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대나물’ 이름의 유래 논쟁
    [푸른솔의 식물생태]우리 이름 찾고 기록하려던 이들
        2018년 07월 06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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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나물이란?

    전국의 양지바른 밭이나 길가에 자라는데 늦여름이나 가을에 발아해서 봄에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풀이다. 보통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데 날씨가 맞으면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너무 춥거나 더워 기온이 맞지 않으면 꽃잎을 닫은 상태에서 자가수정을 하는 폐쇄화를 통해 열매를 맺고 씨앗을 산포한다(사진4 참조>. 제대로 꽃을 피운 개방화의 경우에도 수술 아래에 암술을 위치하여 이른 계절에 매개 곤충이 오지 않으면 꽃가루가 아래 암술로 떨어져 자가수정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사진2 참조).

    ​광대나물은 이처럼 유성생식을 통해 다양한 유전자을 가진 적은 수의 자손을 만들기보다는 폐쇄화를 통한 자가수정을 해서라도 엄청나게 많은 자손을 만들고 퍼뜨림으로써 내부의 경쟁을 통해 종(species)의 생존을 이어가는 전략을 취한다.

    <사진1> 겨울에 꽃이 핀 광대나물의 모습(경남 중부)

    <사진2> 개화한 광대나물의 꽃의 모습(경남 중부)

    <사진3> 한 겨울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광대나물의 모습(제주도)

    <사진4> 한 겨울 꽃문을 열지 않은 폐쇄화의 모습(경남 중부)

    <사진5> 날씨가 더워질 때 폐쇄화로 열매를 맺은 모습(경기도 분당)

    <사진6> 광대나물 씨앗의 모습(경기도 분당)

    광대나물 이름의 유래

    ​(1)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한 논쟁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은 옛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일제강점기하의 몇 문헌에서 그 이름이 보인다. 조선식물향집(1937)에 의하여 이름이 정리된 이래 추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꽃이 피는 모양이 울긋불긋한 것이 광대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해되고 있다(이와 같은 취지의 견해로 허북구/박석근, 한국의 야생화 200, 중앙생활사, p33 참조).

    광대는 훈몽자회(1527) 등에 기록된 옛말도 현재와 같은 광대(또는 광ᄃᆡ)이다. 가면극, 줄타기, 재주넘기와 판소리 등을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말한다. 때로는 연극 등을 위해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을 말하기도 하고 탈춤을 추려 할 때 얼굴에 쓰는 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광대나물이 길가나 밭가에 흔한 것만큼이나 광대라는 명칭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광ᄃᆡ나물’이라고 처음 기재한 모리(森)는 그 이름의 유래를 밝혀두지 않았다. 나물이라는 명칭이 의심스럽다. 광대나물을 먹었다거나 먹을 수 있다는 기록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일본과 중국에도 그리고 광대나물이 분포하는 러시아를 포함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기록은 눈에 띄지 않는다…(중략)…광대나물이란 한글명은 느닷없이 산지 숲 언저리에 사는 광대수염을 참고로 해 생겨난 이름으로 추정된다. 한글명 광대수염은 춤추는 광대 꽃(踊子草, 용자초)이란 뜻인 일본명 오도리꼬소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 생태, p349/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동일한 내용을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음)

    위 글에서 모리(森)는 경성제국대학의 예과(생물과) 교수를 역임한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1921년에 저술한 ‘조선식물명휘’라는 책을 지칭하는 것이다. 어쨌든 광대나물은 일본명에서 왔다는 것인데 맞는 이야기일까?

    ​(2) 광대나물은 조선식물명휘에 최초 기록된 이름일까?

    植木秀幹, “朝鮮の救荒植物”, 朝鮮農會(1919) p30 참조

    먼저 ‘광ᄃᆡ나물’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기록한 것을 찾아보면, 위 저자 주장과 달리 모리 다메조(森爲三)의 조선식물명휘(1921)가 아니다. 그보다 앞서 그보다 앞서 조선농회에서 1919년에 발간한 ‘조선의 구황식물’에 ‘광ᄃᆡ나물’이 기재되어 있고 유용한 구황식물로 사용한다는 점이 명기되어 있다.

    (3) ‘광대나물’은 나물로 식용한 기록이 없는가?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의 ‘조선의 구황식물’에 유용 구황식물로 ‘광ᄃᆡ나물'(광대나물)을 기록하였음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더불어 광대나물이 일본명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저자가 언급한 모리 다메조(森爲三)의 조선식물명휘(1921)에도 한글명 ‘광ᄃᆡ 나물'(광대나물)을 기록하면서 구황식물로 식용한다는 뜻으로 ‘救'(구)를 명기하고 있다.

    森爲三, “朝鮮植物名彙”, 朝鮮總督部(1921) p301 참조

    林泰治, “著救荒植物と其の食用法”, 東都書籍(1944) p169 참조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그것을 식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비단 ‘조선의 구황식물’이나 ‘조선식물명휘’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일본인 야스하루 하야시(林泰治)가 저술한 ‘구황식물과 그 식용법'(1944)에서도 비록 일본어로 표기되었지만 조선명으로 ‘コアンタイナムル'(한글 재구성 : 광대나물)을 기록하였고, “3월경, 새싹 잎을 데쳐서 나물로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혹시 이들 저술은 일본인 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 적은 것이므로 일본의 풍습을 조선에 강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하여 국립수목원이 최근 실제 전국을 조사하여 기록한 “한국의 민속식물”을 살펴보면 현재에도 지역에 따라서는 광대나물을 식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전통지식

    ​전라도 : 부드러운 새순을 뜨거운 물에 데쳐서 우려내고 나물로 무쳐 먹는다.
    경상도 : 어린 순을 데쳐서 양념해서 먹는다.
    충청도 : 봄에 어린잎을 겉절이, 초무침, 쌈, 국으로 먹고, 삶아서 나물로 먹는다.

    <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 국립수목원간(2013) p794 참조>

    이처럼 광대’나물’은 조선식물향명집(1937)이 저술될 당시에도 식용을 하고 있었고, 현재에도 식용을 하고 있는 식물이다. “광대나물을 먹었다거나 먹을 수 있다는 기록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이 오히려 근거가 없다.

    ​(4) 광대수염은 일본명(踊子草)에서 온 것일까?

    위 저자에 따르면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기록된 꿀풀과의 또 다른 식물인 광대수염은 춤추는 광대 꽃(踊子草, 용자초)이란 뜻인 일본명에서 왔다고 한다. 광대수염<Lamium album L. subsp. barbatum (Siebold & Zucc. ) Mennema (1989)>의 일본명이 오도리코소우<オドリコソウ, 踊(り)子草>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일본어 오도리코<オドリコ, 踊(り)子>는 직업적으로 춤을 추는 여성 무희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말 ‘광대’는 훈몽자회(1527)등 중세 국어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면서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행위’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춤추는 여성 무희와는 다른 관념의 용어이다.

    ​나아가 오도리코소우<オドリコソウ, 踊(り)子草>라는 식물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踊子草で花の形が笠をかぶって踊る人に似ているのでいう”(용자초에서 꽃의 형태가 삿갓을 쓴 踊人과 비슷하다고 하여 된 것이다)라고 해설하고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大橋廣好외 2인 편저, ‘新牧野日本植物圖鑑(NEW MAKINO’S ILLUSTRATED FLORA OF JAPAN)‘, 北隆館(2008) p648 참조). 즉, 꽃의 모양이 춤추는 여성 무희가 일본 전통적으로 쓰는 삿갓의 모양과 같은 것에서 유래한 이름인 것이다.

    <사진7> 일본 전통 오도리코<踊(り)子>가 쓰는 삿갓과 광대수염의 꽃(사진 출처 : 小石川植物園の樹木 http://www.geocities.jp/kbg_tree/odoriko/odoriko.html)

    ​​우리의 ‘광대’는 일본명의 오도리코<オドリコ, 踊(り)子>의 전통복장에서 사용하는 삿갓을 쓰지 않으므로 일본명에서 오도리코소우<オドリコソウ, 踊(り)子草>에서 광대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광대나물의 일본명은 오도케노자< ホトケノザ, 仏の座>로서 부처님의 자리라는 뜻이고, 이것에서 광대라는 관념이 형성될 리도 없다.

    ​​​(5) ‘광대’라는 말이 들어간 우리 식물명은 없을까?

    광대나물 자체가 옛 문헌에 기록된 이름은 아니라는 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1802년에 이가환·이재위 부자가 저술한 물보(物譜)는 싸리가 아니면서 싸리와 닮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광대ㅄ.리”라는 이름을 등재하였고, 1824년(추정)에 저술된 유희의 물명고(物名考)는 백작약 종류로 꽃이 화려한 것에서 착안하여 ‘광대쟈약”(광대작약)이라는 이름을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광대나물의 ‘광대’와 유사한 쓰임이 있는 식물명은 우리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식물명 ‘광대나물’의 유래를 왜 관념으로도 연결하기 어려운 일본명에서 찾는 것일까?

    (6) 소결론(‘광대나물’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국립수목원이 최근 실제 전국을 조사하여 기록한 “한국의 민속식물”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 – 지방명

    광대노물/광대싸리/광대쟁이/구실냉이/몰고개/장구태노물/장구재비(전남방언)
    광대나물(경남방언)
    감밥나물/광대사리/꽝우리나물(충남방언)

    <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 국립수목원간(2013) p794 참조>

    위 방언조사에 따르면 광대나물 또는 광대나물과 유사한 방언은 여러 지방에서 발견된다. 즉, 지방명 조사에 따르면 광대나물은 우리의 민간에서 부르던 우리의 고유 이름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백번 양보해서 광대나물을 식용(나물)로 사용한 기록이 우리 문헌에는 없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래서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이 정확한지 의심이 들었다고 가정을 해 보자.

    위 저자에 따르면 나물을 사용한 기록은 일본, 중국과 러시아에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나물로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그 의심스러운 ‘광대나물’을 어떻게 일본명에서 유래하였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을까? 그러한 엉성한 논리로 저술한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로 불리우는 곳에서 검색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통할 수 있는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러한 논리로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면 그것은 왜곡되고 뒤틀어진 것이고 취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근대 식물분류학이라는 과학의 기초 위에서 우리의 식물명을 기록한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저자들은 서두의 사정요지에서 “‘數十年間(수십년간) 朝鮮 各地(조선각지)에서 實地 蒐集(실지 수집)한 鄕名(향명)을 주로 하”여 책을 출판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이 과학을 일본과 일본인으로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식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이름을 기록하기 위하여 실제로 수십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개별적인 식물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를 찾을 때마다 국권이 침탈된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버리라고 강요되던 바로 그 시점에서 우리의 이름을 찾고 기록하고자 하였던 그 정신과 노고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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