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은 ‘수구’다
[에정칼럼]기후변화와 국가의 의무
    2018년 07월 09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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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와 장마, 태풍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여름에 우리가 경험해왔던 날씨이지만, 매년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기온이 상승하고 그만큼 많은 양의 수분이 함축되면서 태풍의 규모가 커지고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 지역에 집중호우를 일으켜 홍수 피해가 커진다는 것이다. 2100년에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수가 2배 더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태풍만이 아니다. 지금 상태로 지구 평균온도가 2도씨 상승할 경우 10억에서 20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1,000만 명에서 3000만 명이 식량 부족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3,000만 명이 홍수 위험에 노출되며, 폭염으로 매년 수십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

방송화면 캡쳐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극지방의 얼음 속에 동결돼 있던 병균이 살아나면서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으며, 한반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쯤 되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닌 국가가 위기의식을 갖고 획기적이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최근에 발표된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 수정(안)’을 보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종합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이 3도씨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 중 한국의 목표는 애석하게도 “매우 불충분하다”는 평가였다.

이번에 발표된 기본로드맵은 매우 불충분한 목표를 그대로 둔 채 불가능했던 국외 감축량을 국내 감축량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상화된 목표대로 온실가스감축 로드맵이 시행될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 피해의 대부분은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노인, 어린이, 질병 질환자 등과 가난한 계층, 그리고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예멘 난민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을 피해 다른 국가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난민 문제가 이미 기후변화에 취약한 가난한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기후변화로 물 부족과 식량 부족, 홍수, 폭염, 전염병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는 그 곳을 떠나는 것뿐이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 만들자”는 국가적인 논의가 한창이다. 저출생율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에 관한 논쟁도 활발하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은 뒤로 하고, 현재 태어나고 태어날 사람들이 살아갈 국가와 지구, 우리가 물려줘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한 대책은 등한시하면서,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2016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국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대해서 5점 척도에 평균 2.64점으로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강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민들은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84.6%로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시민들은 이미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다만 바뀌지 않은 곳이 있다면, 바로 정부다. 정치권력은 바뀌었지만,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온실가스감축 로드맵 등 계획과 계획을 수립했던 정부 관료 및 전문가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의 몰락과 김종필의 죽음으로 우리는 ‘수구세력의 종언’을 목격하고 있다. 언론인 고 정운영은 “지킬 것을 지키는 게 보수이고, 버릴 것을 버리는 게 진보이고, 버려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수구다”라고 일갈했다. 버려야할 온실가스감축 로드맵을 지키는 것은 수구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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