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장애인 30여명, 한강대교서 노들섬까지 기어가
        2006년 04월 27일 10: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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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님, 저는요 방안에서 살기 싫어요. 만약 누가 나보고 바깥에서 죽을래, 방안에서 죽을래라고 물으면 바깥에서 죽고 싶다고 할거에요. 나는 여기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좀 힘들지만 이렇게 해서 활동보조인이 제도화된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요 전…”

    무리라고 생각했다. 경찰들이 가만히 지켜만 볼 것이라고도 생각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한강대교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화장실조차 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30여명이 휠체어에 타지 않은 채 맨몸으로 한강대교의 300여m를 기어서 건넜다.

       
     
    ▲ 한강대교 난간에 붙어있는 중증장애인의 요구사항들.
     

    39일째 서울시청 앞에서 활동보조인을 제도화하라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70여명의 중증장애인이 노들섬에 가보겠다고 나섰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 7,000억원이나 들여서 만들 오페라하우스에 맨몸으로 어떻게 갈지 몸소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경찰의 제지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다수의 연행자도 생길 것이라고 예상됐다. 실행에 옮기는 날인 27일 오후 1시. 이들은 한강대교 부근에 위치한 전국철도노조 서울본부에 집결해 대장정에 나설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무릎과 팔꿈치에 보호대를 동여매고 신발도 고쳐신었다. 기자에게 등산화 끈을 고쳐매달라고 한 중증장애인이 부탁해왔다. 두 번을 묶었다. 그 중증장애인이 한번 더 묶어 달라고 했다. 한시간 뒤, 세 번이나 꽁꽁 맨 신발끈은 어느새 풀어헤쳐져 있었다.

    철도노조 서울본부 앞마당을 가득 메운 70여명의 중증장애인 중 10명은 ‘활동보조인 제도화하라’라고 적힌 글판을 목에 매고 차도를 점거하기로 했다. 휠체어에서 안내려도 된다. “(휠체어에서)안내리실 분?”이라고 외치는 활동가의 질문에 손을 드는 사람이 안보인다. 모두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고 싶다고 했다.

    나머지 30여명은 휠체어에 쇠사슬을 묶었다. 경찰이 연행을 시도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간을 끌어줄 것이라고 했다.

    약속의 시간인 2시를 조금 넘긴 2시 10분경. 한강대교 200m지점에 도착했다. 휠체어 70여대가 전차선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30여명의 중증장애인이 분신과도 같은 휠체어에서 내렸다. 기어가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이러니 욕먹지” ,  “장애인이 겪는 불편은 상상도 못해”

    “수천억의 예산을 들여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페라는 커녕 영화 한 편 보는 것 조차 힘이 듭니다. 수십년을 시설과 집안에 갇혀 짐승처럼 살아왔습니다.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활동보조인을 제도화해달라고 40일을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시장은 아직까지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활동보조인 제도화는 시기상조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 건지 몸소 보여주려 합니다. 활동보조인 없이 우리가 집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 한 중증장애인이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너던 중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5분도 채 안되어서 무릎이 까지기 시작했다. 10m도 가지 못했다. 기습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행진에 경찰도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분이 지나서야 20여명의 교통경찰과 전경들이 도착했다. 경찰 관계자들과 협의하에 1개 차선을 내주기로 했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신들이 이런 식이니까 욕먹는거야”라며 쇳소리도 들렸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대해 우리도 죄송하다는 생각을 안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장 30분이 발이 묶여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을 우리는 평생 안고 살아왔습니다.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에요. 예전엔 가족들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해왔죠. 이젠 더 이상 가족에게 죄인처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지 않아요. 시민들은 우리의 요구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20분이 지난 2시 30분부터 경찰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행진 대오의 앞뒤 반경 약 10m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배치됐다.

    우려했던 연행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노들섬까지 행진을 보장해주겠다고 경찰측과 합의했다”고 귀뜸했다.

    박영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기어서 다리를 건너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손님이 오면 전 늘 구섞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기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든 모습이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시간 행진 강행에 3명 탈진, 구급차 실려가

    1시간이 지났다. 수십명의 비장애인들이 우려에 가득찬 표정으로 중증장애인들의 ‘자기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기어서 행진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계속 (행진을)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모두들 “투쟁”으로 대답했다.

    2시간 뒤 맨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쉬는 중증장애인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였다.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나서서 팔꿈치와 무릎보호대를 덧대주고 팔 다리를 주물러준다.

    잠깐이라도 휠체어에 올라 쉬라는 권유에도 이들은 한사코 거절한다.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명박 시장이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이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다.

       
     
    ▲ 3시간여 행진을 고수하던 한 중증장애인이 탈수증세를 보여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4시 50분. 집행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에 들어갔다. 시청 앞 노숙장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노숙물품을 실은 봉고차를 견인하겠다고 시청이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경찰측에도 연락이 왔다. 계속 시간이 지체되면 노들섬까지의 행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행진을 이끌던 사회자는 이 사실을 전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많이 아프고 힘든데…서울시는 우리의 차를 견인하겠다고 하고 소중한 동지들은 한사람씩 쓰러져갑니다. 그래도 가야할까요”라며 착잡해했다.

    5시 50분. 제일 힘들어하던 한 중증장애인이 탈수증세를 보였다. 눈을 뜨지 못했다. 행진 초기부터 기어가기가 힘들어 몸을 굴려가며 행진에 임했다. 계속 할 수 있겠냐는 주위의 걱정에 “괜찮다”며 행진을 고수하다 결국 정신을 잃었다.

       
     
    ▲ 한강대교를 건너던 한 중증장애인의 모습.
     

    구급차에 실려 한강대교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2시간 40분여에 걸쳐 그가 몸을 굴렸던 150m의 거리를 구급차는 몇초 만에 가로질러 갔다.

    이후 두 대의 구급차가 더 왔다. 사회자도 이 구급차에 실려서 갔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박영희 대표가 “하나 둘, 하나 둘” 박자를 넣으며 행진을 이끌었다.

    비장애인 활동가들 “결국 왔네, 여기까지”

    해는 꼬박 저물어서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7시 20분. 행진을 시작한 뒤 5시간이 지나서야 노들섬에 도착했다.

    구급차에 실려간 3명 외에 한두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5시간의 대장정에 동참했다.

    장애인단체 비장애인 활동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완연한 봄이었지만 한강대교 한가운데서 불어닥치는 강바람은 비장애인조차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갔다. 바지가 다 헤지고 신발이 까졌다. 손바닥은 부르텄다. 300m였다. 그들이 맨몸으로 한강대교의 절반을 건넌 시간은 비장애인이 건너는 시간의 몇 십배에 달했다.

    누구도 이들의 대장정이 무사히 마쳐지리라 예상못했다. 장애인단체 비장애인 활동가들 조차도. 모두 연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시간 내내 경찰은 이들의 사투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서울시 " 30억 예산 지원하겠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약속없인 쓸모없어"

    서울시는 지난 26일,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요구하며 38일째 서울시청 앞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의 3가지 요구사항 중 2가지 사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전장연이 서울시측에 요구한 3가지 사항은 ▲활동보조가 시급한 부분에 대한 예산 확보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실태 조사 ▲활동보조인 제도화 약속 등이다.

    서울시는 활동보조인의 예산으로 30억을 지원할 것과 중증장애인의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전장연의 핵심요구안인 활동보조인 약속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함께 법 개정 이후 조례 제정작업에 나서겠다며 이를 돌려 거부했다.

    전장연은 “두가지 약속은 활동보조인제도화 약속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쓸모없는 것”이라면서 서울시측의 입장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서울시가 (활동보조인제도화가) 시기상조라는 것은 중증장애인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본다면 절대로 그렇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성장의 논리로 교묘히 그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돌려버리고 장애인을 시설로 보내기를 강요해왔다”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또 “조례제정의 약속을 회피하고 ‘법개정 후 조레검토’라는 것은 분명한 책임회피”라면서 “이미 장애인복지예산이 지방으로 이양되어 있는 상황에서 활동보조인제도화에 따른 실효성 있는 예산집행의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는 중증장애인에게 생존권적인 기본적인 요구”라면서 “서울시는 궁색한 변명으로 문제를 혼돈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전장연은 이에 따라 28일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촉구하며 한강대교 3차로를 점거하며 노들섬까지 가두행진에 나섰고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하는 노숙농성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면담을 요구하는 ‘황제찾아 삼만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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