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은 통일운동단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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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6일 0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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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존경해 오던 강정구 교수님의 1월 14일치 <프레시안>에 쓴 ‘종북주의, 그 실체가 있기는 한 건가?’란 글을 읽었습니다.

    각론을 보면 다 맞는 말씀인 것 같긴 한데 왠지 가죽 구두 위를 긁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강 교수님의 말씀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십니까

    1. 자주파와 평등파의 자주와 평등이라는 진보 이념이 공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외치며 분당을 부채질하는 게 정파의 패권 장악을 위한 난장판 놀음 아니냐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만 보면 맞습니다.

    2. 북핵 실험도 미국의 대북 압박에 따른 궁여지책이고 어쨌든 핵실험 덕에 정전협정 54년만에 평화협정 국면이라는 대전환이 이루어진 사실은 눈감고, 북핵실험에 대해 ‘유감’이라는 수준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한 것마저 종북이라고 매도할 거냐고 통박합니다. 이 논리만 따라가면 지극히 옳으신 말씀입니다.

    3. 일심회 당원 징계문제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적 존엄성이 없는’ 악법의 피해자를 진보주의자가 단죄한다는 게 수구꼴통의 억지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일갈하셨습니다. 고개가 수그려집니다.

    4. 마지막으로 코리아연방제 통일방안을 마치 북한식 사회주의 지향의 통일로 몰아붙이고, 종북이라는데 연방제야말로 유일한 평화적 통일방안인데 마치 종북주의의 증거물인 것처럼 등치시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준열하게 논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맞는 토론부터 해야지 특정 정치적 견해를 무슨 무슨 주의로 낙인찍는 건 정파적 이익에 근거한 종파주의만 남기는 일이 될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시기 힘든 말씀들입니다.

    일개 지엽말단에서 일하는 현장 활동가인 내가 강고한 내공을 갖고 있는 강정구 교수께 감히 반론을 한다는 게 외람되나 ‘격화소양'(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성에 차지 않거나 흡족하지 못하다는 뜻-편집자)의 느낌을 솔직히 고백해 볼까 합니다.

    패권 통해 관철시키고자 했던 노선

    우선 종북주의 논란의 핵심은 문제를 제기한 대다수가 그와 같은 공격적 표현을 통해 민주노동당 패권정파인 자주파의 반미통일근본주의 노선이 민생중심노선을 밀어냄으로써 당을 파산으로 몰아갔다는 걸 고발하려 한 정치적 시도였다고 봅니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민생중심노선이 유보되거나 심지어 형해화된 것은 당권을 장악한 자주파가 자민통노선을 강하게 밀고 들어온 데서 연유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서두에 다수파(자주파)의 패권에 대해 비판하시면서도 패권을 통해 관철하고자 하는 정치노선이 무엇이었던가는 애써 눈감으셨는데 ‘분당을 선동하는’ 논객들은 바로 그걸 종북노선이라고 본 것입니다. 종북주의로 표현되건 반미통일근본주의로 표현되건 이러한 노선을 관철시키려 했기에 패권과 결합해 있었습다

    자주파가 반미통일근본주의 노선을 숭상하든 주체사상을 숭상하든 그건 그들의 권리입니다. 다만 이걸 남한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을 하겠다는 민주노동당에서 구현하려 한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지난 대선과 같은 참사를 입은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다 알게 된 것인데 자주파는 민주노동당 각종 의결과 집행 기구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패권 정파입니다. 이들 자주파의 종북 구심이 자신의 노선을 폐기하지 않으면서 민주노동당에 기거하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종북주의’라는 날선 표현을 빼어들게 한 것 아닐까요?

    북핵 실험에 대한 일면적 인식

    강교수님이 북핵 실험과, 일심회, 통일연방제 등 각각 지적한 내용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통일운동단체가 아니라 유권자의 지지를 통해 성장하는 합법적인 대중정당인 한 각각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습니다.

    즉 북핵 실험은 북미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한 국민도 당사자인 문제입니다. 한반도 남반부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을 하는 민주노동당이 지지를 얻어야 할 대상은 남한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당사자인 국민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적 핵실험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했고, 이런 선명한 입장을 지렛대로 미국의 대북봉쇄를 때렸어야 했습니다.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 보니 ‘친북’ 이미지가 고착되고 일심회 같은 사건에 대해 전혀 면역력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북핵 실험으로 평화협정 국면이 열렸다는데 진보정당의 인식이 이렇게 일면적이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부시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한 것으로 이해하는 부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은 균형잡힌 시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브레히트의 말로 대신한다면 ‘개인의 눈은 하나, 당의 눈은 천 개. 당은 일곱 개의 국가를 보고 개인은 하나의 도시를 본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견지해야 할 태도였던 겁니다.

    정당이라면 민심을 읽고 ‘반응’해야 합니다. 민심은 양극화에 고통 받고 있으며 주택, 교육, 의료, 일자리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민심이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선거 공약 전체를 포괄하는 국가 비전이라면서 ‘코리아연방’을 내세웠습니다.

    괜히 ‘패악질’이라는 표현 나왔겠나

    안 그래도 친북이니 뭐니 하는데 주택, 교육, 의료, 일자리 공공성을 앞세우는 사회국가 전략과 같은 걸 내세우기는커녕 고려연방제 이미지가 강한 ‘코리아연방’이라니요? 그것도 통일 공약이 아니라 국가비전으로 내세운 것은 방향 착오로 한참 착오란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맞는 토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홍세화 선생이 ‘종북, 패권’을 언급하고, 이덕우 당의장이 자주파의 ‘패악질’이라는 극언을 쓸 때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이 왕시 ‘항소 이유서’에서 “이 시대는 가장 온유한 사람을 가장 열렬한 투사로 만든다”고 전두환의 학정에 대한 저항의 정당성을 한마디로 압축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갖은 비난을 일거에 잠재우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온화한 성품, 성찰적이고 기품 있는 글쓰기로 유명한 홍세화 선생이 자신이 쌓아 온 명성에 걸맞지 않은 말까지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자주파가 합리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맞는 ‘토론 주체’도 아니라고 본 탓입니다. 따라서 사태의 원인은 비판자들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계신 게 아닌지 존경하는 강교수님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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