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극악해지는 혐오댓글,
‘혐오표현 규제법안’ 목소리 커져
    2018년 07월 25일 06: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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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 이어 다자녀 가정에 대한 혐오댓글이 논란이 되면서 ‘혐오표현 규제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는 이 법안은 지난 2월 발의됐다가 동성애 반대 단체에 의해 보름 만에 철회된 바 있다.

혐오표현 규제법안 제정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사건은 지난달 16일 연합뉴스TV에서 방영한 인터뷰 ‘나라가 애 키워준다?…다둥이 가족의 속사정’에 혐오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자녀 가정의 부모가 다자녀 가정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없다는 고충을 털어놓은 내용의 인터뷰였지만, 포털 사이트를 통해 보도된 기사엔 “그냥 다 싸질러놨네. 정부 믿고 애 낳음?”, “햄스터냐”, “다가족 보면 대부분 부모들이 미개하다” 등의 인터뷰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혐오 댓글이 달렸다.

7남매를 키우고 있는 김진아 씨는 참다못해 결국 혐오 댓글 67건에 대해 추려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혐의로 24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이 후에도 김 씨 가족들에 대한 혐오는 멈추지 않고 있다. 김 씨가 고소한 악플러 중엔 심지어 고소장을 접수했다는 기사에 ‘꼴에 골고루 하고 자빠졌네’라는 댓글을 또 다시 달았다고 한다.

김 씨는 2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 댓글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을 때, 고소장에 쓸 때, 볼펜을 몇 개를 부러뜨리고 종이를 찢어버렸다.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지나가는 예쁜 강아지를 누군가 막 발로 밟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7남매가 혐오댓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돼 기사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16살이 된 첫째가 혐오댓글을 신고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용기를 냈다.

김 씨는 “저희 아이들이 이미 그 기사를 다 보고 댓글을 다 캡처를 해놨더라. 아이들이 그 댓글들을 저한테 주면서 ‘엄마, 이거는 신고해야 합니다’, ‘엄마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 여기서 이거를 그냥 멈추고 있으면 이 사람들 우습게 생각하고 다음에 다른 사람들한테 또 이런 식으로 댓글을 달 것이다’라고 해서 (고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씨는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며 “지금 댓글을 단다고 해서 이게 다 끝인 줄 아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당신의 손가락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날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시민사회단체 ‘정치하는 엄마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엄정수사를 촉구했다.

‘정치하는 엄마들’ 조성실 공동대표는 “최근 안희정 전 지사나 이재명 지사 관련 기사나 예멘 난민 기사, 혜화역 시위 기사, 퀴어퍼레이드 기사 등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성인도 읽기 힘든 수준이다. 내 아이가 글을 읽게 되는 게 두려울 지경”이라며 “정부가 혐오표현을 방치함으로써 혐오문화가 조장되는 이상 혐오표현구제법이 조속히 재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대다수의 유럽 국가와 캐나다, 뉴질랜드에는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 법규가 있다. 일본은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막기 위해 2016년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했고, 독일에서는 망명 신청자를 하등 동물에 비유하면 처벌 받는다. 캐나다에서는 동성결혼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배포하면 벌금형에 처해 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지난 2월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혐오표현 규제법안’과 국가인권위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들은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혐오표현을 한 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법원은 피해자를 위해 혐오표현 중지, 원상회복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으며, 혐오표현이 악의적인 경우 손해액의 2배에서 5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의 반발로 발의 보름 만에 철회됐다. 차별금지법 역시 혐오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기독교 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혐오표현을 방치하고 사실상 혐오표현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정부와 국회가 혐오표현규제를 포기한 사이 혐오댓글의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혐오표현을 방치함으로써 혐오문화를 조장한 정부는 공범자”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혐오댓글 피해자들의 삶이 망가지고, 혐오문화 속에 아이들의 영혼이 좀 먹고 있는데도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며 “대통령은 혐오표현과 혐오문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단호히 천명하고, 국회는 혐오표현금지법을 재추진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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