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내셔널가 부르려면 저작권료 내야할까?
        2006년 04월 28일 0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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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오늘은 메이데이.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해방을 향한 영원한 투쟁을 선언한다. 이 때 반드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인터내셔널가”다.

    인터내셔널가는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걸까?

    인터내셔널가의 아버지는 파리꼬뮌에 전사로 참여했던 프랑스인 외젠 포티에Eugene Pottier다. 사회주의자였으며 운수노동자였고, 시인이었던 그가 파리꼬뮌을 기념하기 위해 1871년에 쓴 시가 노래의 기원이 됐다. 당시의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시를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불렀다. 그러던 중 1888년 역시 프랑스인인 피에르 드제이테Pierre Degeyter가 곡을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내셔널가의 멜로디는 이때 처음 생겨났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노래는 아닌 셈이다.

    드제이테는 곡을 만들면서 운율 등을 고려해 가사를 일부 수정했다. 따라서 포티에가 파리꼬뮌의 시기에 쓴 원작 시는 그 이후 프랑스 안에서도 점차 잊혀졌다. 지금은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부른 인터내셔널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참여했던 제1인터내셔널의 주제가가 됐다. 그러나 첫 번째 인터내셔널은 이 노래가 나온 다음해인 1872년에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분열로 인해 사실상 문을 닫았다.

    드제이테가 새로 곡을 붙인 인터내셔널가는 1889년 두 번째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자 즉각 사회주의자들의 찬가로 채택됐다. 이후 유럽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75종이 넘는 다양한 가사가 존재

       
    ▲ 1900년대 인터내셔널가 악보의 표지

    아마 ‘생일축하’노래 정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불려지는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일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사들이 존재할 정도다.

    가장 많은 것은 영어로 된 인터내셔널이다. 영국에서만 두 가지의 다른 가사가 존재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수입된 가사를 부르다가 전국단일노조 운동을 벌였던 아나코생디칼리스들인 IWW가 1900년대에 만든 새 가사가 표준이 됐다. 이외에도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르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영어가사가 존재한다.

    이처럼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서로 가사가 다르고 특히 인터내셔널의 영어 번역은 구어체의 문장과 딱딱한 단어들의 남발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영국의 좌익 뮤지션인 빌리 브랙Billy Bragg은 1990년 미국의 저명한 포크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와 함께 새로운 영어 가사를 만들었다. 쉬운 단어와 현대영어에 맞춘 가사로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영국에서는 빌리 브랙의 새 가사가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나이 많은 좌익들을 제외하고는 새 가사로 바뀌는 추세라고 한다.

    이외에도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모두 대여섯개 이상의 다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 프랑스 가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고,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집어넣으면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에스파냐어의 경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라는 지리적 차이 때문에 가사에 변형이 생기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어 가사는 하나뿐이다. 망명 중인 레닌이 초기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해 ‘공인’한 이후 아무도 가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레닌의 권위 때문이었는지 당에 대한 공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한글 가사도 3개나 있다

    일제시대-북한 가사의 후렴에는 ‘판갈이 싸움이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판갈이’ 구호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일어나라 저주로인 맞은
    주리고 종된 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 넘쳐
    결사전을 하게하네.
    억제의 세상 뿌리 빼고
    새 세계를 세우자.
    짓밟혀 천대받은 자
    모든 것의 주인이 되리.

    [후렴]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우리를 구제 못하라
    우리는 다만 제 손으로
    헤방을 가져오리라
    거세인 솜씨로 압박 부시고
    제것을 찾자면
    풀무를 불며 용감히
    두드려라 쇠가 단김에

    [후렴] 반복

    우리는 오직 전세계의
    위대한 로력의 군대
    땅덩어리는 우리의것이니
    기생충에게는 없으리
    개무리와 도살자에게는
    큰 벼락 쏟아져도
    우리의 머리 우에는
    찬란한 태양이 비치리

    [후렴] 반복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글로 된 가사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어, 우리말로 된 인터내셔널가가 또 있다고?’하며 놀라겠지만 한국어 인터내셔널가는 모두 3종류다.

    우선 일제시대에 ‘인터나쇼날’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첫 번째 가사가 있다. 정확히 인터내셔널가의 한글 번역이 언제 이뤄졌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대략 1922년 일본어 가사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추정된다. 한글 가사와 일어 가사는 서로 내용이 달라 일본가사를 번역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일본 가사의 특이한 후렴구조가 한글 가사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일본가사를 참고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지금도 북한에서 불려지고 있다. 다만 제목은 ‘국제가’ 또는 ‘국제공산당가’라고 한다. 주로 의전용으로 사용되며 북한 민중들이 일상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전쟁을 통해 좌익과 이에 연관된 모든 것들이 분서갱유 당했기 때문에 ‘인터내셔널가’는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 80년대 들어 민중음악 활동가들이 외국에서 악보를 다시 들여오면서 복원됐다.

    처음에는 영어 가사를 직역한 듯한 노래말로 매우 투박한 인상이었다. 제목도 “역사의 새 주인”이었다. 이후 보다 매끄럽게 한글 가사를 다듬은 노래가 전노협 시기 노동운동 노래패를 통해 보급됐다. 이 가사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다.

    인터내셔널가의 어두운 면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해방, 국제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가 항상 영광 속에서만 불려졌던 것은 아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20세기 초반까지 대다수의 나라에서 인터내셔널가는 금지곡이었다. 이에 상관없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집회와 모임에서 노래를 합창했지만 이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1917년 혁명 이후 인터내셔널가는 소비에트연방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틀러와의 전쟁 중인 1944년 이 노래 대신 새로 만든 ‘소련찬가’를 국가로 삼았다. 인터내셔널가의 국제주의를 소련찬가의 애국주의로 교체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코민테른(제3 인터내셔널)을 해체했다.

    그 이전인 1935년 모스크바는 프랑스 공산당에 프랑스어 인터내셔널가 중 군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구절을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프랑스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소련이 프랑스 군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전 세계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에게 국제주의와 국경을 넘어선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다. 이념은 달라도 사회민주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모두 이 노래를 부르지만 때로는 이념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지금도 공산당원들과 사회당원들이 서로 다른 가사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른다. 칠레 사회당과 공산당의 인터내셔널가도 조금 차이가 있다.

    인터내셔널가와 얽힌 비극적 기억 중의 하나는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사건이다. 당시 광장에 모여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들은 운동가로 이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1980년 서울의 봄 때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들이 많은 사람이 아는 고향의 봄이나 애국가를 부른 것과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학생들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노동자 군대의 각성’을 노래하다 인민해방군이 보낸 탱크에 희생됐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인터내셔널

       
    ▲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포스터

    인터내셔널가는 워낙 많이 알려진 노래고 또 노동운동과 좌익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만큼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나 기록 영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인터내셔널가가 자취를 감췄다고 했는데 한번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65년 개봉된 영화 <닥터 지바고>에는 1분 정도 이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장면이 있다. 아마 전쟁이후 인터내셔널가가 남한에서 공공연하게 공개된 첫 번째 사례이겠지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챈 사람은 그리 만치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혁명을 취재한 미국의 공산주의자 언론인 존 리드의 삶을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시종일관 이 노래가 흘러나와 인터내셔널가를 배우는 교재로는 딱 안성맞춤인 영화였다. 그러나 워런 비티 같은 인기스타가 나오고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은 영화임에도 1981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국내개봉은 못했다.

    인터내셔널가가 가장 인상적으로 사용된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국제여단의 전사들이 파시스트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동지를 묻으며 장송곡 대신 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제주의라는 노래의 테마를 이보다 더 잘 살려낸 장면은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을 수 있는 영화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에어포스 원>이다. 해리슨 포드가 테러리스트 잡는 대통령으로 나온 이 ‘무협영화’를 보면 러시아에 체포된 카자흐스탄의 독재자 장군이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 감옥 안의 죄수들이 독재자를 위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반북집회에 모인 우익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격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카피레프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터내셔널가는 좌파의 노래고 오래된 곡이니까 저작권과 상관없이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 노래는 지금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인터내셔널가는 2014년까지 저작권을 보호받는다. 이 노래를 작곡한 피에르 드제이테는 1932년 사망했다. 작가의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을 인정하는 프랑스 법에 의해 2002년까지 보호를 받지만 두차례의 세계대전동안의 기간을 제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2014년까지 보호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프랑스의 한 영화 제작자가 이 노래를 사용하기 위해 1,000유로를 지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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