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일본에서 기록된 우리 노동운동의 미래
    2006년 04월 28일 08: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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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자동차 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규모나 매출에서 한 도시를 먹여 살릴 만큼 거대하며 모 재벌그룹의 중심기업이기도 하다. 이 공장은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탄생한 노동조합이 있다. 이 노동조합은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공장 안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비정규직들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

여기까지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공장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다.

도요타 자동차 공장은 도요타시에 있다. 회사이름과 도시 이름이 같은 걸 보면 공장이 있는 지역 이름에서 회사 이름이 유래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지역사회에서 도요타 공장의 영향력이 거대해지면서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던 도시가 아예 이름을 공장이름과 같은 도요타로 바꿔버렸다. 이름만 기업과 일체가 된 것이 아니다. 64년 도요타 자동차의 총무부 차장이 시장에 당선된 이후 줄곧 회사 사람이 시장과 시의회를 차지하고 있다. 시 재정의 90%는 도요타 공장과 관련 기업의 세금으로 채워진다. 이름처럼 완벽한 기업도시를 이루고 있다.

도요타에는 노동조합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 들어온 미군이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하고 또 권장하자 일본전역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당시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것은 주로 공산당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노조 결성과 일상활동, 교섭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기업별 노동조합을 선호했다. 의식적으로 산별노조를 만들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지만 전쟁 후 열악한 경제조건에서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 황폐화되고 이런 불만이 노동쟁의로 폭발하자 노조 지도부는 당장의 투쟁에 용이한 조직 형태를 선호했다.

도요타 자동차 노동조합도 300명이 넘는 공산당 활동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도요타 노조는 1950년 4월, 회사의 인원감축과 임금인하 방침에 반발해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기록에 보면 “공장 안에는 적기가 나부끼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2달에 걸친 도요타 파업은 조합의 패배로 끝났다.

사측은 노동조합과 정면대결하지 않고 조합을 분열시키는 방법을 썼다. 노조에 소속된 중간관리직을 이용해 조합안에 ‘재건동지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공산당 지도부에 대해서는 미군정을 등에 업고 탄압했다. 결국 공산당원 활동가들의 대량해고와 함께 파업은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노조는 재건동지회의 손에 넘어갔다. 일본 노동운동사에 기록된 도요타 파업의 끝이면서 이후 일본 민간 대공장에 만연하는 노사협조주의 노선의 시작이다.

도요타의 경우 기존 노조를 회사가 장악한 꼴이 됐지만 다른 자동차 공장들, 예를 들어 이스즈나 닛산의 경우는 49년 개정된 일본 노동법의 새로운 조항,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를 활용했다. 회사가 사측과 친한 조합원들로 따로 ‘제2조합’을 만들고 단협이나 임금 등에서 기존 노조와 차별을 두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빼와 전투적인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만약 도요타도 노동조합이 더 완강하게 버텼다면 재건동지회는 ‘제2조합’으로 발전 했을 것이다. ‘제2조합’은 어용노조의 일본식 이름인 셈이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일본 민간부분 노동조합은 그 뿌리를 40년대말~50년대 초에 결성된 제2조합에 두고 있다. 일본 노동운동의 뿌리 깊은 노사협조주의 노선의 출발점이다.

도요타 안에는 정규직인 본공 외에 비정규직인 임시공, 기간공(계절공), 양성공 등이 있다. 노동조합은 본공 만이 가입할 수 있다. 1956년 시작된 임시공은 1961년에는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여기에 양성공이나 기간공을 더하면 정규직인 본공은 공장 안에서 ‘소수’인 셈이다.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특권일 수밖에 없다. 또한 도요타는 출신이나 지급별로 노동자들을 조직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여직원은 중졸자, 고졸자, 대졸자 별로 각각의 여직원회에 가입된다. 선택이 아니라 회사가 편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현장은 완전하게 회사의 통제안에 놓기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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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절망공장>은 저자 가마타 사토시가 1972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바로 이 도요타 공장에서 계절공으로 일한 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공활’ 기록인 것이다.

원래 르뽀 전문의 자유기자인 필자는 스스로 “지옥의 나날”이라고 표현한 반년간의 기간직 노동자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도요타가 왜 절망의 공장인지, 현장의 문제, 노동조합의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계절공 모집 공고에 응했다. 그러나 일기의 초반은 취재는 고사하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모든 노력과 시간을 다 바치는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할 뿐이다.

“자동적으로 회전하는 생산수단으로서의 컨베이어 벨트는 ‘살아있는 노동력을 지배하고 흡수하는 죽은 노동으로서’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본의 권력’으로서 노동자를 지배하고 있다.” 경영학 교과서에 ‘도요타식 생산체계’라고 기록돼 있는 속도 중심의 이 생산합리화 시스템을 분석하기 위해 저자가 인용한 문구는 마르크스의 <자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본 현장의 처절함이 바로 ‘분석’이 됐다. 따로 마르크스의 글귀를 인용하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잘 아는 조장 중에 양 손가락이 다 잘려서 얼굴도 못 씻는 자가 있어요. 물이 다 새어나가 버려.”
“프레스에서 미끄러져서 말야. 턱이 끼어버린 사람이 있어. 그래서 얼굴이 그만 없어져버린 거야.”
“기간공 중에는 끓는 물에 빠진 자가 있었어. 떠올랐을 때는 이렇게 부어올라서 터질 것 같았어.”

이런 끔찍한 작업환경과 현장 노동자들이 서슴없이 ‘살인라인’이라고 부르는 컨베이어 생산라인의 이동속도와 노동강도의 증가, 특히 회사가 생산량 증대를 위해 서서히 컨베이어 속도를 증가시키면 그 속도에 맞춰 자기 몸의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하는 현실에 대해 노동조합은 왜 눈을 감고 있는 걸까.

저자와 함께 도요타에 들어온 한 계절공의 말이다. “여기는 노조가 글렀어. 그러니까 닛산보다 더하지. 따지고 보면 노동자가 그른 거지.” 한 정규직의 말도 인용해 보자. “도요타는 정말 잘 되어 있어요. 뭐든 미리 알고서 선수치고 있으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구요.”

저자는 계절공으로의 ‘잠입’을 마치고 이번에는 르뽀기자의 신분으로 다시 도요타를 찾았다. 그리고 계절공으로서는 접근도 할 수 없었던 노동조합건물을 찾아갔다. 건물 사진을 촬영하는 그에게 노동조합의 부위원장과 회사 보안계가 나타나 왜 마음대로 사내를 촬영하느냐고 따진다. 이에 대해 “노조는 회사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노조사무실이 공장 안에 있고 파업중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출입 할 수 있다”고 저자가 항의하자 부위원장은 깜짝 놀라며 “우리 조합은 파업 따위는…”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현장의 통제가 완전히 회사로 넘어갔고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이 아니라 노무관리체계의 한 부문으로 전락한 공장에서 파업은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단어였던 것이다.

* * *

이 책은 33년 전이 1973년에 출간됐다. 번역본이 나온 것은 지난 1995년이다. 내 기억으로는 번역 출간된 이 책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노동운동 단체의 기관지 등지에 서평이 몇 번 실린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지금은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책이 됐다.

1995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살인적인 노동에 대한 공감은 있었겠지만 강한 현장통제력을 지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일본의 노동운동은 볼 것이 없구나 하는 식의 감상이 주를 이뤘다. 아직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라 계절공이라는 신분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당시 이미 시작된 대공장 사측의 현장장악 노력과 비정규직의 증가에 주목했던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만의 ‘절망공장’을 이곳저곳에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일본 민간기업자본이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해체시키기 위해 복수노조라는 무기를 가지고 대응한 기간이 10년이라고 한다. 100년의 지배를 위해 자본은 10년을 참고 공작을 전개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의 노동운동은 노동과 자본이 뗄 수 없는 형제 사이라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됐다.

우리도 당장 내년에 노동현장의 환경이 급변하게 된다. 지금은 마땅한 대책도 없이 그저 다가오는 시간만 바라보고 있다. 내년에 전임자 임금지급이나, 복수노조 시행, 그리고 이에 따른 교섭환경 변화가 찾아와도 노동현장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놓고 역시 그간의 우려는 단지 기우였을 뿐이라고 지레짐작 해버린다면 10년 뒤 우리 노동운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공장이 절망적인 것은 그곳의 노동이 절망적이어서가 아니라 절망적인 노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망을 이기는 희망에 대해 지금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33년 전 과거의 기록은 우리 미래의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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