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령의혹, 폭력사태, 강제해산
    플랜트노조 충남, 무슨 일 벌어졌나?
    4,000여명 조합원 상경 민주노총 앞에서 집회 개최
        2018년 07월 20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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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 기록적인 폭염에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 조합원 4000여명이 빽빽하게 모여 앉았다. “조합원 동의 없는 충남지부 해산은 무효”, “교섭권을 돌려내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었다. 일용직이 대부분인 이들은 이날 하루 밥벌이까지 포기하고 서울로 올랐다.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2007년에 충남지부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우리 선배들이 동네에서 어렵게 노조를 만들고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 투쟁해서 그렇게 현장도 바꾸고, 단협도 따냈는데…지금 새로 만들어진다는 충남지부엔 조합원은 하나도 없어요”

    이날 집회에 참석한 충남지부의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플랜트노조는 충남지부의 해산을 결정했다. 일방적 결정이었다. 노조 집행부가 지부 해산이라는 커다란 결정을 내리기 과정에 조합원은 없었다. 특정 정당에 소속된 이들의 잘못을 덮어주기에만 급급했다. 노조 운영위의 지부 해산 결정 이후 만들어진 새충남지부 추진위원회엔 대부분이 회계부정과 폭력사태에 연루된 이들이 소속해 있다.

    사진=전국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

    조합비 3억원 횡령 의혹…‘통행세’ 의혹까지

    충남에서 일하는 플랜트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조직에서 지난 2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승우 충남지부 전 수석부지부장이 총 3억원의 조합비를 횡령했다는 의혹에 따라 진행된 특별회계감사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기로 한 자리에서 집단 폭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폭행을 당한 조합원은 안면이 함몰되고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민중당 충남도당 공동위원장인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이 2011년 충남지부 사무국장을 맡기 시작한 시점부터 조합비 문제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은 2016년까지 사무국장과 수석부지부장 등 쭉 요직에 있었다. 충남지부는 이 기간 중에 그가 3억 원 가량의 조합비를 유용하고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남지부에 따르면,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의 조합비 유용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계속 됐다. 2012년 12월경 지부의 A총무 명의의 개인통장이 개설된 후 조합비 통장에서 무려 1억 6천만원이 A총무의 통장으로 이체됐다. 이 돈은 격차를 두고 백 만원 단위로 인출됐다.

    2013년 3월 13일에도 조합비 약 1800만원이 통장에서 현금으로 인출된 후, 같은 날 이 돈은 또 다시 총무 A씨의 명의로 된 통장으로 입금됐다. 두 달 후인 5월 31일, A총무 명의의 통장에 있던 1800만원의 돈이 ‘이승우’ 명의의 개인 통장으로 600만원씩 두 차례, 6만5364원 한 차례 총 세 차례에 나뉘어 보내졌다.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은 당일 이 돈을 다시 500만원, 700만원, 40만원으로 나눠 자신의 다른 통장으로 송금했다. 열흘 후 A총무 명의의 통장은 폐기됐다. A총무는 특별외부회계감사에서 “통장을 만들어 도장과 비밀번호 등 모든 관리는 그가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충남지부는 지부에서 진행한 수익사업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충남지부 관계자인 A씨에 따르면, 투쟁기금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복분자를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진행했던 과정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복분자 생산자와 직접 계약을 해서 판매하지 않고, 경기도 성남의 한 인터넷 판매업체 B업체를 중간에 끼고 복분자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B업체는 개당 3~4천원의 수익을 남겼는데 당시 복분자를 판매해 지부가 벌어들인 수익이 억대였다고 한다. 더 이상한 점은 지부가 B업체를 끼고 구매한 복분자를 외부에 판매하지 않고 모두 지부 내 분회에 팔았다는 점이다. 분회에서 분회비로 대부분 물량을 구입하고 조합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A씨는 “지부 간부들이 투쟁기금이 모자란다고 수익사업을 하고 조합원들은 열심히 판매에 나섰는데, 그런 식으로 물품을 분회비로 다시 구입할 거였다면 차라리 분회비를 지부비로 돌리면 될 일이었다”고 말했다. 분회비를 지부비로 돌렸다면 복분자 구입 비용 등이 들지 않아 지부 차원에선 더 많은 기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군다나 지부가 당시 돈이 모자란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부가 복분자를 구입하고 분회에 판매해서 기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이득을 본 곳은 B업체뿐인 셈이다. 재벌 총수일가에서 벌어지는 ‘통행세’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손배가압류 대비해 차명계좌로 돈 옮겨놓은 것”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은 자신을 둘러싼 회계부정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이 의혹으로 지난 5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승우 전 수석지부장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제가 회계처리 맡았던 기간인 2012년 말까지의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 특별회계감사를 단행한 새 집행부가 횡령 금액이라고 밝힌 3억 원도 ‘부풀리기’라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에서 (횡령 의혹 금액이) 2억1500만원이었는데, 이에 대해 새 집행부는 아무런 해명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횡령 의혹 금액 2억1500만원 중 1억8000만원을 손배가압류에 대비해 별도의 통장에 옮겨놓았을 뿐인데, 새 집행부가 이를 횡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은 “현대제철 임단투쟁에서 제철 진입 투쟁을 했다. 현대제철은 국가 보안 시설이라 무단침입해서 손해가 발생하면 손배를 물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조합원 700명이 들어가서 펜스가 훼손됐고, 현장 관리자와 싸워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컨테이너 등 시설물도 파손됐다”며 “손배가압류가 들어올 것이라고 판단했고 기금형태의 돈을 별도의 통장에 옮겨 놓았다. (처음엔) 총무 명의 통장으로 옮겼다가 지부 내부의 간부와 논의해서 차명계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계감사 과정에서 이렇게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을 비롯해 이러한 논의를 하고 결정한 몇몇 간부의 진술 외에 회의자료 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투쟁기금을 차명계좌에 옮기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구했느냐’는 질문에 “경찰이 압수수색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런 자료를 남길 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사전 모의로 돼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투쟁전술 논의 자료는 남기지 않는다”고 답했다.

    손배가압류를 대비해 조합비를 조합원의 동의 없이 차명계좌로 옮기는 일은 노조 내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일까.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는 사업장이 많은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말이 안 된다. 일단 불법이고,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고 한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면 1억 8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이승우 전 수석지부장은 “2천만원은 학비노조 충남지부에 투쟁채권 발행해서 대출을 해줬는데 실수가 있었다. 채권에 대한 인수인계 못해서 채권이 없어진 상황”이라며 “당시 지부장에게 보고하고 빌려줬는데 임기가 끝나는 집행부라 운영위원 종무식 때 보고를 했다. 이것도 빌려준 흔적만 있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나머지 1500만원 중 일부는 당시 당진 지역 사업을 담당했던 부지부장이 카드로 사용한 금액이며 600만원에 대해선 소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계감사 결과 보고를 막기 위한 집단폭행

    김준수 지부장 체제의 새 집행부는 특별회계감사를 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다. 이에 따라 김준수 지부장이 지난해 3월 17일 대의원대회에 특별회계감사 안건을 올렸지만 지부 내 민중당 계열의 대의원들에 의해 부결됐고, 해당 대의원들은 김 지부장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김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재신임을 얻고 외부특별회계감사를 단행했다.

    2017년 말경부터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가 외부 특별회계감사팀을 꾸려 4개월 간 회계감사를 진행했다. 감사팀은 3억원에 달하는 조합비에 대한 횡령·유용이 의심된다는 감사결과를 내놨다.

    폭력사태는 올해 2월 24일, 회계감사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중간보고하기로 한 비상총회에서 벌어졌다. 비상총회가 열린 실내체육관의 무대 위엔 김 지부장과 총회 사회를 봤던 유승철 조직국장이 있었다. 회계감사에 반발한 일부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무대 위로 올라오려 했고 다른 조합원들은 이들을 말리면서 총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동시에 무대 뒤 쪽 출입구가 열리면서 조합원 19명이 유승철 조직국장을 집단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집단폭행을 당한 유 국장은 안면함몰, 코뼈골절, 전신 타박상을 입고 입원했다.

    충남지부 관계자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실내체육관에서 하는데 원래 무대 뒤 출입구는 잠겨 있다.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관리과에 문을 열어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 앞에서 시선을 돌려놓고 뒤에서 기습적으로 폭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날 총회는 중단됐고 회계감사 결과도 조합원들에게 보고되지 못했다.

    회계감사 결과는 그 다음 달인 3월 10일 비상총회에서 조합원들에게 보고됐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의 방해로 300여명이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회계감사 결과를 직접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이 지부의 설명이다.

    충남지부는 민주노총에 회계부정과 폭력사태를 일으킨 이들을 규율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플랜트노조, 회계부정·폭력사태 가담자 감싸기
    교섭권 회수와 지부 해산 결정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충남지부의 상급단체인 플랜트노조에서 회계부정, 폭력사태 가담자들에 대한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히려 회계감사를 단행한 새 집행부에 대한 해임과 관련된 징계를 의결한 것이다.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줘야 할 벌을 피해자에게 내린 셈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해임에 관한 징계는 총회 걸쳐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플랜트노조의 새 집행부에 대한 징계 의결이 노조법 위반, 상벌규정 위반이므로 무효라는 내용이다. 플랜트노조의 새 집행부 해임을 위한 ‘첫’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플랜트노조는 이후 충남지부의 교섭권을 회수해 ‘노조 무력화’를 시도했다. 충남지부에 따르면, 형식적으론 노조위원장에게 교섭권을 위임한 것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각 지역 지부가 교섭을 진행하고 체결까지 해왔다고 한다. 플랜트노조는 지부의 교섭권을 회수한 후, 지난 7월 2일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지부 해산’을 결정했다. 이날 운영위엔 회계부정과 폭력사태 가담자에 대한 징계 안건도 올라왔지만 이에 대한 결정은 유보됐다.

    지부가 플랜트노조에 의무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과 회계부정을 저지른 간부들을 제외하고 비상총회를 열고 비리 연루자 총사퇴 요구 등을 한 것, 이 두 가지가 플랜트노조가 지부 해산을 결정한 근거다. 비리 연루자 총사퇴 요구 등은 사실상 징계를 결정한 것인데, 징계의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플랜트노조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플랜트노조 운영위는 비상총회의 결정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충남지부가 낸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서 법원은 두 번 모두 충남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플랜트노조 운영위의 주장과 달리, 법원은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플랜트노조 집행부, 정파 이해관계 때문에?
    민중당은 ‘아직도’ 논의 중

    충남지부는 상식을 벗어난 플랜트노조의 결정 이면엔 ‘정파적 이해’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이종화 플랜트노조 위원장 등 집행부와 운영위원 구성원 모두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과 마찬가지로 민중당 당원이거나 민중당에 우호적인 이들이라고 한다.

    충남지부의 선전물을 보면, 이종화 위원장을 향해 ‘정파 놀음에 빠졌다’는 비판의 글이 많다.

    충남지부는 지난 5월 14일 노동절 특별호 선전물에서 “언젠가부터 노동조합의 상층간부를 장악한 소수의 민중당 계열 간부들로 인해 노동조합은 극심한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며 “분열의 핵심은 이종화 위원장”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종화 위원장은 올해 상반기에만 2차례나 노동조합의 상벌규정을 개정했다. 민중당 계열의 간부들에 대한 징계는 절차를 까다롭게 변경한 반면, 회계비리를 폭로한 지부장에 대한 징계는 쉽게할 수 있도록 바꿨다”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당 소속의 상층 간부들 몇몇이 밀실에서 조합원들 몰래 노동조합의 상벌규정을 뜯어고쳤다”고 했다.

    지부는 이보다 앞서 3월 ‘누구의 위원장인가?’라는 제목의 선전물에서도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이종화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면서 “(이종화 위원장은) 무엇이 두렵기에 위원장은 회계비리를 일삼고 집단폭력을 자행하는 자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위원장은 조합원인지, 민중당인지 선택해야 한다”며 “만일 위원장이 계속해서 본인의 소속정당을 지키고자 회계비리와 집단폭력을 옹호한다면 조합원들은 단호하게 노동조합을 선택하고 회계비리와 집단폭력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원 동의 없는 조합비 유용, 회계감사를 막기 위한 폭력사태, 이들을 옹호하기 위한 상급노조 집행부의 지부 탄압, 일방적인 지부 해산 결정. 조합비 횡령 문제는 개인의 일탈이라 치더라도, 그 이후 조합원들과의 어떤 소통도 없이 벌어진 지부 탄압과 해산 등은 모두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플랜트노조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사무실로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민중당은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이어져온 회계부정 사건에 대해 아직도,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자’, ‘논의를 해보자’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민중당 충남도당도 마찬가지다. 도당의 한 관계자는 “도당에선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입장 표명을 원한다는 문건을 보내 주면 논의해서 자료를 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견을 전제로 “(3억 회계부정은) 그쪽(충남지부)의 주장”이라면서도 “(회계부정을) 완전히 안했다고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3억의 규모 등 복잡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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