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기업 책임은 어디에?
문 대통령, 최저임금 공약 폐기 ‘사과’
“인상 환영할 일, 문제는 최임 줄 수 있는 사회 돼야”
    2018년 07월 16일 05:52 오후

Print Friendly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 폐기에 대해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4일 전원회의를 열고 2019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한 8350원으로 결정했다. ‘동결’을 주장했던 사용자위원과 ‘2020년까지 1만원’ 공약 실현을 강조했던 노동자위원 모두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원회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며 “최저임금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보수정당·언론 등의 최저임금 재심의 요구에 대한 거부 답변으로도 해석된다.

이어 “최저임금위원회는 작년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이어 올해에도 두 자리 수의 인상률을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의지를 이어주었다. 정부는 가능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서 이뤄지는 최저임금의 인상 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노사정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정부는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일자리 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조속한 후속 보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또한 근로장려세제 대폭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보완 대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언론·정당, 사실상 최저임금 1만원이라며 “최임 재심의” 요구

보수언론들은 올해보다 830원 더 오른 8350원의 최저임금이 사실상 1만원을 넘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자 <조선일보>는 최저임금이 2년 간 29%가 올랐다며 “대다수 근로자에게 의무 지급되는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최저임금은 1만30원에 달해 실질적인 최저임금이 1만원이 넘게 됐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도 “실질 최저임금 1만원…속도조절 없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주류수당을 합치면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는다고 주장했고, <동아일보>도 “내년 최저임금이 사실상 시급 1만원을 돌파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보수언론의 보도에 발맞춰 보수정당들은 문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재심의를 요구하고 있다.

홍지만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을 못 내고, 소상공인의 월 평균 이익이 근로자 평균 급여의 60% 선이며, 생산성은 4% 올랐는데 최저임금은 5배가 넘는 29%나 인상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분 조치를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하도록 조치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이날 낸 논평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에 매몰되어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등 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경제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자칫 ‘폭망’으로 갈 수 있다”며 “정부여당에 강력하게 최저임금 인상 재심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최임 개악 직접 영향 받는 노동자의 실질 인상률은 2%대
소규모·비정규 노동자 중심으로 임금 삭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장은 정부 내에서도 나온다.

일관되게 ‘속도조절론’을 주장해온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한국은행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조찬 회동을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경제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하반기 경제 운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지금 시장과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심리적인 마인드를 촉진시켜야 하는 측면도 있는데, 두 자리 수 최저임금 인상이 여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된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 인상률은 한 자리 수에 그친다는 것이 노동계의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전날인 15일 발표한 이슈페이퍼에서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인해 실제로는 한 자릿수 인상률인 9.8%에 불과하며 금액으로는 시급 8,265원”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공개한 ‘산입범위 확대 시 최저임금 실질 인상효과’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다.

특히 같은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 중 1~3분위에 속한 노동자의 경우 실제 인상률은 고작 2.4%, 금액으로는 시급 7,710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 개정안으로 인한 피해를 받는 노동자 10명 중 8명은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 소속이었고, 10명 중 거의 6명(58%)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악을 전후로 한 최저임금 영향률 변화 폭이 정규직(1.1%p)에 비해 비정규직(4.1%p)이 훨씬 더 컸다”며 “최저임금법 개악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미친 악영향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정부·국회·기업의 책임은 어디로…
중소영세상인과 노동자만 최저임금 영향 ‘독박’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요구 않는 보수정당들

보수언론·정당들은 ‘한 팀’처럼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영세소상공인들이 ‘범법자’로 몰리고 청년들이 ‘실업자’가 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조선>은 “급격히 올리면서 최저임금을 못 주는 업체, 결과적으로 위법 상태에 몰리는 사업주가 속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우려했고, 다른 2개 언론도 영세소상공인 단체가 최저임금 인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지만 대변인은 “요즘 언론 보도내용을 보면 소상공인의 피눈물이 주루룩 떨어지는 듯하다”며 “모두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철근 대변인 또한 “우리 경제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가장 많이 감당하고 있는 중소영세업자, 자영업자의 현실은 외면한 채 이렇게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경제현실을 모르는 무능이거나 높은 지지율에 취해서 대통령 공약을 지키기 위한 오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신용카드 수수료와 가맹본사 수수료 인하 등 중소영세업체의 경영난을 해결할 근본적 대책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재벌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 문제엔 함구하면서, 노동자 최저생계비 빼앗기만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임 인상은 환영할 일…문제는 최임 줄 수 있는 사회 돼야”
“인상도, 인상 속도도 다 괜찮다. 정부와 기업이 부담 나눠야”

중소영세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국편의점점주협의회(전편협)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전 동맹휴업을 예고했고, 이날 들어선 대규모 거리 투쟁까지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편협이 동맹휴업, 거리투쟁에 나서는 이유가 단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저임금을 도저히 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온전히 그들에게만 전가하는, 소위 ‘최임 독박’에 반발하는 것이다. 법 개정과 제도 정비에 손 놓고 있던 정부와 국회를 비롯해 사회적 책임은 안중에 없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항의인 셈이다.

성인제 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 ‘김호성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8350원이 되든 1만 원이 되든 모두 찬성한다. 저도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저희 자식들이 일하면서 정당한 시급을 받는 것을 환영한다”며 “문제는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야당 사이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성 공동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도 괜찮다. 괜찮은데, 다만 그 속도를 저희가 받쳐줄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제도,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짚었다.

전편협을 비롯한 영세소상공인 단체들은 천정부지로 솟는 임대료 문제나 불공정한 카드 수수료, 약탈적 가맹본사 수수료 문제, 과당경쟁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최저임금만 올리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성 공동대표는 “2018년에 급격하게 인상이 됐고 2019년도에도 어느 정도 오르리란 예상이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정부나 본사에서 ‘제도를 개선할 테니 힘들더라도 같이 하자’라는 그런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근접출점이라고 해서 같은 브랜드 간에는 거리 제한이 있는데 다른 브랜드에 거리 제한이 없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해결돼야 한다”며 “해결방법은 편의점 점수들이 부담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지만 정부와 각 프랜차이즈 본사의 제도개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계와 영세소상인단체 간의 대립으로 비춰지는 현 상황을 경계하며 “학생들도, 아르바이트생들도, 자영업자들도 현재 같은 절박함에 서 있다. (갈등이) 봉합이 됐으면 좋겠고, 여러 가지 제도와 각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적절한 제도들을 다 같이 손잡고 나아갔으면(해결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