 고단하고 약한 사람들의 곁에 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정의당은 영혼이었고, 생을 다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그는 정의당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저는 노회찬의 꿈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정의당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더 단단해 지고 굳세져야 합니다. 노회찬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재벌 권력에 맞서는 ‘기백’을 잃지 말고, 일하는 사람들과 약자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투혼’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인간성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웃음’이 돼야 합니다.

    정의당은 수천 수만의 노회찬으로 부활하여 반드시 한국 정치를 바꿀 것입니다.

    노회찬의 뜻을 지지하면서도 노회찬을 찍을 수 없게 만드는 낡은 정치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회찬 없는 국회’를 계속 견뎌야만 합니다. 죄 없는 시민들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도록, 노회찬이 헌신했던 약자와 일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젠 정치 제도 개혁에 함께 해 주십시오. 그럴 때 노회찬은 분명히 우리 정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는 서정주의 시에 노 원내대표가 음을 입힌 ‘소연가’를 추모곡으로 불렀다. 노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 때 해고됐던 이들과 함께 싸웠었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도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며 두 손을 잡아주던 고인이 떠오른다며 힘겹게 노래를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는 노 원내대표에게 보내는 편지로 추도사를 대신했다. “다음 생에 또 만나요”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는 유시민 작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믿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 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잘가요, 회찬이 형.

    유 작가가 슬픔을 겨우 억누르는 모습으로 고인에게 작별을 고하자 강당 곳곳에선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안해요”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뒤이어 박중훈 씨, 김승하 KTX승무지부 지부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소선합창단의 추모노래 모습

    김승하 지부장은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을 축하한다는 노 원내대표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으며 “이 말씀을 육성으로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투쟁, 4526일 그 시작과 끝에 함께 해주신, 저희들에겐 항상 따뜻한 삼촌 같았던 분”이자 “소수 약자를 위해 싸우며 강자와의 싸움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았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끝으로 “노회찬 의원이 남기신 뜻, 세상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겠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항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 모습을 기억하고 그 뜻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노 원내대표와 50년 지기 친구인 김봉룡 씨, 경기고등학교 친구 장석 씨,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함께 했던 임영탁 씨, 그의 마지막 지역구인 경남 창원시 주민 배정란 씨도 무대에 올라 그의 생을 다시 짚어냈다.

    김봉룡 씨는 “중학생 노회찬은 때 묻지 않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우리들의 친구, 우리들의 반장이었다”고 1971년의 중학생 노회찬을 기억했다.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고인의 평생의 꿈을 남은 자들이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의당 당원 여러분들, 노회찬이 못 바꾼 새까만 불판, 이제 여러분이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

    임영탁 씨는 “평생의 반려자였던 김지선 선배님, 함께 진보정당의 깃발을 지켜온 정의당 당원, 우리 모두 함께 한 천명, 만 명의 노회찬으로 부활하는 꿈. 그것이 바로 노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믿는다”며 고인의 꿈을 함께 이루자고 말했다.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심상정 의원이 마지막 추도사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장식했다. 심 의원은 무대에 올라선 후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의원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파하실 때 우리 대표님이었으면, 따뜻한 유머 한마디로 거꾸로 위로했을 텐데 제가 그런 재주가 없네요. 여러분께서 많이 사랑하시고 정말, 멋진 정치인, 우리의 지도자 노회찬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이어 그는 “저희는 늘 대화를 침묵으로 한다. 침묵이 믿음이고, 위로이고, 이심전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하면서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번뇌의 나날을 지새웠을 대표님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하며 끝내 오열했다.

    심 의원은 “‘나는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라’라고 말했지만 저는 노회찬 없는 정치, 생각해본 적이 없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꿈이고,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라고 믿는다. 끝가지 우리 대표님과 함께 가겠다. 우리 대표님이 이루고자 했던 꿈, 여러분들과 제가 꼭 이루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도식은 생전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곡인 ‘그날이 오면’을 함께 부르며 끝났다.

    장례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국회 영결식이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이며 ‘진보정당의 영원한 조직실장’이자 그의 동지였던 오재영 보좌관도 지난해 같은 곳에 안치됐다.

    27일 장례식장을 나서는 노회찬의 모습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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